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싸들의 책수다 #17] 손원평, 『서른의 반격』
『서른의 반격』을 읽으며 저는 자꾸 멈추었습니다. 지나온 줄 알았던 서른이, 다시 제 앞에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서른은 정신없이 지나갔습니다. 버티는 법을 배우느라, 어른이 되는 법을 흉내 내느라, 스스로를 다독이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두 번째 서른에 가까워지니 문득 묻게 됩니다.
나는 정말 어른이 되었는가.
아니면 그저 오래 버틴 사람일 뿐인가.
김지혜는 1988년생, 인턴 9개월 차입니다. 화려한 스펙 뒤 현실은 복사와 잔심부름뿐입니다. 수많은 고배와 침묵 속에서 하루를 버팁니다.
그녀는 특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아픕니다. 우리 시대 수많은 '지혜'들의 얼굴이 여기 있습니다.
책을 읽다 보니 예전에 상담실에서 만났던 청년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괜찮아요."라고 말하면서도 괜찮지 않았던 눈빛들.
저는 그들에게 무엇을 말해주었을까요.
"조금만 더 버텨보자."
혹시 저는, 이 구조를 견디는 법만 가르쳐준 어른은 아니었을까요.
지혜와 친구들의 반격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화염병 대신 계란을 던지고, 총 대신 정중한 팩트 메모를 남깁니다.
"법에 저촉되지 않은 한에서, 부당함을 곤란하게 만들자."
그 장면을 읽으며 저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최근에 무엇에 대해 불편해졌는가. 그 불편함을 행동으로 옮긴 적이 있었는가.
우리는 너무 쉽게 말합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괜히 나섰다가 피곤해지면 어떡해."
"세상은 원래 그래."
이 말은 삶을 편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마음을 조금씩 닳게 합니다.
지혜의 반격이 세상을 바꾸지 못해도 한 가지는 남습니다.
나는 알고도 침묵하지 않았다.
그 기억이 사람을 바꿉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아팠던 장면은 지혜가 과거의 친구 앞에서 작아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사회에는 용감했지만 자신의 상처 앞에서는 여전히 침묵했던 지혜.
고등학교 시절 친구 공윤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했던 지혜
그 모습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세상의 정의에 대해서는 말하면서, 정작 나를 갉아먹는 관계 앞에서는 "그냥 내가 참자"고 말했던 적이 있으니까요.
지혜가 "사과하라"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저는 작은 숨을 고르게 되었습니다.
아, 반격은 밖을 향한 분노가 아니라 나를 향한 말하기였구나.
"의자는 의자일 뿐입니다."
책 말미에 남은 이 문장은 독자의 등짝을 겨냥합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의자에 앉아 있나요?
자리와 직함이 권위를 주는 게 아닙니다. 그 자리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가 권위를 만듭니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제가 앉아 있는 자리들이 떠올랐습니다.
강의실, 상담실, 어른이라는 이름.
그 자리에 기대어 저는 너무 쉽게 공감만 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요즘 청년들 힘들지."
그 말 뒤에 제가 해야 할 작은 행동을 미뤄두지는 않았는지.
두 번째 서른을 앞두고 저는 묻게 됩니다.
나는 여전히 돌멩이를 들 수 있는 사람인가.
첫 번째 서른이 버티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면, 두 번째 서른은 침묵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젊은 지혜가 던진 작은 돌멩이는 어쩌면 지금의 저를 향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세상이 너무 편하게 굴지 못하도록.
적어도 내가 앉아 있는 자리만큼은 조금 불편해지도록.
거대한 변화를 만들지 못하더라도, 오늘 단 한 번이라도 "그건 좀 아니지 않나요"라고 말할 수 있다면.
아마 반격은 나이를 묻지 않는 일일 것입니다.
이 소설은 통쾌한 승리의 메시지가 아닙니다. 오히려 실패와 불완전함, 씁쓸함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책을 덮는 순간 마음 한편에 작은 불씨가 살아납니다
거대한 세상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자신을 속이지는 말자는 다짐.
오늘, 내가 마주한 부당함 앞에서 "틀렸다"라고 말하는 용기.
그것이 진짜 반격입니다.
1. 당신에게 서른은 끝난 나이인가요, 다시 시작되는 나이인가요?
2. 당신은 최근 무엇에 대해 불편해졌습니까?
3. 그 불편함을 행동으로 옮긴 적이 있습니까?
4. 지금 당신이 앉아 있는 의자는, 정말 편안하기만 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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