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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사세 Oct 17. 2024

내 기억은 얼마나 정확할까?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내 기억의 신뢰도는 얼마일까?

나는 내가 만났던 사람들을 얼마나 제대로 기억하고 있을까?


여러분의 기억력은 안녕하신가요?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제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매거진  <생존적 소설 읽기>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보니 스포가 필연적이기도 하고, 워낙 인상 깊은 소설은 여러 번 읽는 스타일이어서 평소 스포일러가 크게 문제 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대요. 이 소설은 인물의 심리와 행동을 수준 높게 보여주면서도 기막힌 결말을 향해 달리는 글이라 오늘은 최대한 결말 노출을 자제하고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반전의 결말 보는 재미 놓칠 수 없으니까요~



평범하기 그지없는 노년의 토니에게 대학 시절 1년 정도 사귄 여자 친구의 엄마가 아주 약간의 돈과 친구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유산으로 남겼다는 편지를 받습니다. 의외의 이 상황을 계기로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통해 평범한 토니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얼마나 비루한 삶을 살아왔는지를 알게 되고 지난날 자신의 언행에 대한 회한, 자조 그리고 성찰을 담은 소설로 작가의 보편적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담겨있습니다.



기억은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해석이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 사건의 기록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특정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그 사건의 객관적 사실보다 중요한데, 이렇게 기억은 그들이 자신의 삶과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이 해석은 개인이 자신의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목표나 신념에 맞춰 선택적으로 작용합니다.  언제나 우리는 우리의 현재 상황과 목표에 맞는 방식으로 과거를 기억하며, 이러한 기억은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토니는 말합니다.

"나에겐 일종의 자기 보존 본능이 있다"

"당시에 일어난 일에 대해 내 입장에서 해석한 것을 기억에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헤어진 후에야, 베로니카는 나와 잤다'라는 말은 재고의 여지없이 '나는 베로니카와 잔 다음, 차버렸다'로 바꿀 수 있다.


토니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그 기억을 왜곡한 것이죠.



또 기억은 의도된 적응 과정입니다.


"가장 괴상한 부분은 이렇게 조작한 나의 역사를 마음 편히 입에 올렸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나 스스로에게 끝도 없이 그렇게 말해왔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베로니카와 사귄 것을 패배라 보았고, 기록에서 삭제해 버렸다"


우리는 토니의 이런 기억 왜곡을 비판할 수 있을까요?


토니뿐 아니라 우리는 모두 자기 보존 본능이 있죠.

인간은 자신이 나약하고 열등하다는 느낌을 오래 견디지 못합니다. 저뿐 아니라 보편적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을 지키는 것이 너무도 우선인 일이겠죠.


그래서 우리의 기억은 사실의 기록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관적인 문학에 가깝죠.


베로니카와 사귀던 시절 베로니카의 집에 초대받아 며칠의 시간을 보낸 토니가 기억하는 그녀의 가족들에 대한 인상은 얼마나 사실에 닿아 있을까요?


베로니카와 헤어진 후 자신의 친구 에이드리언에게서 받은 편지에는 베로니카와 자신이 연인이 되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토니는 에이드리언에게 답장을 하죠. 이 모든 기억들은 얼마나 정확할까요?


토니는 베로니카뿐 아니라 에이드리언에게도 열등감과 패배의식을 느낀 것은 아닐까요?

그런 열등감과 분노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기억의 왜곡, 또 그들에 대한 토니의 반응은 그들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우리는 이 세상을 혼자 살지 않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관계'라는 것을 맺고 있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언제나 내가 나 자신을 보호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기억이 이토록 나 자신을 보호하거나 목표를 위해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조금 더 성숙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서로의 다른 기억으로 크고 작은 분쟁은 늘 우리 주위에 존재합니다. 기억이 사실인 것처럼 주장하기 전 한번 더 곱씹어보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혹여 자신의 기억이 사실인양 끈질기게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무엇을 기억하는지를 통해 무엇을 목표하는 사람인지 알아차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목표와 긍정적인 태도는 어떤 기억을 축적시킬까요?


기억에 대해서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왜 긍정적인 사람에게 좋은 기억이 많은지, 목표를 가진 사람에게 그에 부합한 것들이 많이 축적되는지 알겠더군요. 옳고 좋은 태도나 목표를 갖게 되면 현재의 경험은 내가 의도한 대로 해석되고 그 기억이 우리 안에 축적될 것입니다.


책의 한 문장처럼, 저는 살아갈 날이 줄어들수록 헛되이 살고 싶지 않습니다. 인생의 엉킨 실타래가 있다면 풀고 싶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고도 싶습니다.


기억이 객관적 해석이라지만, 우리가 그것을 인지하고 있다면 한 번 더 돌아보는 내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여러분들도 꼭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통해 반전 결말의 소설적 재미도 즐기시고 기억과 사람 그리고 관계까지 연결해보는 시간이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작가 줄리언 반스의 다른 책에서 몇 줄 남깁니다.


우리는 서로의 기억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지만, 우리가 잊은 것에 대해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건 아닐까? 설령 그것이 기술적으로 더 어렵거나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해도?

---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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