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시청 앞에서 파리 서쪽으로 가는 손님을 태운 것이 23시 29분이었다.
종착지를 확인하고 출발했을 때,
라디오 클래식에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주곡이 나올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지휘 그리고 베를린 필의 연주, (1972년에 발매)
'옳거니! 잘됬구나' 싶었다.
처음으로 제대로 카라얀이 지휘한 바그너를 집중해서 들어보기로 했다.
밤이었고,
자동차는 역시 음악을 감상하기엔 최적의 공간이다.
첫 소절이 끝나기도 전에 웃음이 나왔다.
아..
알 것 같았다.
어쨰서, 카라얀의 바그너는 아닌지..
정말 대단한 카라얀임이 분명했지만,
바그너엔 아니었다.
바그너를 연주하는데, 베토벤을 듣는 것 같았다.
바그너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내가 들어도 바그너 같지 않았다.
진정한 '바그네리안 (Wagnerian, 바그너 추종자를 일컫는 말)'이 듣는다면,
(듣지도 않겠지만)
대로할 연주였을 것이다.
카라얀은 이미 '카라얀을 이해하는 법'에서
스티븐 스필버그 같다고 정리한 적이 있다.
카라얀의 음악은 정말 멋있고, 듣기 좋다.
그런데 바그너 음악은 바그너 특유의 무언가 조금 이상한 게 있는데,
카라얀이 연주한 바그너에는 그런 게 없었다.
베토벤 영웅처럼 웅장하고 멋졌다.
아.. 이래서 카라얀의 바그너는 아니구나..
최근 들어 건진 최고의 수확이었다.
나도 모르게 운전하며 웃음이 나왔다.
'카라얀의 바그너는 아니다.'라는 가설을 얻은 9월 13일 23시 29분이었다.
기분이 좋으니 생각이 이어졌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카라얀의 바그너가 아닌 이유..
홍어가 생각났다.
홍어, 하면 전라도의 전통요리 삭힌 홍어가 대표적이다.
삭힌 홍어를 오합으로 먹기도 하고
무침으로 먹기도 한다.
그런데,
전라도의 경우 삭힘의 정도가 전통의 방식을 따르게 되면,
정말 토종 전라도인이 아니면 범접할 수 없는 맛이 된다.
서울이나 다른 기타 지역에서도 홍어로 요리를 하며
결혼식과 같은 피로연에 매콤한 홍어무침을 올려놓는다.
맵고 달고, 식토를 넣어 시큼함을 더해, 소위 새콤달콤,
접근하기 쉬운 맛의 홍어무침, 홍어요리가 된다.
그런데 이것은 전라도인의 관점에서 보면,
진정한 홍어요리라고 할 수 없다.
카라얀이 연주한 바그너가 그랬다.
듣기 좋고 웅장하고 멋있는데,
왠지 너무 느리고, 맥이 없이, 무언가 빠져있는,
카라얀은 바그너를 베토벤처럼 연주한다.
전라도 이외의 홍어무침은
홍어 무침을 다른 무침이랑 비슷하게 만들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ps
음악에 골몰한 나머지
내비게이션만 따라갔는데
손님이 길을 돌아갔다며 컴플레인을 했다.
애플리케이션 내비게이션을 잘 따라갔는데도 길을 돌아간 모양이다.
바그너와 카라얀의 관계를 알고 너무 기분이 좋아서
잘못이 아닌데도 진심으로 연신 사과를 드렸다.
음악에 너무 몰두해서 길을 자세히 못 보았다고 까지 말해버렸다.
-나는 파리의 우버 운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