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흐의 '콜 니드라이' 그리고 예술이란...

나는 파리의 우버 운전사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 그리고 예술이란,


예술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난 그런 거대한 질문에 답할 수 없다

라고 하시던 백남준 선생의 말씀이 늘 나의 대답이 이기도 했다.

얼마 전,

예술을 언저리를 나는 왜 배회하고 있을까?

라고 고민하며 달리고 있을 때

라디오에서 '콜 니드라이'가 흘러나왔다.


콜 니드라이(Kol Nidrei)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는

첼로 솔로와 오케스트라 협주가 흐르는 12분여의 짧은 곡이다.


내가 이곡을 알게 된 것은

대학 입시를 앞두고 화실에 다닐 때였다.

원장 선생님께서 지나가며 하신 말씀이

당신께서 가시는 카페가 있는데

자신이 들어서면 늘 주인이 이곡

콜 니드라이를 틀어준다는 것이다.

참 멋져 보였다.

자신이 들어가면,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이 자신을 위해 흐른다..


그해 원장 선생님의 생신 때 브루흐 콜 니드라이 음반을 선물해 드렸다

어떤 연주자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니 우째 알았노? 아이 엄마도 말안해줬다 카든데..잉?”

지나가면서 하신 말씀 이었던 것을 기억 못 하신 것이다.

아마 여전히 내가 어떻게 그 비밀을 알게 되었는지 모르실 거다

한편 놀라시고 또 한편 행복해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입시가 끝나고, 이듬해 시험 전날까지 나를 기다리셨다고 들었다.

내가 지방대학에 간 것이 못내 아쉬우셔서 재수하기를 원하셨는데

난 결국 재수를 하지 않았고, 화실을 찾지 않았다.


시험 전날

“이 녀석이 결국 안 오는구나” 하셨다는 이야기를 친구에게 전해 듣고

나도 모르게 가슴이 찡했다.

스승은 나에게 각별했고,

나 또한 스승에게 각별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이 콜 니드라이였다.


콜 니드라이를 선물해 드리며 나도 얻은 것이 있었다.

멋지고 낭만적인 그 모습,

누군가를 위해 음악을 틀어주는 그 장면을 배운 것이다.


나는 정말 그대로 따라 했다.

재대를 하고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카페일

좋은 음악, 여전히 기억나는 아침 첫 커피 향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좋은 사람들

누군가 흐르고 있는 음악에 대해 물어오면

그 사람이 다음에 가게에 왔을 때 기억해 두었다가 꼭 그 음악을 틀어 주었다.


개인정보이니 누구를 말할 수 없겠으나

이미 공인이신 분은 개인정보가 아니니 하나 풀어본다면,

연극하시는 이호재 선생께서 자주 카페를 찾으셨는데

늘 오시면 고엽, 이브 몽탕의 고엽을 틀어드렸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연극배우 윤소정 선생께서 함께 오신 날이었다.

이호재 선생은 내게 몰래 윙크를 하셨고

나는 이브 몽탕의 고엽을 틀어드렸다.


노래를 틀 때 잠시 침묵을 흐르게 하면 사람들의 주의 관심이 집중된다.

이내 조용해지기도 하고 또 왜 음악이 안 나오지 하고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렇게 몇 초를 침묵이 흐른 뒤 음악이 흐르면,

아 이곡이 나를 위한 곡이구나 하는 당사자는 금방 알아챈다.


윤소정 선생은 그날 음악이 끝나도록 주문을 안 하셨다.

고마웠다.

정말 멋진 중절모를 쓰신 채

바 바로 옆 1번 테이블에서 바 쪽으로 비스듬히 기대어

음악을 다 들으신 후에야 주문을 하셨었다.


무엇을 주문하셨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와 눈을 맞추시고는

“여기 아주 잘 훈련된 사람이 있네”라고 말씀하시며

엷은, 정말 엷은 미소를 지어주시던 모습만은 여전히 생생하다.


나중에 윤소정 선생이 소천하셨다는 이야기를 이곳에서 들었다.

암으로 투병 중이셨던 오현경 선생은 그 이후로도 건강하신데

왜 윤소정 선생은 그리 빨리 떠나셨는지

야속했다.


여전히 콜 니드라이를 들으면

이렇게 음악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추억들이

줄줄이 떠오른다.

그래서 어찌 보면

예술이란, 이렇게 음악을 통해서 건

미술을 통해서 건

하나의 감정을

하나의 감동을

전달하고

감동시키고

또 기억시키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여전히 예술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야속하게 흐르는 시간 속에

여전히 가슴을 촉촉이 적셔주는 그 무엇이라는 것


음악을 틀어주는 행위는

나에게 분명 하나의 예술행위 같은 것이었었나 보다.

그리고 그 행위를 미술에서 좀 더 분명히 잡고 싶어서

여전히 그리고 또 그리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파리의 우버 운전사

ps

브루흐 콜 니드라이

대체할 수 없는, 대체되지 않을, 쟈크린 뒤 프레의 연주다

https://www.youtube.com/watch?v=i91RX2LhY8s

대체할 수 없는, 대체되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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