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계획 없는 여행이 주는 즐거움

by 정한결

프라하에서 묵었던 호텔은 시내와 살짝 떨어져 있었지만 프라하가 교통이 좋아 이동이 편하기도 했고, 숙소 시설도 좋았기 때문에 엄마와 나 둘 다 대만족 했다.

하지만 제일 만족스러웠던 이유는 바로 조식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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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렴한 숙박비에 조식 뷔페까지 포함되어 있어 매일 아침을 왕처럼 먹었다.

맛있는 게 많은 나라였다면 조식 먹을 위장도 아쉬웠겠지만 엄마와 나 둘 다 체코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조식을 든든히 먹고 밥값을 아낄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았다.

엄마는 익힌 채소와 스크램블에그, 소시지, 과일을 맘껏 먹으며 매일 아침 누군가 이런 음식을 차려준다면 바랄 게 없겠다는 얘길 했다.


원래 둘째 날 아침엔 아름답기로 유명한 프라하의 도서관 '클레멘티눔'을 가기로 했었다.

근데 예보와 달리 날씨가 어마어마하게 아름다웠다.

이런 날씨에 실내 관광을 하는 건 죄악이다.


어차피 예약한 것도 없었기 때문에 곧바로 계획을 변경해 레기 섬(Park Legií)으로 향했다.

이곳은 까를교 옆 레기 다리(Most Legií)를 통해 갈 수 있다.

유럽의 가을을 좋아하는 내가 멋대로 일정에 추가한 곳이었다.

안에서 백조도 볼 수 있다는 말에 엄마도 틀림없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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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기 다리 위 엄마

섬에 가려고 다리 위에 올랐는데, 날씨의 축복이 끝이 없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에 쨍쨍한 아침해가 내리쬐던 블타바 강.

그리고 해가 완성해 준 윤슬까지.

확실히 여행의 8할은 날씨가 책임지는구나 또다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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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레기섬에서 본 풍경은, 클레멘티눔을 포기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몇 번이고 들게 만들었다.

9월 말에 간 여행이었기 때문에 한국은 아직 늦여름 느낌이었는데, 유럽은 이미 한창 가을이었다.

날씨가 쌀쌀할 뿐 아니라 적당히 단풍도 들고 있었다.

여기에 공원 곳곳에 앉아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던 현지인들까지.

작은 레기섬 안에서 어디로 고개를 돌리든 내가 사랑하는 유럽의 풍경이 가득해서 벅찼다.


엄마도 내 상상보다 더 행복해했다.

그동안 모든 여행을 패키지로만 다녀본 엄마는 패키지의 시간 압박에서 벗어난 게 가장 즐거워 보였다.

여유롭게 레기섬 곳곳을 돌아다니며 '패키지였으면 이런 데서 시간도 못 보냈을 텐데' 하는 말을 가장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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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섬은 원래 뉴트리아가 있기로도 유명한 곳이고, 우리도 몇 마리 봤다.

나에게 뉴트리아는 아무리 봐도 귀엽게 보이지 않아서 그냥 사진만 몇 장 찍고 돌아섰다.

본래 목적이었던 백조는 털끝도 구경 못했지만 너무나 사랑하던 유럽의 가을 바이브를 가득 느낄 수 있어서 아쉬움은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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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기섬에서 나온 후 바로 캄파 아일랜드로 걸어갔다.

해가 가득 비치는 유럽의 가을에, 곳곳에서 갖가지 악기를 연주하는 버스커까지.

여유와 낭만 가득한 프라하의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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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걸어 관광객이 가득한 존 레논 벽까지 걸어갔다.

벽의 낙서가 늘 바뀌는 그곳엔 직접 마카나 스프레이를 가져와서 흔적을 남기는 관광객들도 많다.

물론 나는 그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여행자이다.


준비성은 좀 떨어지지만 난 유명한 일기 강박자이고, 덕분에 가방에 일기장과 펜이 들어있었다.

1시간도 되지 않아 사라질 흔적이지만, 어쨌든 엄마와 나도 그 유명한 존 레논 벽에 나름대로의 흔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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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적은


미숙

한결 왔다감


9월 말, 햇살 가득한 체코 프라하에 엄마와 내가 있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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