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어른은 구분되어야 한다

<노인과 바다> 어른 그리고 우정

by 엘의 브런치


나이 들면 그냥 다 노인이다.
타인이 '어른'이라고 불러주기 전에는


‘어른이 말하는데!’라고 말하는 노인을 보고 든 생각이에요.

남들이 어른이라고 느낄 때 비로소 노인이 어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죠.


헤밍웨이의 노인 산티아고는

소년에게 어른이었고, 친구였습니다.



자녀에게 부모를 넘어 어른으로 남을 수 있을까?


50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많은 고민을 하는 저에게 요즘 '노인과 어른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말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자신을 스스로 어른이라고 말하는 사람 중에 진짜 어른은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말과 행동에 지혜로움을 느끼고

'나도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때

집안과 사회의 어른으로 불리게 되는 거죠.


여러분은

밥 먹었니? 조심해라~

이런 매일 똑같은 말 말고


서로 삶과 사람에 대해 생각을 나누고

용기를 줄 수 있는,

배우고 싶은 어른의 모습이 스스로 그려지시나요?



나이를 초월한 우정


<노인과 바다>에서 삶의 치열함과 고독한 생존 이외에 노인과 소년의 우정에서 따뜻함과 애잔함을 느끼면서 '나도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더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홀로 망망대해에서 거대한 청새치에 연결된 낚싯줄을 붙잡고 사투를 벌이는 노인은 혼잣말을 합니다.


'그 애가 있다면 좋을텐데.'

'그 애가 있다면 좋았을텐데.'

'그 애가 여기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홀로 바다에서 노인은 생각합니다.

'누구라도 노년엔 혼자 있어서는 안 되는 거야.'


소년은 언제나 노인의 커피, 먹을 것을 챙기고

함께하길 원합니다.

배우길 원합니다.

부상을 입고 청새치 뼈와 돌아온 산티아고를 보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소년.


다시 돌아와 소년을 만난 노인은 혼잣말이 아닌 누군가와 대화한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인식합니다.


그리고 말하죠.


네가 그리웠다.



이렇게 말할 한 사람이 있다면.

삶이 얼마나 괜찮을까요?

그리고 후세대에 가르쳐 줄 작은 무언가가

내게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삶을 의미있게 할까요?


물론 노인과 소년은 먹고사는 방식이 같기에 소년이 노인에게 배워야 할 점은 다 가르쳐달라는 상황일 수도 있겠죠.

그럼에도 노인은 소년을 일방적으로 가르쳐야 할 대상이 아닌, 인생의 친구로 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물며 우리는 모든 세대가 다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후진국 시대에 태어난 베이비붐세대

개발도상국 시대에 태어난 엑스, MZ세대

선진국, 인공지능 시대에 태어나고 태어날 알파 이후 세대


교육, 정치, 경제 활동까지 무엇하나 서로 공유하기 힘든 세대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세대 간 부딪힘은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부모 자식 간에도 소통은 난제입니다.


이렇게 급격한 변화의 시대를 살고 있는데

일방적으로 윗세대가 아랫세대를 가르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평생 공부해야 경제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세상이죠.



세대별 교집합이 필요합니다.


미래는 젊은이에게 배우고

과거는 연장자에게 배워서

함께 오늘을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모든 생물이 환경에 적응하듯,

어린 세대도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중입니다.


어린 세대가 나와 다르다면 "요즘 애들은~"이란 시각보다 왜?라는 질문을 던져봐야 변화를 더 읽을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나이, 성별, 물질로 서로를 나누기보다

생각이 비슷한 분과 연대하고 배우길 원합니다.


친구도, 가족도, 가치관이 다른 것이 소통을 더 힘들게 하니까요.



지금 중년은 중요한 갈림길에 있다.


노인이 되는 것은 필연이지만

어른이 되는 것은 선택입니다.


저는 세대를 넘어 나와 비슷한 생각이 있는 사람에게 배우고 나눌 수 있는 어른이 되겠다는 다짐을 <노인과 바다>를 통해 다시 해봅니다.


그냥 세월 가는 대로 늙고 싶진 않아요.

분명 지금 그리는 그 모습의 미래가 기다린다고 믿으면서요.


노인으로 보일 것인가

어른으로 불릴 것인가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