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에 의지한 탐욕의 끝

셰익스피어 <맥베스>의 탐욕과 양심

by 엘의 브런치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그렇기에 누구에게나 선택은 힘겹습니다.



탐욕적 야망은 있으나 감당은 두려운 자를 노리는 주술(예언)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시대나 지금이나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스스로의 선택이 두려운 인간들은 마녀의 예언과 주술의 힘을 빌어 원하는 것을 손에 넣고자 합니다.


원하는 것은 있으나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나 용기가 없을 때 주술의 힘을 빌리게 되죠.

마녀의 예언이나 주술을 이미 정해져 있는 일이라고 믿고 가는 거죠.


이것을 주술 없이 스스로 하게 되면 그것은 끌어당김이겠죠?

그래서 스스로 끌어당김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내면이 강한 것이고 이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나 지금이나 주술은 사람들의 두려움, 욕망, 그리고 초월적인 힘에 대한 열망을 반영한 상징입니다.




여기 스코틀랜드의 장군, 야망의 화신 맥베스는 마녀들에게 세 가지 예언을 듣게 됩니다.


글래미스의 영주!

코도의 영주!

스코틀랜드의 왕이 되실 분!


이미 글래미스의 영주였던 맥베스는 예언을 들은 직후 전쟁의 공을 인정받아 왕 덩컨으로부터 코도의 영주로도 임명됩니다.

욕심이 많다는 것은 만족을 모른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마녀들의 예언이 놀라울 만큼 바로 실현되자 왕좌에 대한 야망이 맥베스를 사로잡습니다.


그러나 두렵기는 맥베스도 마찬가지.

왕좌에 대한 욕심을 접을까.... 생각하지만,

그런 맥베스를 레이디 맥베스가 부추깁니다.

야심은 있지만 사악함이 부족하다며 실행이 두려운 그 일을 행하라고 자극합니다.


그렇게 맥베스 부부는 손에 피를 묻히고 왕좌를 차지하죠.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살인은 또 다른 살인을 부르고 레이디 맥베스는 양심의 가책으로 몸과 마음이 병들어갑니다.

맥베스도 뱅쿠오에 대한 마녀의 예언으로 자신의 자리를 잃을까 불안에 시달립니다.

그들이 치러야 할 대가, 예상이 되시죠?



욕심? 탐욕?


인생에서 선택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선택을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두렵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은 채 안전을 유지하는 삶을 삽니다.


익숙한 현재의 삶을 벗어나는 선택도 쉽지 않은데 맥베스처럼 타인을 짓밟으면서 내 이득을 취하는 것은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공동체를 위협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일은 주로 욕심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기에 욕심이 많다는 것은 좋은 의미보다 나쁜 의미로 통용됩니다.

우리는 그것을 탐욕, 야망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욕심 자체가 나쁜 것은 절대 아니죠.

욕심이 너무 없다면 생존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습니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물질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삶은 인간을 비참하게 만들기에 적당한 욕심은 삶을 영위하기에 적당한 물질적 성취를 이루게 해 줍니다.



탐욕이라는 허기


탐욕이란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 같은 것입니다.


본성에 따라 허기만을 쫓다 보면 브레이크가 고장 난 열차에 올라탄 것 같지 않을까요?


욕심이 없는 사람은 약간의 승부욕을 학습해야 하는 것처럼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본성 역시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더 채워서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


이기적인 선택이 아닌 타인, 공동체도 고려하는 선택을 할 수 있는 도덕적 양심, 정신적인 채움을 위한 마음공부, 건강한 사회적 관계 등 물질만을 쫓는 본성과 균형을 맞출 것들을 반드시 학습해야 합니다.


아무리 부를 채워도, 끝없이 본성은 더 성취를 갈망하는 쪽으로 이끈다면 얼마나 정신이 황폐해질까요?


욕심이 많을수록 공동체와 타인에 대한 공감, 내면을 채우는 것을 학습하지 않는다면 매일이 채워지지 않는 곳간을 채우느라 허비하는 인생이 될 수도 있다는 교훈을 셰익스피어가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요?


그것은 무엇보다 온전히 스스로의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겠죠.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기른다는 것은 오랜 연습을 통해서만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 과정이 쌓일수록 절제하는 힘과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는 용기도 함께 커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몇 년 전까지도 진가를 몰랐던 셰익스피어를 인간과 본성, 관계에 관심을 갖으며 읽으면서 드디어 그 가치를 알게 되는 요즘입니다.

그가 사람과 삶의 본질의 대해서 얼마나 깊은 통찰을 가지고 있는지, 햄릿에 이어 맥베스를 보며 또 느끼게 됩니다.


그래도 맥베스 부부에게는 공감 능력이 전혀 없지는 않았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는 것은 공감능력이 제로는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니까요.


탐욕적인데 공감능력도 없는 사람이 영향력을 갖는다는 것은 당사자뿐 아니라 그가 속한 공동체 전체가 엄청난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요즘 배우고 있습니다.


나의 욕망뿐 아니라 타인의 욕망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건강하지 않은 욕망을 품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줘서는 안 된다는 것!

욕망의 실현 과정도 건강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마녀의 예언을 바탕으로 검은 욕망을 실현하려 피를 묻히며 권력을 가졌지만 감당도 하지 못했던 맥베스 부부의 스토리는 말해줍니다.


야망이 있다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두려움을 넘어서는 것도 실행하는 것도, 결과를 책임지는 것도 그 주체는 언제나 본인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을!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