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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 퍼스트 Feb 07. 2017

좋은 집을 갖고 싶어?


존 패트릭 루이스가 쓰고, 로베르토 인노첸티가 그린, <그 집 이야기> 


집을 샀다. 


맞는 말인데, 이렇게 쓰니 그동안의 고민과 수고가 너무 간단해져 버려 서운하다. 그래서 다시 쓴다.


우리는, 우리의 집을 드디어 찾아냈다.


2년 전에 우리 가족은 이 집으로 이사를 왔다. 세 번째 전셋집이었다. 처음 집은 나와 남편, 둘이 살기 적당하게 아담한 집이었다. 지하철역이 가깝고 버스도 많이 다녔다. 주변에 밥집과 술집도 많아서 막 결혼한 신혼부부가 지내기에 편했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니 그런 것들 보다는 넓고 깨끗한 공간이 필요했다.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번째 집은 입주가 막 시작된 새 아파트를 골랐다. 새 것이 주는 쾌적함에 그 곳에서 더 살고 싶었지만 전세 값이 마구 올랐다. 비싼 집을 감당하기가 힘들어 또 이사를 하기로 했다. 돈에 맞춰 비슷한 몇 곳을 살펴보고 그 중 가장 나은 집을 골랐다. 당연하다는 듯 계약한 2년만큼 살다가 미련 없이 떠났다.


집은 그저 상품이었다. 상황과 필요에 따라 언제든 바꿀 수 있으며, 오직 가격만이 집의 가치를 말한다고 생각했다. 집이란 나에게 어떤 의미이며 무엇이 좋은 집인지 고민 한번 해보지 않았기에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 수 있는 집을 사야 한다는 것과 새 아파트의 쾌적함을 으스대며 누리고 싶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집이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이 집에 살면서, 아끼는 풍경이 생겼다. 여기는 5층인데, 창 밖에 무성한 나무들 키가 그만큼이다. 그러니 거실에 앉아 있으면 나무들과 마주한다. 볕이 좋은 날엔 초록빛이 눈부시고 바람이 부는 날엔 부드럽게 흔들리는 그 풍경을 우리 집 거실에서만 볼 수 있다.


이 집에 살면서, 다정한 이웃들을 만났다. 아이는 친구들과 하늘이 깜깜해질 때까지 놀이터에서 놀고 우리는 함께 아이들을 지켜본다. ‘나’의 아이는 ‘우리’의 아이라서, 목이 마르다 하면 물을 주고 배가 고프다 하면 간식을 나눈다.


이 집에 살면서, 산책의 즐거움을 알았다. 매일 아침 귀여운 청설모와 이름 모를 산새들을 만날 수 있는 울퉁불퉁한 숲길은 가장 사랑하는 길이 되었다. 길을 지나면 나오는 도서관도 작은 책방도 예쁜 카페도 모두 가까이 두고 싶은 곳들이다.


집은 삶을 돋보이게 덧칠하는 물감이 아니라 삶의 모양을 결정하는 밑그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인의 성향과 취향에 따라 집이 달라진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내 일상이 조금씩 집을 닮아가더니 이제는 꽤 너그럽고 느긋하게 흘러간다.


가격만이 집의 가치를 말할 수 있다면 우리 집은 좋은 집이 아니다. 서울에서 멀리, 경기도 어느 끝에서 열 살이나 먹은 이름 없는 아파트이다. 지하철역에서 멀고 버스 이용이 불편하다. 전문적인 경비 시스템 대신 손이 느린 할아버지들이 아파트를 돌본다. 단지 내에 도서관 피트니스 센터 카페 등 아파트 주민만을 위한 편의시설도 없고 주변에 대규모 쇼핑센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집값이 오르는데 가장 중요하다는 학군도 좋은 편은 아니다. 이곳은 모두에게 좋은 점이 거의 없는 곳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집을 갖기로 했다. 누구에게나 좋은 점은 없지만 우리에게 좋은 점은 분명하다. 내가 살 곳은 부동산이 아니라, 나와 가족들의 모든 시간을 같이 살아낼 ‘집’이므로.




집은 삶을 기억한다,

<그 집 이야기>



“나는 돌과 나무로 지어졌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내 창들은 볼 수 있게 되었고 내 처마는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집의 말대로 집은 자기 안에 사람과 사람의 삶을 보고 듣는다. 그리고 기억한다.



처음으로 사람의 손길이 닿던 순간을 되새기고 그들이 나무처럼 단단한 일가를 이루려 쉼 없이 움직이는 시간들을 지켜낸다. 주인 아가씨가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은 날 축복을 빌고, 가족의 죽음을 애도한다.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는 날 함께 풍요로워지고 고통을 피해 숨는 사람들을 묵묵히 들인다.

 


모든 순간에 집은 늘 배경이 되고 사람은 그 안에서 삶이라는 이야기를 만든다. 집에는 삶의 흔적이 남고 그 흔적으로 우리는 기억을 이어간다. 돌과 나무로 지어진 단순한 건축물이 우리의 가장 친밀한 장소, 비로소 ‘집’이 되는 것이다.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남겨두는 곳으로.



<그 집 이야기>라는 제목답게 이 그림책에서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집의 얼굴과 표정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나오는 집은 같지만 또 다르다. 그 중에서 “여주인이 죽은 날은 나도 죽은 날”이라 말하며 가만히 울고 있는 집의 얼굴과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가 드디어 찾아낸 집도 ‘그 집’처럼 우리와 우리의 하루를 보고 들으며, 자신의 몸에 이야기를 새길 것이다. 그리고 함께 조용히 늙어가겠지. 나의 삶을 기억할, ‘집’이 생겨서 좋다. 마침내 기쁘거나 서러운 날, 아무 일도 없이 조용한 날에도 같은 자리에서 나를 기다릴 그 집으로 간다.


인간답다는 것은 의미 있는 장소로 가득한 세상에서 산다는 것이다. 인간답다는 말은 곧 자신의 장소를 가지고 있으며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 에드워드 렐프, <장소와 장소상실>, 25쪽, 논형


/글·사진: 지혜


Information

<그 집 이야기>  

글·그림: 존 패트릭 루이스‧로베르토 인노첸티 | 역자: 백계문 | 출판사: 사계절 | 발행연도: 2010.05.17 | 가격: 21000원


지혜의 그림책

다채로운 그림 속에서 발견하는 명쾌한 삶의 지혜. ‘그림 같은 육아’의 지혜 작가가 전하는 두 번째 스토리.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 주는 위안과 감동을 확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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