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병을 떨쳐내기 위한 자기 최면
미니멀리즘이라던지, 울트라 라이트 하이킹은 나에게 동경의 대상이다. 가볍게 살고 가볍게 떠나고, 최소한의 작은 소유만 유지하는 삶. 물론 현실이 그렇지 않으니 동경한다는 말이다.
예전에 화엄사에 하루를 머물렀을 때, 용호 스님(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에게 들은 이야기. 예전에는 스님의 전재산은 봇짐 하나에 다 들어갈 수 있었고, 벚꽃을 따라 태백산 줄기를 타고 올라가 수련을 하다가 단풍을 따라 화엄사로 돌아왔다고 했다. 몸이 불편해 화엄사에만 있다 보니 짐만 많아진다고 한탄하셨다.
벚꽃을 따라 산맥을 타고 단풍과 함께 돌아오는 삶은 어떤 삶일까? 그 사이에 많은 고충이 있겠지만 그만큼 가벼운 삶은 어떤 느낌일까?
업무의 환경이나, 유튜브 제작 환경을 내가 원하는 완벽한 형태로 꾸미기를 원하고 가벼운 하이킹의 장비 역시 여정을 편안하고 쾌적하게 유지하기 위해 고민한다. 항상 그 고민의 결과는 더 새롭고, 크고, 무거운 장비다.(혹은 가볍지만, 엄청나게 비싼 장비)
트레일러닝이나 하이킹 같은 아웃도어 촬영은 촬영보다 액티비티를 즐기고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아이폰과 고프로, 오즈모 포켓 정도만 쓰고 있다. 마이크와 녹음기까지 하면 각각의 장비는 작지만 부담이 되기 시작한다. 그런데 퀄리티 좋은 다른 유튜버의 영상을 보다 보니 어느새 미러리스 카메라를 검색하고 있다.(이미 갖고 있는 오래된 DSLR과 RX100m4는 영상에 취약하다.)
'그래도 생산성, 퀄리티, 편의성이 올라가니 결과로 보면 그만큼 이익인 셈이야'라고 합리화하지만 어느새 거추장스러워져 있고, 무거워져 있겠지. 그래서 결국 느려지고 불만족스러워 다시 가벼운 쪽을 택하겠지.
맥주를 잔에 채울 때 거품까지 예상하고 완벽하게 꽉 채운 CF 같은 비율을 유지하려다가 흘리고 마는 상황과 비슷할까나. 100%의 만족은 정말 100%의 충만함을 느끼게 할까? 너무 꽉 채워서 건배도 살살해야 하는 맥주잔처럼 어색함이 있지 않을까? 적당히 채우고 시원하게 마시고 다시 적당히 채우면 되지 않을까?
최대한 모든 환경을 완벽하게 세팅하고 제어하려고 하는 것도 성격이라 일과 취미, 삶에서 습관처럼 배어있다. 덜어내도 차오르고, 떨쳐내도 쫓아온다. 일종의 강박과도 같다. 현재의 예산에서 완벽한 장비를 찾기 위해 몇 시간씩 서치하고 정보를 모은다. 그 시간의 낭비는 어떻게 할 거야!
만족은 80%만. 그래야 그 빈 공간에 창조가, 즐거움이, 여유가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뻔히 결과를 알고 있지만, 이 단순한 욕망은 길들이기가 쉽지 않다. 머리가 먼저 움직였으니, 몸을 길들여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