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생존적 소설 읽기> 매거진을 더 세밀하게 기획하고 수정하여
브런치 북 <소설만 깊이봐도 달라지는 삶>으로 연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가위로 종이인형 자르듯
사람을 재단하는 우리에게
그 사람 참 이상해.
말 참 많아.
무턱대로 가르치려고 들어. 저만 잘났대.
옷이 저게 뭐니.
엉덩이 무거운 거 봐. 참 게을러.
일은 잘하는데... 사람은 착한데...
수 없이 내려지는 사람에 대한 즉결심판들.
우리 모두 사람을 종이인형처럼 가위로 자르듯
당장 보이는 모습만 보고 서슴없이 평가 내리는 일들 수없이 하고 있습니다.
저도 별반 다르지 않았어요.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다면 나 자신도 누군가에게 재단하듯 잘리지 않을까요?
이거 보고 잘라내고 저거보고 낙인찍으면 내 주위에 남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혼자 살 수는 없습니다.
생태계의 모든 나약한 종들은 무리 생활을 합니다.
인간도 무리 생활을 해야 하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인류가 자연의 두려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쌓아 올린 수많은 문명들을 보고 혹시 착각하셨나요? 아파트 안에 있으면, 건물 안에 있으면 안전하고 인터넷으로 뭐든 살 수 있는 세상이니 혼자서도 살 수 있는 종으로 우리는 스스로를 착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런 마음이었던 적이 있으니까요.
과학과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지금 왜 자살과 우울증은 늘어날까요?
독서모임을 나가면서 느낀 건 사람들이 이야기를 얼마나 하고 싶어 하는지 만남과 대화를 얼마나 즐거워하고 갈구하는지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 살 수 없어요.
함께 살아야 합니다.
함께 살려면 서로의 마음을 잘 알아야 하는데 우린 너무 모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와 맞는 사람을 찾을 수 있어야겠죠.
그럼 겪어보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단편적인 모습으로 그 사람을 낙인찍는 순간 제 자신도 그 낙인에 갇혀서 더 이상의 현상은 관찰할 수가 없다는 거죠.
낙인은 이상한 사람을 걸러내기 전에 자신의 눈부터 가리더군요.
모든 사람을 품는 신이 되자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을 갖고 보자는 것이죠.
즉결심판을 내리기엔 사람은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고 세상엔 좋기만 한 것도 나쁘기만 한 것도 없더군요.
일도 사람도 상황도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이 50년을 살면서 제가 손에 쥔 몇 가지 깨달음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욕망과 목표가 있고 두려움도 있고 상황에 따라 반응하고 생김새만큼 각기 다른 마음을 가진 입체적인 존재들입니다.
점심메뉴 하나를 고르는 일에도 수없는 생각들이 오고 가지 않나요?
절대 한 두 마디로 정의 내려지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난 뒤에 그저 시간을 두고 사람을 바라보기로 했어요. 쉽진 않지만요.
위협을 가하거나 내 삶의 목줄을 쥐고 휘두르려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저 바라보기만으로도 삶의 평안을 줍니다. 조금 더 편안해져요.
그런데 당장 현실에서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소설 속 인물들의 생각과 행동을 들여다보고 이해해보고 있습니다. 인물을 입체적인 사람으로 바라보려는 관점을 통해 나와 타인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서요.
여러분은 소설 왜 읽으시나요?
재미? 인물? 기발함?
단순 재미로 한 번 읽고 꽂아두기에는 아까운 이야기들이 세상에 너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참 좋아하죠.
글이 존재하지 않을 때에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이야기는 존재해 왔습니다.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는 것들에는 모두 이유가 있더군요.
그럼 왜일까요?
리사 크론의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세상의 이치를 가르쳐주는 이야기에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합니다.
무엇이 좋은 이야기인지 이미 알고 태어났고, 이야기를 통해서 사고한다고 해요. 이야기를 통해 미래를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생각했다는 거죠.
즉, 생존을 위해 우리에게 이야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문자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부터 초연결 시대인 지금까지 끊임없이 소설, 영화, 드라마로 이야기가 우리 곁에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깊이 있게 읽고 느껴야 합니다.
한 달에 몇 권 읽었는지 권 수 세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제대로 읽기 아닐까요?
소설을 읽고 그 소설 속 인물들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사람을 이해해 보는 것이죠.
숏츠의 시대라지만, 긴 글을 못 읽는 도파민 중독사회라고 하지만, 저는 오늘도 긴 글과 영화를 여러 번 보고 깊이 느끼기를 멈출 수 없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나를, 사람을, 관계를 배우고자 합니다. 그래서 매일 조금씩 저부터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아들러는 말했습니다.
자신을 제대로 알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고.
자신을 아는 것은 의지의 영역이 아닌 인지의 영역이라고!
매번 같은 곳에서 부딪힌다면 조금은 다른 결론을 내보자는 말입니다.
우리 함께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을 소설을 통해서 연습하고 즐겨봐요.
사람을 깊이 알아보는 것.
단면이 아닌 입체적인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
그래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타인의 평가를 보류하고 시간을 들여서 바라보는 것을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조금 더 평안해질 것이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저도 어릴 땐 이상한 사람 가려내려고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고 산 것 같습니다.
지나고 보니 날이 서 있다는 것은 두렵다는 거였어요. 물론 깊은 상처를 남긴 관계도 있습니다. 그런 상처들로 한 동안은 관계를 모두 멀리했었죠. 하지만 홀로 읽고 쓰면서 마음을 들여다보고 단단해지는 시간들을 거치면서 저의 가시들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내면이 단단해지면 가시들은 자연히 사라집니다. 자신을 지킬 힘이 자라는 것이죠.
한 번 읽고 기억도 나지 않는 읽기 말고,
권수 세기에 급급한 읽기 말고,
읽는 대로 나를 성장시키는 생존적 소설 읽기!
좋은 소설 깊이 읽기~ 저와 함께 하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