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나를 모르는데,
당신을 안다는 그 위험한 오만

[앗싸들의책수다 #18] 편혜영, 『홀』

by 최은녕 라온나비

[앗싸들의책수다 #18] 편혜영, 『홀』

나도 나를 모르는데,

당신을 안다는 그 위험한 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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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누군가를 오래 알아왔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잘 안다고 믿습니다. 함께 보낸 시간이 많고, 취향 몇 가지를 알고 있고, 서로의 습관쯤은 외우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책을 읽으며 나는 그 믿음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편혜영의 장편소설 『홀』은 바로 그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지도학자인 주인공 오기는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고 전신마비 상태가 됩니다. 병실이라는 좁은 공간에 갇힌 채, 그는 비로소 자신이 평생 그려온 '아내'라는 지도가 얼마나 부정확했는지 직면하게 됩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저는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관계란 결국 발견이 아니라 해석의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이해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저마다의 도법으로 읽어내고 있을 뿐입니다.




사랑은 이해가 아니라 해석일지도 모릅니다

오기는 연애 초기에 아내의 허영과 변덕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열정으로, 생기로, 삶에 대한 적극성으로 해석합니다.


하지만 결혼 이후, 시간이 흐른 뒤 그는 같은 행동을 전혀 다르게 읽어냅니다. 피상적이고 공허한 태도로 말입니다. 달라진 것은 아내가 아니라 그녀를 바라보는 오기의 시선이었습니다.

소설 속에서 오기는 자신의 전공인 지도학을 통해 이런 깨달음을 얻습니다.




"지도는 실패를 통해 나아졌다. 그 점에서는 삶보다 훨씬 나았다. 삶은 실패가 쌓일 뿐, 실패를 통해 나아지지는 않으니까." (79쪽)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마음의 지도'를 그립니다. 관찰하고, 대화하고, 기억을 쌓으면서요. 하지만 그 지도는 결코 정확할 수 없습니다. '조해리의 창'에서 말하는 '눈먼 영역'처럼, 내가 보는 나와 타인이 보는 나 사이에는 늘 거대한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오기가 아내를 '변덕스러운 열정가'로 기록한 지도를 들고 안주하는 동안, 아내는 남편을 '냉혈한 가해자'로 고발하는 전혀 다른 지도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결국 관계의 비극은 "우리는 서로를 다 안다"는 오만에서 시작됩니다.






덩굴식물: 의존을 넘어선 잠식의 공포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상징은 '덩굴식물'입니다.

오기는 덩굴식물을 유독 혐오합니다. 나무를 휘감아 죽이는 덩굴의 끈질긴 생장 방식이 징그럽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어딘가에 뿌리를 내릴 듯 달라붙어서 기어이 파고들어 몸통을 불리는 게 지독해 보였다."(89쪽)


하지만 아내는 다릅니다. 그녀는 집 창문 뒤에 몰래 덩굴을 심습니다. 그리고 그 덩굴은 자라나 결국 오기의 방 안 빛을 막아버립니다.


이 장면이 소름 끼치는 이유는, 덩굴이 단순한 식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덩굴은 숙주 없이는 살 수 없지만 결국 숙주를 무너뜨립니다. 의존하면서도 잠식하는 관계, 함께 있지만 서로를 파괴하는 관계의 무서움을 덩굴은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역설적으로, 아내를 덩굴로 만든 것은 오기가 세운 견고한 '무관심의 벽'이었습니다. 그는 존중이라는 이름으로 아내를 방치했지만, 그것은 사실 귀찮은 존재와의 단절이었을 뿐입니다.






성장이라는 이름의 폭력

오기와 아내가 정원 가꾸기를 두고 벌이는 대화는 숨이 막힐 정도로 서늘합니다.

오기는 아내에게 "성장할 만한 일을 하라"라고 권합니다. 하지만 아내는 전혀 다른 성장론으로 응수합니다.


"계속 성장하는 게 있기는 있어."
"그게 뭔데?"
"암. 암은 성장기가 다 지난 사람한테서 자라잖아."(88쪽)

오기에게 성장이란 '사회적 성취'였지만, 아내에게 그것은 생명을 갉아먹는 질병과 같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 여러 가지를 시도하지만 끝내 결실을 맺지 못하는 아내의 모습은 '안전 기지'가 없는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입니다. 그녀가 그토록 집착하는 정원 가꾸기는 그래서 더욱 절실합니다. 그것은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지만, 그녀 자신만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세계였으니까요.



관계 속의 '홀'이란 무엇인가

이 작품에서 '홀'은 단순한 정원의 구덩이가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알고 있다고 믿는 타인의 모습과 실제 타인의 삶 사이에 존재하는 공백,
서로가 서로를 해석하며 만들어낸 오차의 공간입니다.


