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이라는 바다에 홀로 배를 띄울 수 있나요?

<노인과 바다> 삶의 본질, 생존

by 엘의 브런치

지금까지 살면서 생존을 위해 홀로 망망대해에 배를 띄워본 적이 있으신가요?


아름답지만 잔인하기도 한 바다라는... 삶에서 사투를 벌여본 적이 있으신가요?


50년의 제 삶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두려움과 도전을 홀로 감수하는 뜨거움이 내 생애에 있었던가라는 의문이 듭니다.


언제나 나만의 상자 속에서 적당히 안주하며 튀지 않게, 무리 속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살아왔던 평범한 내게 헤밍웨이는 묻습니다.


계속 그렇게 살아도 되겠냐고?
후회는 없겠냐고?


바다에서 사투를 벌인 노인의 3일은 주인을 따르는 개의 삶이 아닌 하늘을 나는 한 마리의 독수리 같은 완생의 삶이었습니다.



쿠바의 한 작은 마을에 사는 노인 어부 산티아고는 84일 동안 고기를 잡지 못해 불운한 어부.
모두 그를 가엾게 여기지만 그는 여전히 의지를 잃지 않습니다.

85일째 되는 날, 희망과 자신감을 간직한 그는 홀로 바다로 나가 큰 청새치를 낚습니다.
산티아고는 고기를 잡기 위해 3일을 고군분투하며 삶의 처절함을 경험합니다.

거대한 청새치를 잡아 배에 묶고 돌아오는 귀향 길에 상어 떼의 공격을 받아 고기의 살이 모두 뜯기고 결국 거대한 뼈만 남은 상태.

마을 사람들은 청새치의 크기에 감탄하며 산티아고를 다시 존경하지만, 그는 고독 속에서 자신의 한계와 자연의 힘을 묵묵히 받아들입니다.



노인의 모든 것이 노쇠했지만, 눈은 달랐다


84일 동안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한 그를 모두 운이 따르지 않는 가장 안 좋은 상태라 동정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언제나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이 노쇠했지만 눈은 바다빛같이 불패의 생기를 띠고 있습니다.

40일간 함께 했던 소년도 이제 부모의 만류로 노인과 함께하지 않기에 그는 85일째도 홀로 바다로 나갑니다.


여전히 희망과 자신감을 간직한 채!

그것이 그의 눈이 빛나는 이유일 것입니다.


마음이 늙으면 눈의 생기가 사라지는, 그것이 진짜 늙는 것이 아닐까요?



삶에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있습니다.


드디어 배보다 더 큰, 지금까지 잡아본 적 없는 크기의 물고기가 바늘을 뭅니다.

거대한 물고기는 이틀밤을 배를 끌고 바다를 헤매고 산티아고는 지쳐갑니다.


물고기를 사랑하지만, 노인의 미끼를 물어버린 탓에 며칠을 굶고 있는 물고기에게 미안하기도 하지만, 굶주림의 형벌을 알기에 산티아고는 물고기를 죽여야만 합니다.


낚싯줄을 잡은 손이 찢기고, 소금과 라임즙도 없는 날 생선을 씹어가며 그는 버팁니다.

쟁취해야만 하니까요.

그리고 승리합니다.



운이 좋았다면 좋았을 것이지만..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이 주어지는 운 좋은 삶이라면 우리는 더 행복했을까요?


배보다 더 큰 물고기를 묶고 귀향을 시작하지만, 피비린내를 맡은 상어의 공격을 피할 수 없습니다.

살점이 뜯겨가는 것을 막아내 보지만 계속되는 상어의 공격은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겨울 한철 사내하나를 먹여 살릴 만큼의 물고기의 마지막 살점을 상어에게 내어줄 때도 그는 할 수 있는 싸움을 계속합니다.


노인은 자신이 이제 돌이킬 수 없이 패배했다는 것을 알지만 그 순간 그는 모든 것을 초월합니다.

그저 자신의 집 쪽 항구를 향해, 할 수 있는 한 가장 현명하게 돛단배를 몰죠.

조종하는 것 이외에는 어떤 것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저는 그제야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은 순간,

산티아고의 태도는

그 어떤 인간보다 존엄했고 품위 있었습니다.



아름답고 잔인한 바다...라는 삶


바다는 아름답지만, 가끔 너무나 잔혹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처럼요.


그는 청새치 한 쌍 중 한 마리가 낚싯바늘에 걸렸던 때가 떠올랐다. 수컷 물고기는 항상 암컷 물고기가 먼저 먹도록 하는데, 갈고리에 걸린 암컷은, 공황 상태에 빠져 마구 흥분했고, 절망적인 싸움으로 곧 지쳐 버렸는데, 수컷은 줄곧 낚싯줄을 가로지르며 암컷과 함께 수면 위로 돌면서 함께 머물렀다.


그는 암컷 물고기를 작살로 꿰고 곤봉질로 잡아야만 했습니다. 수컷이 지켜보는 중에 말이죠.

암컷 곁에 끝까지 머물렀던 멋진 수컷의 그 순간을 산티아고는 슬프게 기억합니다.


바다는 이렇듯 생존을 슬프게 만들기도 하지만, 지친 산티아고는 고요해진 바다에서 안락함도 느낍니다.



삶의 본질


산다는 것이 지루한 일상의 반복이고 뜻대로 되지만은 않는다는 것, 애쓴 만큼의 결실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깨달음이 오히려 인간의 마음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음을 알아가는 나이이기에 산티아고의 3일에 경이를 표합니다.


그 바다가 우리의 세상을 의미하고 그의 3일이 우리의 인생을 의미한다는 것을 이젠 압니다.


온전한 청새치를 가지고 돌아오는 금의환향의 결말만이 값진 삶은 아니라고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온 힘을 다해 막아내도 막을 수 없는 것들이 있지만 그는 끝까지 상어와 싸웠고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았음을 받아들이고, 정신을 가다듬으며 집을 향해 배를 몹니다.


그런 그에게서 인간의 고귀함을 보았고,

그 고귀함은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배웠습니다.


여러분도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통해 세상이라는 바다에 홀로 배를 띄울 수 있는 용기를 얻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바다에 혼자일 때, 그는 자신을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노인과 바다..

가슴 시리게 먹먹하고 아름다웠습니다.

노인과 소년의 우정에서 빛나는 사랑을 느꼈기에

다음 글도 노인과 바다로 이어가 볼까 합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