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싸들의 책수다 #20] 라우라 에스키벨,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우리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혼자서는 그 성냥에 불을 당길 수 없습니다. 산소와 촛불의 도움이 필요하지요. 산소는 사랑하는 사람의 입김이 될 수 있고, 촛불은 음식이나 음악, 언어, 소리가 되겠지요. 그 불꽃이 일면서 생기는 연소작용이 영혼을 살찌웁니다. 자신의 불씨를 제때 찾아내지 못하면 성냥갑이 축축해져서 한 개비의 불도 지필 수 없게 됩니다."
— 존 브라운 박사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중에서
이 책을 덮고 난 뒤 제 마음에 남은 것은 달콤한 초콜릿 맛이 아니었습니다. 솥 안에서 끓어오르던 열기가 아니라, 땅속 깊은 곳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마그마의 감각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안의 불을 끝내 태워버린 한 인간의 연소 과정에 대한 기록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 연소는 말이 아니라 '요리'라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티타에게 부엌은 감옥이면서 동시에 유일한 언어였습니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상징은 '성냥갑'이라고 생각합니다. 존 브라운 박사는 티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몸 안에는 누구나 성냥갑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혼자서는 그 성냥에 불을 붙일 수 없다고. 사랑하는 사람의 입김 같은 산소와, 음식이나 음악, 언어 같은 촛불이 만나야 비로소 불꽃이 타오른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중심에 놓고 보니, 이 소설의 모든 인물들은 결국 '자신의 성냥을 어떻게 다루는가'로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마마 헬레나는 단순한 억압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녀 역시 사랑을 잃고, 원치 않는 결혼과 사별, 그리고 죄책감을 동시에 감당해야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상처는 ‘전통’이라는 형태로 굳어졌고, 막내딸은 결혼할 수 없다는 집안의 규율과 감정 억압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결혼 후에도 호세의 편지를 ‘어두운 방’에 차곡차곡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감정을 철저히 통제하면서도, 단 한 공간만은 자신의 사랑을 숨겨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그 방은, 마마 헬레나가 평생 봉인해 두었던 감정이 머물던 자리였는지도 모릅니다.
티타에게 부엌이 감정을 분출하는 언어의 공간이였다면, 마마 헬레나에게는 그 어두운 방이 감정을 봉인해 둔 공간이었습니다. 말해지지 못한 사랑, 끝내 살아내지 못한 선택들이 그 안에 머물러 있었던 셈입니다.
상처는 종종 그런 방식으로 다음 세대에게 흘러갑니다. 자신의 성냥이 젖어버린 사람이, 타인의 성냥까지 젖게 만드는 구조. 티타를 향한 냉혹함은 통제라기보다 두려움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처럼 될까 봐, 혹은 자신이 포기한 삶을 마주하게 될까 봐.
그럼에도 티타의 성냥이 완전히 젖어버리지 않았던 이유는 나차 때문이었습니다.
나차는 티타의 감정을 막지 않았습니다. 눈물을 닦아주는 대신 반죽에 스며들게 두었습니다. 슬픔이 음식이 되고, 감정이 맛이 되는 과정을 그대로 허용했습니다.
심리학적으로 감정은 억압될 때 병리가 되지만, 표현될 때 통합됩니다. 나차는 티타가 자신의 감정을 잃지 않도록 지켜준 존재였습니다. 성냥이 젖지 않도록 곁에서 온기를 유지해준 사람. 그래서 티타는 끝내 불을 붙일 수 있는 상태로 남아 있을 수 있었습니다.
티타는 결혼할 수도, 아이를 가질 수도 없는 운명이었지만, 누구보다 강렬하게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로베르토를 받아내고, 젖이 나오지 않는 언니를 대신해 조카에게 젖을 물리는 장면은 사랑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몸을 변화시키는 힘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후 티타는 에스페란사를 20년 동안 키우며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삶을 다음 세대에게 열어줍니다. 특히 마마 헬레나에서 티타로 이어졌던, 가문의 규율이라는 이름 아래 굳어져 온 억압, 그리고 그것이 로사우라를 통해 에스페란사에게까지 번지려던 흐름을 티타가 끊어낸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돌봄이 아니라 ‘대물림을 중단하는 행위’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티타의 요리는 변합니다. 전수받은 레시피를 따르던 사람이 재료를 바꾸고 방식을 바꾸며 자신만의 요리를 만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곧 자기 언어를 획득하는 과정입니다.
