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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 퍼스트 Oct 11. 2016

우즈벡의 꼬마 만두, 추츠바라

[별별음식] 제 7화


일 하면서 밀대를 조리도구로 쓰는 외국인을 종종 본다. 만두를 많이 빚는 몽골 호스트 밤뱌체렝씨의 밀대는 작다. 천하장사 소시지에 가깝다. 난이나 로띠 같은 밀전병을 만들 때 쓰는 인도 호스트 카잘씨와 디팔리씨의 밀대는 지름이 훨씬 두꺼운 편이다. 반찬용 분홍색 소시지 정도라 보면 된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 호스트 카몰라씨의 밀대는 어딘가 좀 유별나다. 처음 사무실에 찾아왔던 날, 그녀의 손에는 밀대라기보다는 막대가 들려 있었다. 족히 70cm는 될 만큼 길고 가늘어 마대자루에 더 가까워보였다.


몽골 호스트 밤뱌체렝의 밀대. 작고 아담하다.
인도 호스트 디팔리의 밀대. 도톰한 중간 사이즈다.
우즈베키스탄 호스트 카몰라의 밀대. 스케일이 다르다.


가장 긴 도구로 만든 가장 작은 음식 


내가 본 가장 긴 밀대로 만든 카몰라의 음식은 만두였는데, 내가 먹어본 만두 중 가장 작았다. 정식 명칭은 ‘추츠바라(Chuchvara)’,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많이 즐기는 음식이다. 한국의 물만두보다 작다. 이탈리아의 라비올리 혹은 토르텔리니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만드는 과정은 몹시 까다롭다. 일단 밀가루 200g 가량을 계란과 섞은 뒤 물과 소금을 더해 반죽한다. 주먹 두 개 크기의 반죽을 30분 가량 휴지한 뒤 그 긴 밀대로 아주 넓게 편다. 지름 60cm 정도는 나와야 한다. 그럼 두께는 1-2mm 정도가 된다. 그 사이즈가 나오도록 끊임없이 밀대를 돌린다.


그런 다음 반죽을 차곡차곡 포개고 절단한다. 만두피를 만드는 과정이다. 추츠바라는 동양의 일반적인 만두와 다르게 만두피의 모양이 원이 아니다. 정사각형, 혹은 정사각형에 가까운 직사각형이라 펼쳐놓으면 꼭 타일 같다. 만두피의 규격은 가로세로 2cm 정도인데, 해외 레시피를 찾아보니 만드는 사람의 스타일과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조리 문화에 따라 크기가 좀 달라지긴 하지만 그래도 4cm를 넘지 않는다. 이어서 아기 손바닥 만한 피에 티스푼으로 다진고기와 다진야채를 넣고 입을 봉한다. 손에 들린 모든 게 다 작아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만두를 빚는다기보다는 어쩐지 바느질하는 느낌에 더 가깝다.


워낙 크기가 작으니 반죽을 한 번만 쳐도 양이 꽤 나온다. 그래서 우즈베키스탄에선 가족이 둘러 앉아 잔뜩 빚은 뒤 냉동실에 넣어둔다고 한다. 생각날 때 꺼내 물만두처럼 소금물에 쪄먹기도 하고(하지만 먹는 방식은 좀 다르다. 그렇게 물에 데친 뒤 버터나 요거트를 올리고, 향신료를 더해 먹는다), 수프에 넣기도 한다. 때때로 기름통에 빠져 튀김이 되기도 한다. 특히나 튀긴 추츠바라는 인기가 많아 파티나 피로연장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핑거푸드다.


최대한 얇게 반죽을 편다.
지그재그로 반죽을 겹쳐놓는다.
반죽을 자른다.
가로세로 2cm 가량으로 크기를 맞춘다.
소를 넣고 봉한다.
완성!

작은 음식 큰 음식 


추츠바라의 핵심은 최대한 작게 빚는 것이다. 구글 검색을 통해 만난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또 다른 여성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어린 날부터 엄마와 함께 추츠바라를 빚을 때면 더 작게 만들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지금이야 안 통하는 얘기지만 우즈베키스탄의 옛 시골 마을에선 작게 추츠바라를 빚는 여성을 훌륭한 신부감으로 여겼다. 예쁘게 빚는 송편이 예쁜 자식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을 부르는 것처럼, 인종이 다르고 문화가 달라도 인류는 꽤 오랜 세월 음식의 형태에 엄격해왔던 모양이다. 


손 끝에 힘을 실어 만드는 추츠바라를 먹는 동안 문득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음식이 떠올랐다. 산처럼 재료를 쌓아 올린 수제버거다. 아무리 예쁘게 세팅해놨다 한들 건강하지 않은 욕심을 접시 위에 세워 놓은 참 먹기 불편한 음식이다. 너무 푸짐해서 못난 햄버거의 극단에 손가락 한 마디 만한 추츠바라가 성스럽게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추츠바라는 다부진 음식이다. 고작 가로세로 2cm의 만두피 안에 필요한 식재료가 다 있다. 야채와 고기가 있으며, 카몰라의 레시피에는 육즙을 살리는 용도로 양고기의 기름까지 들어간다. 


카몰라는 일찍 결혼했다. 그리고 가족과 나누는 저녁 식사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던 시어머니로부터 거의 모든 요리를 배웠다. 작고 야무지게 추츠바라를 빚는 비결 또한 시댁살이로부터 터득한 것이다. 가사노동과 성역할을 연결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참 불편한 일이지만, 그래도 집안 대대로 이어진 작은 음식에 대한 오래된 집착은 높이 사고 싶다. 추츠바라를 배울 엄두가 나지는 않았다. 기술을 익히진 못했지만 새삼스럽되 중요한 가치를 다시 되새기게 됐다. 어떤 음식이든 과해서 좋을 것이 없다.


추츠바라의 재료다. 왼쪽의 붉은 것이 다진 소고기이고, 중앙의 분홍빛 재료가 양의 지방이다.
다 빚었다.
추츠바라가 완성됐다. 소금물에 데친 뒤 버터와 허브를 더해 먹는다.



/사진: 원파인디너 




별별음식 음식 좀 하는 외국인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런 외국인들과 각국의 거창한 음식 얘기는 좀처럼 안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파키스탄 사람들이 칼을 손에 쥐는 방법, 몽골 사람들이 양배추를 다듬어 쓰는 요령에 더 눈길이 갑니다. 그런 차이를 발견할 때면 늘 이유를 묻고 답을 얻어내려 하는데요, 음식에 대한 가벼운 질문이 때때로 문화와 역사 이야기로 확장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답이 돌아오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별별음식’은 그렇게 사소하지만 달라서 재미있는 세계의 음식 문화를 다루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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