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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 퍼스트 Mar 12. 2018

지친 영혼이여 이곳으로, 엘비스

[맥주로빚은턴테이블]1화 20년만에 돌아온 고향, 혼술과 LP를 시작하다

10년 전 즈음,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좀 되었을 무렵. 전공에 애매하게 걸린 업무로 수면과는 잠정적으로 이별을 고하고 있었던 즈음, 우연치 않게 20년 만에 어린 시절을 보낸 일산으로 이사까지 오게 되었다.


서른을 바라보던 나이, 여자 친구(지금은 무서운 와이프다!)와는 거리가 더 멀어졌고, 새로운 동네에서 적응까지 하느라 심신이 피폐해진 상태였던 걸로 기억한다. 하긴 그렇게 정신이 나가 있었으니 다른 사람보다 일찍 혼술을 시작하게 된 거였겠지만...


늦은 밤 평소처럼 지하철에서 병든 닭 마냥 꾸벅거리며 퇴근하던 나는 그날따라 맥주 한 잔이 너무 고팠다. 그렇다고 누구를 부르기는 피곤해 역에서 내려 동네를 방황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한참을 걷다 포기할 무렵 시커멓게 시트지가 붙어 안이 들여다보이지도 않는 조그만 가게가 눈에 띄었다.


엘비스 바 내부 전경


엘비스? LP? 올드뮤직? 어릴 적 어머니에게 한소리 들으면서까지 들여놓았던 아버지의 큰 스피커와 오디오를 떠올리며 문을 살짝 당겼다. 더 돌아다녀봤자 뾰족한 수도 없을 것 같고, 지칠 대로 지치기도 해서 일단 입장.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미국의 가수 겸 배우. 로큰롤의 탄생과 발전, 대중화에 앞장섰고, 팝·컨트리·가스펠 음악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대표곡으로 <하트브레이크 호텔(Heartbreak Hotel)>(1956), <하운드 독(Hound Dog)>(1956), <러브 미 텐더(Love Me Tender)>(1956), <제일하우스 록(Jailhouse Rock)>(1957), <버닝 러브(Burning Love)>(1972) 등이 있다. (출처: 두산백과)


가게 안에서는 2채널 스피커에서 AC/DC의 Back in black 음악이 말 그대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엘비스라는 가게 이름만 보고 1950년대 적당한 신남과 부드러움을 예상하고 있던 나는 고막이 터질 듯이 들려오는 하드락에 멈칫했다. 그 사이 테이블 너머 서 있던 사장님과(지금은 형님이지만…)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고, 그 순간부터 혼술로 인한 재정악화와 와이프의 잔소리는 예고되어 있었다.


엘비스 LP턴테이블과 엘비스 사진과 그림들


그렇게 단골이 되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게 되었을 때, 많고 많은 가수 중에서 가게 이름으로 엘비스를 고르게 된 사연을 듣게 되었다. 엘비스는 사장님이 아닌 사모님의 취향. 젊었을 때부터 해외출장을 통해 LP를 모으던 사장님은 어느 날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LP바를 열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사모님이 제일 좋아하는 엘비스를 가게 이름으로 정한 것은 사랑이라 쓰고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묘수라고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엘비스의 노래는 ‘Love me tender’나 ‘can’t help falling in love’ 같은 감미로운 발라드들이 더 유명하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rhythm and blues와 Country Music의 결합을 통해 탄생한 강한 비트의 rock’n’ roll 가수인 그에게는 ‘hound dog’같은 곡들이 가장 잘 어울린다.  


Elvis presley-hound dog


가수 생활 초반 무대 위에서 좌중을 사로잡는 매너와 독특한 매력으로 젊은 층에게 전폭적인 인기를 얻었던 그는, 후반으로 갈수록 스탠다드한 곡만 선호하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층을 흡수하는 대신 인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젊은 나이에 여러 질환을 앓다가 약물과 정크 푸드 속에서 사망하고 만다. 사후 여러 가지 구설수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비틀즈로 대변되는 영국 및 기타 음악의 미국 상륙시대에 가장 미국적인 음악을 사랑했던 음악가였고, 지금까지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가수 중 한명임에는 틀림없다.


그렇게 음악성향도 비슷한데다 같은 계통의 일을 했던 터라 사장님과 급속도로 가까워진 나는 퇴근길에 들려 맥주 한두 병에 졸음이 쏟아질 때까지 음악을 듣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나는 그렇게 엘비스와 음악과 혼술에 빠지고 말았다.


엘비스 플레슬리의 LP음반


엘비스에는 나름 명기라 불리는 JBL4343 스피커가 달려있다. 좁은 가게에 조금 부담스러운 크기의 스피커가 양쪽에서 울려대는 통에 익숙하지 않은 손님들에게 소리를 줄여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기도 한다.  


JBL4343 
엘비스의 명기 JBL 4343 스피커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스피커이긴 하지만 성향을 떠나서 음 하나 하나를 명확하게 재생해 주는 능력이 탁월한 스피커로 내 나이와 비슷(?). 15인치 우퍼, 10인치 미드레인지 드라이버, 1인치 컴프레션 드라이버, 트위터를 채용. 알리코로만 구성된 모델과 일부 페라이트로 구성된 모델이 존재한다.


그러나 ‘LP BAR에서 음악을 줄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콧방귀를 뀌는 사장님의 쿨함과 너구리굴 같은 담배연기(생각해보면 술집에서 금연이 된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속에서 추억과 음악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가득했던 공간. 열댓명 남짓 빠듯하게 둘러앉을 수밖에 없는 구조 탓에 옆 사람과 예기치 않은 합석도 하게 되고 서너 팀만 들어와도 자리가 없는 통에 발걸음을 돌리는 손님들도 많지만 한번 앉게 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새벽을 맞이하는 공간.


그 공간도 10년 가까운 시간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시간을 공유했던 한 형님이 가게를 인수해 엘비스는 이제 젊고 홍대 느낌이 물씬 풍기는 새로운 공간으로 탄생했다. 옛 분위기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고, 새로운 가게에 환호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치직거리며 LP 긁는 바늘소리와 맥주 한 병, 좋아하는 음악 한 곡에 위로받을 수 있는 단란한 매력만은 변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하루 종일 시달리는 대인관계가 싫어서,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가진 인간관계가 진실 되지 못한 것 같은 실망감으로,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 지쳐간다. 이런 삶 속에서 혼술이 늘어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삼십대의 치기어린 공허함이라 부를 수도 있지만, 이런 고민과 답답함으로 하루를 보낸 사람들이 서로 말없이 음악과 술로 편해질 수 있는 곳, 고민은 잠시 잊고 퇴근길에 스스로 ‘오늘도 수고했어!’라며 한잔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에 나는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다.   


엘비스(ELVIS)
엘비스 가게 전경(사진: 엘비스 LP music BAR)
병맥주, 칵테일, 위스키
FOR 혼자 음악 듣고 싶은 지친 영혼
BAD 술집은 자리가 편해야지!

주소: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일산로 71 화신프라자
전화: 031-901-5421
영업시간: 매일 17:00~03:00


/글·사진: 전호현




오늘도 혼술 하고픈 당신에게 추천하는 LP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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