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소년이 온다>
그날 40만 인구의 도시, 군인에게 지급된 탄환이 80만 발!
그렇게 죽은 수많은 동호들..
지난 10월 죽은 동호가 우리에게 걸어와
12월의 우리를 살렸습니다.
저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슬프다' '가슴 아프다'라는 나의 감상을 넘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는 책이라고,
그리고 이것은 인간의 두 가지 본성에 관한 증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책이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구나.. 를 느끼며 이 글을 씁니다.
1980년 5월과 2024년 12월
과거의 역사에 존재한다고 믿었던 일이 지난 12월 우리에게도 일어날 뻔했습니다.
지나간 것이 아니라
아직도 우리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지난달 <작별하지 않는다>와는 다르게 읽는 내내 <소년이 온다>는 알고 기억한다는 것을 넘어 제게 행동을 요구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12월의 그날 수많은 시민들이 국회로 달려가지 않았다면 우린 지금도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까요?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날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이
모두 팔십만 발이었다는 것을.
그때 그 도시의 인구가 사십만이었습니다.
그 도시의 모든 사람들의 몸에 두발씩
죽음을 박아 넣을 수 있는 탄환이
지급되었던 겁니다.
<소년이 온다> 중에서
이 땅은 광주의 그날 발포 명령을 내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자택에서 천수를 누리다 자연사하게 배려했습니다.
그것이 정서적 공감 능력은 전혀 갖지 못한 채 태어나 오직 권력욕과 통제욕을 학습한 또 다른 자에게
다시 끔찍한 만행을 실행할 용기를 심어준 것은 아닐까요?
왜 쓰여졌는가 질문해야 합니다.
다시 몇 번을 생각해 봐도
지난 10월의 노벨문학상은 우리에게 크나큰 선물이라는 것에 전율이 느껴집니다.
저는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제가 얼마나 518에 대해 무지했는지를 새삼 느끼고 매년 5월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10월의 동호가 12월의 우리를 구한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슬프다'. '가슴 아프다'라는 나에게 국한되는 감상으로 마무리 지어서는 안 될 책입니다.
이미 자료로 존재하는 광주 518 당시의 피해를 한강 작가님이 압도적 고통을 겪으며 소설로 써낸 이유를 다시 생각해야만 합니다.
이야기, 스토리라는 것의 본질
스토리란 재미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스토리 역시 슬프다, 가슴 아프다를 가르쳐 주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야기란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문자가 있기 전에도 존재했던 인류의 강력한 생존 도구입니다.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다시는 이런 일을 겪지 않아야 합니다.
국가가 아니, 한 개인의 뒤틀린 욕망이 위협받을 때 어떻게 폭력을 행사하는지, 그와 같은 본성의 소유자들이 자신들의 세상이라고 믿게 되면 감추어놓은 타고난 더러운 본성을 어떻게 드러내는지, 그 끔찍한 폭력은 어떻게 연약한 자들을 짓밟는지를 이 소설은 너무도 잘 보여줍니다.
권력을 등에 업고 개인의 자유를 짓 밝고 원하는 대로 세상을 통제하려는 막강한 힘에 저항했다고 무참히 죽이고 고문할 수 없습니다.
이건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본성에 관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폭력과 학살에 대해 언제나 정치 논리로 따지고 들며 정당화하는 자들은 본성을 의심해 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독재라는 폭력에 저항했던 여리고 어린 사람들은 무섭지 않았을까요?
무엇이 그들에게 그 막강한 힘에 저항하게 만들었을까요?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소년이 온다>중에서
양심이란
어릴 땐 양심이라는 것이 도덕적 완벽함.
대단히 고귀한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도덕적으로 무결해서가 아니라
여리고 나약한 인간이 타인을 바라볼 때
자신을 보듯 여리고 나약함을 느끼기에
'아 저 사람도 아프겠구나'라는 공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이젠 압니다.
그 공감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사람에게 함부로 폭력을 행사할 수가 없죠.
그 죄책감을 감당하는 것이 더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나약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독재라는 계속되는 폭력 앞에 나아간 그분들의 용기에 한없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읽는 내내 부끄러움과 끓어오르는 분노로 감정이 격해지지만 차갑게 분노해야 합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누가 나를 죽였을까
누가 누가를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생각할수록 그 낯선 힘은 단단해졌어.
<소년이 온다>중에서
기억함을 넘어 행동이 필요할 때
2024년 12월 실제로 국회로 달려간 수많은 분들과 온라인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목소리를 냈던 많은 분들이 있었기에 이렇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고
아직도 진행 중인 이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고도 싶습니다.
용서하지 않을 거다.
이승에서 가장 끔찍한 것을 본 사람처럼
꿈적거리는 노인의 두 눈을 너는 마주 본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소년이 온다> 중에서
어설픈 용서와 연민은 감당할 수 없는 또 다른 역사를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이미 많은 판매를 기록했지만 공감하는 마음을 갖은 모든 분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그리고 읽은 모두가 슬픔이라는 나의 감상 너머의 것까지 도달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온라인에서라도 양심을 가진 자들이 언제나 더 많다는 사실을 드러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줄거리와 구성 (출처 : 나무위키)
1장 <어린 새>는 중3 동호에게 말하는 이야기
2장 <검은 숨>은 유령이 된 정대
3장 <일곱 개의 뺨>은 출판사에서 일하다가 경찰에 잡힌 뒤 끝끝내 살아남아 치욕을 느끼며 살아가는 은숙
4장 <쇠와 피>는 시민 군 진수의 죽음에 대해 증언해 줄 것을 부탁받은 1990년의 나
5장 <밤의 눈동자>는 광주에서의 증언을 요청받은 2000년대의 선주
6장 <꽃 핀 쪽으로>는 아들을 잃은 동호 어머니의 시점의 이야기
마지막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는 작가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
한강 작가 자신도 광주 출신이고, 1970년생으로 518 민주화운동 당시 10대 초반이었다.
다만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던 시기에는 서울로 이사를 간 상태여서 광주의 참상을 직접 체험했던 것은 아니다.
또한, 에필로그에서 동호(실제 문재학 열사)는 한강 작가가 서울로 이사 간 뒤 광주 중흥동 집에 살았던 한강의 아버지인 한승원 소설가(당시 국어선생님)의 제자이기도 했다.
한강 작가가 동호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도 되냐고 동호의 형에게 허락을 받을 때 물론 가능하지만 아무도 동호를 더 이상 모독하지 못하도록 잘 써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