ep35. 바다가 보이는 곳

라고-아벨레이로아스 - 쎄

by 정한결

해가 막 뜨기 시작한 7시 10분쯤 길을 나섰다.

청명한 날씨에 하늘은 분홍빛 노을을 보여줬고, 이 풍경에 정신이 팔려 걷다 길을 대차게 잘못 들었다.

없는 길을 돌아오다 풀에 잔뜩 맺힌 이슬에 신발이 완전히 젖었다.

고된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시작부터 어딘가 정신없게 2시간 반 정도를 걷고 도착한 마을, Logoso.

이곳에서 맛있는 초콜릿 마블 케이크와, 네그레이라에서부터 들고 다니던 땅콩버터를 함께 먹었다.


계속해서 말썽이던 이어폰은 한쪽만 들리게 됐는데, 그 마저도 케이크를 먹던 바에서 잃어버렸다.

분명 테이블 위에 올리고 케이크를 먹기 시작했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아무리 한쪽만 들리는 이어폰이어도 없는 것보단 낫기에 노래 없이 걸을 남은 오늘의 여정이 걱정이었다.

그래서 오전부터 말할 사람도, 이어폰도 없는 ‘찐’ 순례길이 시작됐다.


이 날 길에선 피스테라와 묵시아 길이 갈라졌다.

어차피 나는 둘 다 가긴 하지만 먼저 갈 목적지는 피스테라였다.


전날에 이어 이 날도 미친듯한 땡볕 더위와 오르막이 이어졌다.

앞을 볼 여력도 없이 그저 이 길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며 걸었다.


얼마를 걸었을까, 어느 순간 고개를 들었는데 눈앞에 믿을 수 없는 풍경이 들어왔다.

40여 일의 일정에서 볼 일 없었던 풍경, 바다가 보였다.


바다를 오랜만에 본다는 단순한 기쁨이 아니었다.

이건 대서양이 보일 리 없는 스페인 - 프랑스의 국경 지역부터 대서양이 보이는 지점까지 내가 두 발로 걸어왔다는 걸 의미했다.

노래도 없이 걷는 땡볕의 오르막이 천로역정같이 느껴졌는데 빼꼼 고개를 내민 바다를 보고 모든 고통을 잊어버렸다.


목적지인 Cee(쎄)에 내려가는 길도 너무 예뻤다.

한 달 넘게 초록색 자연만 보다 만난 푸른 바다라니 꿈같았다.


보통땐 아무리 배고파도 숙소에 짐을 풀고 슈퍼에 가는데 이날만은 예외였다.

하루 종일 갈증에 시달렸고 슈퍼로 직행해 1.5L짜리 탄산수를 사 그 자리에서 700ml를 마셨다.

부엌이 있는 알베르게였어서 오랜만에 저녁도 해 먹었다.

소시지와 버섯을 있는 대로 넣은 토마토 파스타.


오전에 잃어버린 이어폰의 역효과는 생각보다 더 대단했고, 그래서 쎄 이곳저곳을 헤집으며 이어폰 파는 곳을 찾았다.

통신사들을 돌아다녀도 수확이 없었는데, 친절한 점원이 가보라고 알려준 만물상 같은 가게에서 이어폰을 찾았다.

음질이 아주 나쁜 6.5유로짜리 싸구려 이어폰이었지만, 반나절만에 잃어버렸던 노래를 되찾았을 때의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새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바다에 일몰을 보러 갔다.

벤치에 앉아 풍경을 보며 노래를 들으며 일기를 쓰는데 지금 이 순간은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바다에 가로등이 켜질 때까지 오래오래 벤치에 앉아있다가 숙소로 돌아갔다.

새로운 풍경을 만나고 잠시 잃었던 것을 찾은, 기억에 남게 행복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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