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나는 그가,
가난했던 사람이어서 좋다...

파리의 우버 운전사

오래전, 프랑스 민영방송 채널에서 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아주 부자인 가족과 평범한 중산층 가족이 서로 맞바꾸어 일상을 체험하는 설정이었다.

프랑스 사회에서 젯셋(Jet-Set)이 한창 화제가 되던 시기였다.

(Jet-Set은 제트기를 타고 다니는 부유층을 지칭하는 말이다. 90년대 강남의 오랜지족과 같다.) 


그날의 일과는 캠핑휴가였다. 

중산층 집에 정착한 부자 가족은 캠핑장에 도착하고 저녁을 준비할 순서였다.

남자 아이에겐 샐러드를 씻어오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공동 주방으로 안내된 아이는 허둥데기 시작했다.

평생 샐러드를 씻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대선에 나온 후보가 버스요금을 모르고,

또 다른 후보는 지하철을 탈 줄 모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비판이 쏟아지고 세월이 흘렀지만, 

총리는 여전히 버스비와 택시비를 알지 못했다.

살아온 '세계'가 다른 것이다.


그래서,

가난했던 그가 좋았다.

환경미화원이었던 아버지가 주워온 과일을, 그날 밤에 다 먹어야 했다.

냉장고가 없어서였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신선한 과일은 '로망'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시장이 된 그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신선한 과일을 주었다.


그렇게,

결핍을 경험해 본 사람이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

정치를 하는 사람이라면 궁핍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요즘 정부의 인사들이나 정치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모두가 참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들을 보면, 

참 모두 '자신만을' 위해 열심히 사는것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을 아는 사람은, 가난을 경험한 정치인은, 타인을 위해 애를 쓴다.


가난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을 잃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장관에 추천되었던 어떤 사람은 건물주임에도 코로나 지원금을 알뜰히 챙겼다

직원들에게 모든 주식을 양도한 것처럼 보였던 한 정치인은 따지고 보니 손해 본 것이 없었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 분들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계속 그렇게 사시라.. 그러나 나라일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자신만을 위해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국민의 혈세로 먹여살릴 필요는 없지 않는가?


우리나라는 돈이 없는 나라가 아니다. 돈을 쓸데없는 곳에 쓰는 나라다.

'가난'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현실'이 얼마나 절박한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서민이 얼마나 '고통'속에 사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라 곳간을 맡긴 때문이다.

법인카드만 써본 총리가 서민의 장보는 심정을 알겠는가..


부유한 사람들에게 표를 던지는 것은,

나도 그렇게 부유해질 수 있다는 욕망에 표를 던지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변하지 않는다. 현명한 사회 함께 살아야 모두 살아남는다는 것을 안다.

각계 각층으로부터 사회적 의무의 공감대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졸부들의 사회에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자신의 아파트값만 붙들도 있는 사회는 침몰하게 마련이다. 일본이 그랬다.


나는 그가 가난했던 기억을 잊지 않아서 좋다.

나는 그가 가난했던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서 좋다.

사회가 부유해지면 부유해질수록 가난한 사람들은 소외된다.

사회가 '부유함'만을 쫓아가면, 뒤처지는 사람들은 계속 소외된다.

텔레비전 광고만 보아도, 우리가 얼마나 '차별'을 지향하는지 느낄 수 있다.

'이 물건 정도는 구입해 줘야 당신은 특별한 사람입니다"라는 말을 한다.

두통약에서 맥주까지, 또 어떤 자산 상담 광고는 대놓고,

'특별한 존재'로 대접받을 기회를 이야기 한다.

과거에 보았던, 최고의 기업이라는 곳이 만든 최악의 광고가 떠올랐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

이렇게 끔찍한 광고 카피는 본 적이 없다.

그 무지가 놀라웠고, 비인간성이 절망스러웠다.


차별의 욕망도 개인의 자유일수 있다.

모두 그런 욕망에 몸을 맡길 자유가 있다.

그러나 내 마음은 그 욕망에 몸을 맡기더라고, 사회는 그 욕망에 따라 흘러가더라도,

나라는, 국가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해야 하지 않을까?

모든 사람들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렇게는 못하더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다시,

가난했던 그가 좋다.

임대 아파트 아이들은 놀이터에 오지 말라고 했다는, 

이 무서운 차별의 현실에서, 실낱같은 마지막 희망을 꿈꾸며,

가난했던 사람, 가난을 아는 사람,

이재명을 지지한다.


#thegreatdays2022 le 11 FEV 2022 삶의 교차점,이재명의 삶과 우리의 삶.위대한 일상 2022년 2월 11일


"저의 정치에는 제 삶이 투영돼있습니다. 

썩기 직전의 과일을 욱여넣던 게 가슴에 맺혀 어린이 건강과일 공급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우리 아이들만큼은 먹고 싶을 때 언제든 냉장고에서 싱싱한 과일을 꺼내먹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교복을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한 게 한이 되어 아이들에게 최소한 교복 한 벌은 해주자, 

돈이 없어 교복 물려입게 하는 부모의 아픈 심정 조금이라도 덜어주자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무상교복 사업을 도입했습니다"   (1월24일 성남 상대원시장 연설중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기억하다, 이렇게 늙고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