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싸들의책수다#15] 성해나, 단편『구의 집: 갈월동 98번지』읽고
건축은 단지 공간을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그 안에서 살아가거나,
때로는 견뎌야 하는 사람들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 대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에 가깝습니다.
건축, 법, 제도는 정말 중립적인가?
‘잘 작동하는 시스템’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한가?
성해나 작가의 단편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는 한 시대의 공간 속에서 이 질문을 조용히, 그러나 무겁게 다시 꺼내 놓습니다.
이 소설은 단지 과거의 폭력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날 우리가 만드는 공간과 제도. 그리고 그 이면의 현실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기능과 미학 사이, 그 균열 속에서 진정 ‘사람’을 위한 설계는 가능한지 끝내 독자에게 되묻는 이야기입니다.
구보승은 결코 무능한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땅을 직접 밟고, 하루 종일 빛의 이동을 관찰하며, 사람이 어느 순간 공포를 느끼는지까지 세밀하게 계산합니다.
까칠한 현장 측량기사들조차 그의 서글서글한 미소와 성실함에 마음을 엽니다. 그의 설계는 치밀했고, 집요했으며, 주어진 과제에 한 치의 게으름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섬뜩한 역설이 등장합니다. 구보승은 인간을 철저하게 고려했습니다. 문제는 그 ‘인간’이 누구였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가 고려한 인간은 건축을 의뢰한 클라이언트, 즉 국가 권력이었지 그 공간 안에 갇혀 고통받을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빛은 희망이 아니라 통제의 도구가 되었고, 설계의 완성도는 고문의 효율로 전환됩니다.
이 작품은 묻습니다. 기능적으로 완벽한 설계는 언제 폭력이 되는가, 그리고 그 경계는 누가 정하는가를 말입니다.
여재화 교수가 반복해 말하는 “인간을 위한 건축”이라는 문장은 이 소설에서 가장 공허하게 울립니다. 그가 말하는 ‘인간’에는 정작 그 공간에서 고통받게 될 이들이 빠져 있습니다. 창은 희망이라는 말로 설명되고,
엇갈린 동선은 배려라는 언어로 포장됩니다.
그러나 그 설명들은 폭력을 완화하기보다는 폭력을 합리화하는 해석에 가깝습니다. 윤리는 미학의 언어로 번역되고, 책임은 설명 속으로 밀려납니다.
이 지점에서 이 소설은 오늘날의 행정과 제도, 복지 시스템을 떠올리게 합니다. 수혜자가 아니라 운영자의 편의를 기준으로 설계된 구조들, 사람을 돕는다는 이름 아래 오히려 접근을 어렵게 만드는 절차들 말입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서늘한 장면은 설계자의 이름에 ‘여재화’가 아닌 ‘구보승’이 적히는 순간입니다.
겉으로는 제자에게 공을 돌리는 선택처럼 보이지만, 그 이름은 영광이 아니라 기록이 됩니다.
언젠가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이름을 한 발 뒤로 물린 선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건네진 50만 원. 그 돈은 보상이라기보다 관계를 정리하기 위한 금액에 가깝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말이 말해지지 않은 채 봉투 안에 들어 있습니다.
보승은 그 돈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아픈 아버지가 있었고, 생존이 먼저였기 때문입니다.
그 돈은 아마도 병원비로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보승에게는 또 다른 무게로 남았을 것입니다.
결국 보승은 건축을 포기하고 동네의 공인중개사가 됩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는 갈월동을 정처없이 배회하다 한 건물 앞에 멈춰 섭니다. 본래 삼층으로 설계되었다가 증축을 거쳐 오층이 된 건물. 그가 직접 설계했던 '구의집'입니다.
보승은 정초석에 새겨진 연혁을 읽다 마지막 줄에 음각된 설계자의 이름을 손으로 더듬습니다.
구보승
그는 여전히 건물을 봅니다. 고층 빌딩과 아파트단지를 지나며 무의식적으로 시세와 자기를 가늠합니다. 공인중개사라는 직업에 밴 감각입니다.
보승은 공인중개사를 건축가와 지관 사이의 업이라고 말합니다. 더 이상 짓지는 않지만, 공간을 읽는 감각만은 내려놓지 않은 자리.
그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보다, 그 선택이 끝내 그를 이 건물앞에 다시 서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이 장면을 오래 남게 합니다.
이 소설을 읽으며 한 문장이 떠오릅니다. 드라마 <송곳>의 대사
“내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풍경이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여재화는 권력의 자리에서 성공과 미학을 봅니다. 국가는 통제와 효율을 봅니다. 구보승은 그 사이에서 균열과 죄책감을 봅니다. 그리고 그 공간에 갇힌 이들은 선택권 없는 고통을 마주합니다.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명확합니다.
우리는 지금 누구의 시선으로 공간과 제도, 시스템을 설계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이 오래 남았던 이유는 바로 그 지점에 있었습니다. 『혼모노』에 실린 다른 단편들보다, 이 작품은 질문이 우리 삶의 구조와 직접 맞닿아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 는 과거의 한 장소를 다루고 있지만, 그 질문은 여전히 현재형입니다.
‘효율’이라는 말로, ‘중립’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의 삶이 자연스럽게 밀려나고 있지는 않은지 이 소설은 조용히 묻게 합니다.
기능과 성실함만으로는 사람의 삶을 다 담아낼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잘 작동하는 시스템이라 해도 그 안에서 누군가의 존엄이 빠져 있다면 그 설계는 다시 질문되어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 곳곳에도 아직도 보이지 않은 ‘갈월동 98번지’들이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을 위한 구조라고 말하면서 정작 사람을 중심에 두지 않은 채 유지되고 있는 공간들 말입니다.
이 소설을 덮고 난 뒤, 저는 제 자리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됩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어떤 풍경을 보고 있는지, 그리고 보지 못한 채 지나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1. 구보승은 인간을 몰랐던 인물이었을까요, 아니면 너무 잘 알았기에 더 괴로웠던 인물이었을까요?
2. ‘인간을 위한 설계’라는 말은 어디까지를 인간으로 포함할 때 가능한 말일까요?
3. 성실함은 언제 미덕이 되고, 언제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까요?
4. 만약 내가 보승의 자리에 있었다면, 그 선택을 다르게 할 수 있었을까요?
5. 지금 내가 속한 일터나 관계 안에도 ‘잘 작동한다’는 이유로 유지되는 불편한 구조는 없을까요?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나 아렌트
악은 어떻게 평범해지는가? 생각하지 않는 인간들이 폭력에 가담하는 방식을 이론적으로 탐구합니다.
- 『감시와 처벌』, 미셸 푸코
권력이 공간과 제도를 통해 어떻게 인간을 길들이고 통제하는지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책입니다.
- 『침이 고인다』, 김애란
시스템과 제도 안에서 개인이 어떻게 무력해지는지를 문학적으로 그려내어 이 작품과 깊게 맞닿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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