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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길: 공자의 근원적 사유

법과 규칙 너머의 실존

by root

논어 ‘위정’ 편에 한 군주가 공자에게 질문하는 장면이 있다. “우리 마을에서는 아들이 아버지가 양을 훔친 것을 고발합니다. 선생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묻는다. 이 질문을 마주한 공자는 법의 보편성 측면에서 우리의 예상과 다르게 “우리 마을에서는 아버지는 아들을 감싸주고, 아들은 아버지를 감싸줍니다.”라고 답한다.

공자의 깊은 사유를 엿볼 수 있는 이 짧은 문장은 오늘날의 법적 시선으로 보면 심각한 법질서의 부정처럼 들린다. 우리가 공동체를 통해 구성원으로서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상 최소한의 정의와 질서의 기준은 ‘법의 공정성’과 그에 따르는 ‘시민적 책무’로 구현되어야 한다. 그러한 법적 기준에 의하면 아들은 개인의 혈연적 온정을 뛰어넘는 공공의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 그러나 공자는 이러한 보편적인 법윤리의 근본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편적인 도덕의 충돌 문제라기보다는 더욱 깊은 삶이 펼쳐지는 틀로서의 충돌이 있다.

우리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법이 보편을 지향’ 해야 한다는 사실은 공자에게 특수한 혈연관계의 개인적 윤리를 옹호하는 것이 그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질문해야만 한다.

‘아버지를 고발하지 않는 것’은 정의와 법의 침해인가?, 아니면 생각하는 나로서의 충실함인가?

공자에 의해 정당화된 이러한 침묵은 과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따라야 하는 원리가 될 수 있는 것인가?


법의 윤리와 침묵의 존재론

현대사회에서 법의 지위는 단지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제적 규범만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의 상호존중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기능한다. 이 법은 특정한 인적요소나 감정으로서가 아니라 오로지 ‘공공의 질서’와 ‘정의’라는 추상적이면서도 보편적인 바탕 위에 놓여 있다. 또한 자비나 자의적이지도 않도록 요구받고 있다. 따라서 아버지든 아들이든, 모든 사람은 동일한 토대 위에서 그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러나 공자의 답변은 이러한 법의 윤리, 즉 보편성 자체를 우회하고 있다. 그는 인간은 법 이전에 어떤 관계망으로서의 위치를 가진 존재이며, 우리의 도덕적 책무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아들은 아들이므로 그 아버지를 고발할 수 없다는 사실은 추상적 원칙이 아니라 우리의 구체적 삶에 깊이 뿌리내린 관계적 질서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그의 시선이다.

그러나 이러한 질서는 동시에 법과 진실 앞에서 침묵하도록 허용하게 된다. 공자의 시선에서 윤리가 결정되는 순간 우리는 ‘법과 진실’에 응답하는 보편적인 주체가 아니게 된다. 역할에 순응하는 객체가 되어 아들은 아버지를 고발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실존은 이런 순응하는 객체로서의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를 넘어서 묻고, 흔들리고, 결단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존재의 심연을 향해 수직으로 침잠하려는 결단의 순간이 우리 앞에 열린다.


자신을 넘어서는 실존적 용기, 법과 규범을 넘어서는 길

자신을 넘어서는 실존적 용기란, 인간이 단지 ‘어떤 관계의 일부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 관계 자체를 넘어서는 자기 존재에 대한 응답성을 마주하는 것, 다시 말해서 양심과 진실 앞에서의 우리의 실존적 각성의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누구의 아들이거나 아버지라는 관계망 속의 구성원이기 이전에, 우리 스스로의 행위에 대해 기꺼이 책임을 지는 존재인 것이다. 자신을 넘어서는 삶의 본질을 향한 돌파란 ‘법 이전의 법, 관계 이전의 응답이며 실존을 향한 초월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대상으로 죄상을 고발하는 것이 윤리적인지? 또는 부도덕한 지? 의 문제는 단 하나의 규범으로는 풀어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를 ‘인적 관계에 충실할 것인가? 아니면 법적 정의에 충실할 것인가?’라는 실존의 물음으로 다시 물을 때 우리가 지켜야만 하는 그것은 법이나 규칙 이전에 인간의 실존적 결단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이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낸다. 왜냐하면 법이나 규칙은 그 이전에 우리의 내적 심정성으로부터 출발했고 그것의 경화된 형태일 뿐이기 때문이다.

실존적 결단의 용기란 익숙한 모습으로 일상적인 모든 형태의 규범 앞에서 고개를 들고 내면의 침묵을 깨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과 공동체의 구성원인 타자의 고통을 마주하고 선 인간, 그 인간만이 진정 실존적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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