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진과 여자라는 존재

다시 읽는 <모순>

by 엘의 브런치

안진진의 이모를 바라보는 시선이 소설 출간 당시인 30년쯤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있을까?


호강에 겨운 철부지 취급하는 안진진의 엄마가 동생을 바라보는 마음과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안진진이 번듯한 나영규를 선택한 것은 당연하다는 반응도 안타깝긴 마찬가지고요.


그 시절보다 우리는 훨씬 더 잘 살고 있지만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마치 여자가 영혼과 정신이라고는 가지고 있지 않은 듯 말합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들만 주면 모든 것이 충족될 수 있는 존재로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고 느낍니다.


오히려 여자는 남자보다(대체적으로) 더 영적인 존재인데 말이죠.

그 점에서는 안진진, 이모, 엄마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안진진이 나영규를 선택한 이유는 모순에 관한 브런치북 <생존적 소설읽기>에서 자세히 언급했듯이 김장우를 사랑하지만 아버지 같은 삶은 견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김장우에게서도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김장우 앞의 자신이 아버지와 너무 닮아있다는 것이죠.


사람은 상대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존재입니다.

나의 어떤 모습을 끌어내주는 사람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죠.


김장우 앞에서의 안진진은 견딜 수 없는 아버지의 모습이 나옵니다.

안진진이 그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함에도 그를 선택할 수 없었던 이유죠.


안진진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폴처럼 누군가에게 전적으로 기대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마치 김장우가 모은 전부를 모두 형에게 주었기에 함께 할 수 없다고 바라보는 관점은 그저 읽는이의 결핍이 투영된 것이죠. 그렇게 봐서는 누구의 마음도 이해할 수가 없지 않을까요?



안진진의 이모가 스스로 삶을 마감한 것이 외로워서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모가 자신의 쓸모를 찾을 수 없는 집에서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돈을 벌어온 들 달라질까요?

이모에게 그 집은 인형의 집이었습니다.

꽃을 주면 웃어주는 인형 같은 존재였죠.

이모부가 이모에게 원한 역할이 정확히 그것이었죠.

'어떤 고민도 없이 꽃길을 열어줄게.'라는...마음이 어쩐지 소름 돋습니다.



얼마 전 영화 '시민덕희'의 실제 주인공인 김성자 씨가 유퀴즈라는 프로에 나오셨던 일화가 생각납니다.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었던 그녀는 보이스피싱의 전화를 받고 함께 있던 주변 상인들에게까지 빌려서 3천만 원을 송금했다고 합니다.

술로 지세다 스스로 죽음까지 선택했다가 딸에게 발견되어 살아납니다.

분풀이라도 하겠다는 심정에 범인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화풀이를 지속하던 중에 그 상대가 자신도 잡혀있으니 도와달라고 했다는 거예요.


'도와달라'는 말에 마음이 움직입니다.

중국까지 날아가 범인을 찾을 에너지를 준 것이 바로 저는 쓸모를 느꼈기에 가능했다고 봐요.




내가 누군가에게
이 세상에,

절실하게
필요한 존재라는 것,

그것이 사람을 살게 하는 힘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건

돈, 물론 아주 중요하죠.


우린 육체라는 물질로 이루어진 존재이기도 하기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죠.

물질과 정신이 모두 조화로울 때 사람은 살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안진진의 엄마도 마찬가지죠.

엄마는 스스로 생계를 유지했고 남편이든 아들이든 문제가 생기면 본인의 쓸모를 발휘합니다.

그들에게 엄마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는 것이죠.

그것이 그녀를 억척스럽게라도 살아가게 하는 힘 아닐까요?

집안에 문제가 생기면 그녀는 나섭니다.

'내가 필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하기예요.



저도 우리나라의 30년 동안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은 관습 속에서 살아왔던 사람입니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아이 키우고 그렇게 사는 것이 다인 줄 알았죠.

책을 읽으며 글을 써보며 조금씩 변화해왔습니다.


우린 지금, 마치 돈만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마법에 걸린 것 같습니다.

우린 육체도 있지만 정신도 존재합니다.


남과 여를 불문한 우리 모두는 자립한 온전한 인간이어야 합니다.

정신적 자립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나를 탐구해야 가능한 것이죠.


그래서 누구나 어디에서든 각자의 쓸모를 찾을 수 있는 사회여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며 관계를 맺을 때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변화했으면 해요.

여자가, 엄마가 변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보도 듣고 자란 것이 당연함이죠.


그래서 당연함이란 말에서 두려움도 느낍니다.


언제나 부족하지만 그래도 '나는 어떤 당연함을 보여줄 것인가'를 매일 고민합니다.

지금 비록 살림만을 하고 있어도

내가 물려줄 수 있는 마인드는 무엇인가를 말이죠.


제가 책을 읽고 글을 써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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