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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길: 존재의 수평성과 실존의 수직성

― 평평한 삶과 깊어지는 존재

by root

우리는 이전의 어느 시대보다 더 평등하고, 더 자유롭고, 더 연결되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더 깊은 방향감각의 상실을 겪는다. 삶은 점점 효율적이게 되었고, 유연해졌지만, 그 만큼 더 허전하고 공허한 삶을 산다고 느낀다. 왜 그럴까? 이 물음에 대한 하나의 철학적 응답으로서 "존재의 수평성과 실존의 수직성"이라는 개념을 사유해 볼 수 있다.


존재의 수평성 ― 구성된 질서, 살아지는 삶

존재의 수평성이란, 인간이 속한 우리의 세계가 하나의 ‘질서이자 구조’로서 그 바탕을 펼쳐 보이는 방식을 가리킨다. 우리는 우리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이 질서의 구조 안에서 태어나고, 언어를 배우고, 역할을 부여받으면서 기능적으로 ‘살아진다’. 이 세계는 말하자면, 수평으로 펼쳐진 공간으로서의 바탕이다. 모든 사물과 행위가 서로 나란히 놓이고, 비교되고, 교환된다. 직업, 성과, 외모, 말투, 소비, 정체성까지도 이 수평적 세계 위에서는 하나의 선택지로 배열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좋은 직장’, ‘삶의 가치’, ‘합리적인 소비’를 선택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 선택은 기존의 사회, 문화적 질서와 구조, 타인의 평가에 따라 수평적으로 긴밀하게 배치되고 조율된다. 이러한 삶은 때로 깊은 자아적 응답 없이 외부 기준에 따라 흘려보내는 삶이 될 수밖에 없다. ‘나로 살아간다’가 아니라, 기존의 구조 속에 끼워진 어떤 단위로서 ‘살아지는 것’에 다름 아니다.

실존의 수직성 ― 응답하는 존재, 깊어지는 삶

실존의 수직성이란, 그러한 수평적 질서 속에서 자기 자신을 향해 수직적으로 침잠하려는 결단적 운동이다. 이 수직성은 사회적 역할, 타인의 시선, 규범적 기준을 일단 멈추게 요구한다.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이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수직성은 하늘을 향한 상승이 아니라 수평적 질서를 돌파해 들어가는 것으로서의 ‘깊어짐’이다. 그것은 자기 안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는 일종의 마주함의 용기다. 그 속에서 인간은 단순히 살아지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근본물음에 응답하는 진짜 나로 살아감을 결단한 존재로 전환된다. 하이데거의 말대로,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문제 삼는 존재’다. 그리고 이 질문의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수평 위에서 나란히 존재하는 익명적 존재가 아니라, 응답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가 된다.


수평과 수직의 갈등 ― 평평함 속의 피로, 깊음 속의 고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점 더 수평성만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소셜미디어는 우리를 무한한 비교 속으로 밀어 넣는다. 직장은 수치화된 효율성을 기준으로 사람을 재단한다. 정체성마저도 다양한 옵션 중 하나로 정리된다. 그 모든 수평적 배열은 필연적으로 소외된 인간의 피로와 무력감을 남긴다. 왜냐하면 우리는 깊어질 기회를 박탈당한 채, 끊임없이 선택당하고 나열당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반면 실존의 수직성은 이러한 피로로부터 완충지대를 제공한다. 수직성은 자기 자신으로서의 고유한 언어와 판단, 결단적 행위를 통해서 ‘익명의 그들’이 인도하는 유행을 따르지 않고, ‘풍요 속에 바짝 마른’ 그 애매한 수다와 소음을 거부할 수 있는 힘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에게 진실한 물음을 던진다. 어떤 삶이 진정 ‘살 만한 삶’인가? 나는 지금 내가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은 기존의 안정된 편안함을 뒤흔드는 불편함이다. 왜냐하면 이 질문에 응답하는 순간, 우리의 수평적 정체는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 속에서, 삶은 비로소 자기 자신을 향해 깊어지기 시작한다.


수직성은 일상 속에 잠재되어 있다

진정한 나로서 살아가는 방식으로서의 실존의 수직성은 드라마틱한 사건을 통해서만 그 모습을 드러내는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의 익숙한 일상 속에서 불쑥 떠오른다. 어느 날 갑자기 익숙해 있던 우리의 일상에서 ‘왜 이 일을 계속해야 하지?’,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내면의 물음이 바로 그 수직성의 신호다.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은 온다. 그 물음으로부터 도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한 채 응답하려는 자는 기존의 질서와 구조를 수직으로 돌파해 들어가기 시작한다. 관습과 외부로부터의 평가라는 표면을 뚫고, 나만의 목소리, 나만의 호명을 향해 침잠한다. 그것이 실존이다.


결론 ― 삶은 수직으로 깊어질 때 살아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수평적 세계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지만, 실존은 그 표면을 뚫고 고유한 자기 자신에게로 돌파해 들어가는 결단의 용기에서 시작된다. 존재의 수평성과 실존의 수직성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 오히려 이 둘이 균형을 이룰 때, 우리는 질서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그 질서에 압도되지 않는 삶, 그리고 타인과 더불어 살지만 타인에 의해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이 지워지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수평성은 삶의 무대이고, 수직성은 그 무대 위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스스로의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말은 익숙하지 않고 서툴지라도, 그것이야말로 진짜 나의 삶이 시작되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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