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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 퍼스트 Oct 11. 2016

김유정, 소설가를 품은 간이역


서울과 춘천을 오가는 경춘선 열차. 옛날이나 지금이나 춘천으로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낭만적입니다. 춘천으로 가다 보면 유난히 눈길이 머물게 되는 역이 있습니다. 북한강을 따라 대성리, 청평, 강촌을 지나면 나오는 ‘김유정’이란 이름의 역입니다.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동백꽃>, <봄봄>과 같은 작품으로 우리에게 친근한 소설가 김유정. 그의 이름만으로 왠지 서정적일 것 같아 내려 보았습니다.




소설가의 정취를 담은 역


열차에서 내려 승강장에 발을 딛자 궁서체로 쓰여진 역의 안내판이 방문객들을 맞아줍니다. 간판뿐만 아니라 역 내의 모든 문구들은 이와 같은 글씨체로 되어 있습니다. 소설가의 이름이 역명이 되었기 때문일까요. 이런 작은 부분도 김유정역에 내리고 싶게 만드는 특별한 이유입니다.



김유정역은 2010년 12월 21일, 경춘선에 복선 전철이 다니게 되면서 새로 지은 역사(驛舍)가 기존의 역사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새롭게 지어진 대부분의 역들은 유리를 활용한 현대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곳은 기와가 얹힌 한옥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역사들처럼 반짝거리고 세련된 느낌은 덜할 수도 있지만, ‘김유정’이란 역의 이름과는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모습입니다.



옛 김유정 역사는 철도문화재로 지정되어 철거되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더 이상 열차가 다니지 않는 선로에는 한때 이곳의 청춘을 실어 나르던 무궁화호 열차가 자리를 지키며 방문객들을 추억에 젖게 만듭니다. 오래된 승강장에도 옛 역의 분위기를 간직한 시설물들이 있어 사진을 찍는 연인과 친구들의 멋진 배경이 되어주고 있지요.

           

많은 연인들이 찾는 옛 김유정 역사 포토존


최초의 사람 이름 역 


이곳의 처음 이름은 ‘신남역’. 1939년 역이 지어질 당시 춘천시 신남면에 세워졌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듬해 신남면은 동내면과 통합되어 ‘신남’이라는 이름은 사라졌지만, 역명은 그대로 남아 예전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김유정역 주변을 둘러보면 여전히 ‘신남’이라는 이름의 간판을 건 많은 가게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남역이 김유정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된 것은 2004년. 역이 자리한 실레마을(신동면 증리)에서 나고 자란 소설가인 김유정의 이름이 그대로 역명이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사람의 이름이 역명으로 쓰인 것은 처음이었죠.


역 주변에는 김유정을 기념한 시설물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채 그대로 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여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버렸다.”


그의 대표작인 소설 <동백꽃> 속에서 주인공과 점순이가 수탉 싸움을 붙이고, 감자를 나눠먹던 곳도 바로 이곳을 배경으로 하였습니다. 근처에 위치한 김유정의 복원된 생가 주변에는 문학관이 생겨 그의 작품 속 장면들과 옛 자료들을 볼 수 있습니다.



복원된 김유정의 생가와  문학관



서울 이웃 춘천


서울과 춘천이 전철로 연결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이곳으로 여행을 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날도 1박 2일 또는 당일치기로 춘천으로 여행을 떠나온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여행은 떠나고 싶고, 시간은 마땅치 않고…. 가까운 곳을 찾다가 이곳에 오게 되었어요.”


박지은(25)씨는 방학을 맞아 친구와 당일치기 춘천 여행을 나왔습니다. 옛 김유정역에서 사람들이 찍은 사진을 보고 찾게 되었다는 지은씨. 역을 둘러보니 예쁜 풍경들이 많아서 자신도 마음에 드는 사진을 담아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합니다. 친구와 사진을 찍은 뒤에는 인근의 김유정문학관도 둘러보고, 춘천의 명물인 닭갈비도 먹으러 갈 예정입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온 원정원(21)씨는 혼자서 이곳을 찾았습니다. 그는 춘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김유정역은 처음이라고 하는데요. 혼자서 시간을 내어 온 만큼,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레일바이크도 타고, 문학관 구경도 하고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해보고 돌아갈 것이라고 합니다.


카메라는 선택, 삼각대는 필수


“예전에 학교 다닐 때 배웠던 소설가의 이름이 역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찾기 시작한 게 10년이 넘었네요.”


김성진(69세)씨는 옛 김유정 역사 앞에 있는 커다란 나무의 단골손님입니다. 집에만 있는 것이 답답해 맑은 공기를 쐴 곳을 찾다가 여기까지 닿게 되었다고 합니다. 단상에 앉아 있으면 역을 둘러싼 산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읽고 싶었던 책도 마음껏 읽고, 신문도 읽습니다. 그는 “쉴 곳을 찾아 여러 곳을 다녀 봤지만 여기만한 곳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소설에서는 시골의 분위기를 정감 있게 전달했다면, 그의 이름을 딴 오래된 역사는 많은 사람들의 편안한 쉼터가 되어 주고 있습니다. 다른 간이역과는 달리 김유정역엔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옛 소설가의 정취를 간직한 이 역이,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맘대로 포토 스팟

옛 김유정역 승강장에는 철도 건널목, 안전 표시판 등 다양한 시설물들이 있어 예쁜 사진을 찍기에 최적의 장소입니다. 시선을 조금 달리해서, 이곳에 남겨진 무궁화호 열차의 뒤편을 활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찍는 포즈에 따라 애절한 드라마 속의 연인이 될 수도 있고, 서부의 총잡이가 되어 볼 수도 있습니다.




/사진: 민동오


오래된 역사(驛舍)

핑계 없는 무덤 없고 사연 없는 역 없습니다. 역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과 열차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역의 모든 공간들, 광장, 로비, 승강장, 심지어는 화장실까지도 사람들의 추억이 새겨져 있습니다. 우연히 방문하게 된 오래된 간이역, 열차는 보이지 않았지만 역의 곳곳에서 친구들, 연인들, 가족들의 추억이 담긴 낙서들이 보입니다. 오래된 역사(驛舍)의 역사(歷史)에 귀 기울여 보시죠.



"오래된 시간을 찾아 떠나는 간이역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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