우리는 지도 없이 세계를 이해할 수 없지만 지도만으로 세계를 표현할 수 없듯, 관계 역시 해석 없이 지속될 수 없지만 해석만으로 그 실체에 닿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관계 속에는 늘 작은 구멍이 생깁니다. 그 구멍은 오해일 수도 있고, 침묵일 수도 있고, 혹은 너무 오래 굳어버린 믿음일 수도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 허연 시인의 시집을 읽고, 오기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십 대야말로 죄를 지을 조건을 갖추는 시기였다. 힘을 악용하는 경우라면 속물일 테고 분노 때문이라면 잉여일 것이다. 영영 속물로 살지, 잉여로 남을지." (78쪽)

권력을 가진 '속물'로 살며 타인을 도구화해 온 오기의 죄는 전신 마비라는 물리적 감옥으로 돌아왔습니다. 사십 대에 지은 '죄의 조건'들이 오십 대에는 피할 수 없는 '삶의 풍경'으로 굳어버린 것입니다.






'쿨한 모름'이라는 안식

결국 『홀』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은 관계에 대한 서늘한 불가지론입니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누군가를 안다고 자부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습니다.


악착같이 알려고 들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외면하지도 않는 '쿨한 모름'. 서로가 서로에게 영원히 타인임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덩굴처럼 상대를 휘감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숨 쉴 수 있습니다.


내 발밑에 언제든 '홀(구멍)'이 생길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지도가 가르쳐주지 못한 삶의 진짜 도법일지도 모릅니다.






앗싸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

1. 육체적 통제권을 상실했을 때, '나'라는 존재는 어디에 머무는가?

오기는 정신은 멀쩡하지만 대소변조차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는 식물인간이 됩니다. 만약 내가 내 육체에 대한 결정권을 잃고 오직 타인의 손길로만 숨 쉬어야 한다면, 나는 여전히 '존엄한 인간'으로 남을 수 있을까요? 그때의 '나'를 정의하는 것은 나의 의지일까요, 아니면 타인의 돌봄일까요?


2. 관계에서의 '방치'는 '폭력'과 어떻게 다른가?

오기는 아내를 때리거나 대놓고 학대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무관심했고, 방치했으며, 자신의 여유를 위해 아내의 취향을 '양해'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 '세련된 방치'가 아내에게는 암세포 같은 고통이 되었습니다. 우리 삶에서 '무관심'이라는 이름의 폭력은 얼마나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을까요?


3. 우리는 타인을 '구원'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저 '잠식'할 뿐인가?

아내는 가드닝을 통해 구원을 얻으려 했지만 결국 덩굴처럼 오기를 잠식했습니다. 장모 또한 딸의 복수라는 명분으로 오기를 잠식하죠. 누군가를 돕거나 이해하려는 노력이 상대의 숨통을 조이는 '덩굴'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어떤 거리를 유지해야 할까요?


4. 사십 대(혹은 오십 대)의 성취는 정말 '성공'의 증거인가?

오기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지도학 교수였지만, 그의 삶은 거대한 구멍 위에 세워진 사상누각이었습니다. 오기가 정의한 '속물'과 '잉여'의 구분법에 비추어 볼 때, 지금 우리가 악착같이 쌓아 올리는 것들은 훗날 우리를 지켜주는 성벽이 될까요, 아니면 우리를 가두는 감옥이 될까요?


5. '나도 나를 모르는데, 남이 나를 안다는 게 가능할까?'

오기는 식물인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이 아내를 전혀 몰랐다는 걸 깨닫습니다. 나도 나 자신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데, 타인이 나를 안다고, 혹은 내가 타인을 안다고 믿는 건 얼마나 오만한 일일까요? 이 '모름'을 인정하는 것이 관계에 냉소를 가져올까요, 아니면 오히려 덩굴 같은 집착에서 벗어나는 길일까요?




지도를 믿지 마세요.
당신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심연은
그 어떤 도법으로도 그려낼 수 없으니까요.





함께 읽어보시면 좋은 책

관계와 이해의 문제를 더 깊이 생각해보고 싶다면 이 책들도 함께 권해드립니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 사랑을 감정이 아니라 '능력'으로 설명하는 고전입니다. 이해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사랑이 어떻게 해석과 상상 속에서 만들어지는지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관계의 환상을 섬세하게 드러냅니다.


-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 — 자기 해석 속에 갇힌 삶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홀』은 상실과 모름, 고독과 의존이라는 관계의 복잡한 감정선을 섬세하게 그리며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타인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깊은 고독 속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자기 자신도 돌보는 법을 고민하는 모든 분께 추천합니다.

앗싸들의 다음 책수다에서도, 혼자 읽기 아까운 책으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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