같은 억압 아래서도 세 자매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다룹니다. 로사우라는 체면과 전통을 붙잡은 채 서서히 식어갔고, 헤르트루디스는 욕망을 따라 탈주했습니다. 티타는 그 둘 사이 어딘가에서 끓어오르면서도 분출되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을 버텼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에서 가장 촘촘한 상징으로 남는 장면이 있습니다. 티타와 페드로가 처음 하나가 된 공간이 바로 엄마의 그 '어두운 방'이었다는 것입니다. 마마 헬레나가 평생 억압한 사랑을 혼자 간직했던 곳에서, 엄마가 끝내 이루지 못한 것을 딸이 이루는 순간. 그리고 그것은 헤르트루디스의 침대 위에서였습니다. 욕망을 따라 탈주한 언니가 남기고 간 자리에서. 억압의 성소가 해방의 공간이 되는 그 장면은, 작가가 얼마나 정밀하게 이 소설을 설계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연소는 산소와 가연물이 만나야 일어납니다. 하지만 티타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티타의 삶에는 두 종류의 사랑이 존재했습니다. 존 브라운은 산소 같은 존재였습니다. 안정과 존중을 주고, 감정을 기다려주며, 삶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사랑. 반면 페드로는 불꽃이었습니다. 위태롭고 비겁한 선택을 하기도 했지만, 티타의 성냥을 단숨에 타오르게 만드는 존재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어떤 삶을 선택하는가'입니다. 산소만으로는 불이 타오르지 않고, 불꽃만으로는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억눌려 있던 사람에게는 작은 불꽃 하나가 삶 전체를 바꿀 만큼 강렬하게 작용합니다.
그래서 티타는 생존을 위한 사랑이 아니라, 연소를 위한 사랑을 선택합니다. 그 선택은 위험하지만, 동시에 가장 자기다운 선택이기도 합니다.
나라면 아마 존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티타의 나이와 억압의 무게를 생각하면, 그녀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오래 눌려 있던 것은 조금만 빛을 보아도 그쪽으로 달려가게 되어 있으니까요. 살아보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열정은 타오르지만, 온기는 살립니다. 존은 산소 같은 존재였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없으면 살 수 없는. 페드로는 불꽃이었습니다. 강렬하지만 연료가 다하면 꺼지는. 티타는 불꽃을 선택했고, 그 선택으로 자신을 태웠습니다. 틀렸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저는, 오래 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금 알 것 같아서, 그래서 더 오래 존을 생각하게 됩니다.
마지막 순간, 티타는 죽고 싶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더 살고 싶다고, 이 감정을 더 느끼고 싶다고. 그러나 페드로의 죽음과 함께 자신의 불꽃도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때 그녀는 존이 건낸 성냥을 꺼내 하나씩 씹어 삼킵니다. 그리고 페드로와 사랑했던 순간들을 하나씩 떠올립니다. 기억과 감정, 그리고 물질이 결합되는 순간, 다시 불꽃이 타오릅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 불꽃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 장면은 비극이면서 동시에 완성입니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불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불을 점화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불타 사라진 뒤 남은 것은 한 권의 요리책이었습니다. 티타의 감정과 욕망, 사랑이 담긴 레시피는 다음 세대로 이어집니다. 사랑은 사라지지 않고 형태를 바꾸어 남습니다.
결국 이 소설은 사랑의 성공이나 실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안의 불을 어떻게 다루고 끝까지 책임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당신의 성냥은 타오르고 있습니까, 아니면 젖어가고 있습니까
1. 나차처럼 감정을 '멈추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흐르게' 해준 경험이 있으신가요?
2. 마마 헬레나처럼 상처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장면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적이 있으신가요?
3.지금 내 삶에서 산소 같은 존재와 불꽃 같은 존재는 각각 무엇인가요?
4. 나는 안정시키는 사랑과 나를 태우는 사랑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 선택을 해왔나요?
5. 누군가에게 전수받은 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바꾸어본 경험이 있나요?
6. 내가 다음 사람에게 남기고 싶은 '요리책' 같은 것은 무엇인가요?
『바베트의 만찬』 이자크 디네센 — 요리가 인간의 존엄과 기억을 어떻게 복원하는지 보여주는 작품으로, 감정이 음식이 되는 과정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합니다.
『향수』 파트리크 쥐스킨트 — 감각이 인간의 욕망을 어떻게 지배하는지 보여주며, 티타의 요리와 다른 방식으로 '감각의 서사'를 확장합니다.
『아우라』 카를로스 푸엔테스 — 욕망과 기억,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또 다른 정점을 보여줍니다. 다음 회차로 이어질 작품이기도 합니다.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 구조가 한 여성의 삶을 어떻게 결정짓는지를 오늘의 언어로 그린 소설입니다. 마마 헬레나의 억압이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면, 이 작품이 그 감각을 더 선명하게 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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