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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역의 미친년은 나야!"
-유자 왕

파리의 우버 운전사

짧은 미니스커트 그리고 킬힐.

클래식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그런 의상을 소화해내는 피아니스트가 있다.

바로 유자 왕(Yuja Wang)이다.


중국 출신의 피아니스트로 

무용가인 어머니의 영향인듯한 

그녀의 파격적인 '코디'는

그 어떤 연주자보다 화려하다


30여 년 전쯤, 

오프라 하노이라는 첼리스트가 있었다.

빼어난 금발의 미모 덕분에 화제도 많이 되었고

한국에 내한 공연까지 왔었다.

난 그녀의 펜이었다.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앙코르로 '콜 니드라이'를 외치던 관객에게 

화사한 미소로 정중히 사양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무척 아름다웠던 그녀는 

'실력'보다 '외모'로 승부를 본다는 

비판 아닌 비판을 들었던 

첫 세대의 연주자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한 비판을 잠재울 정도의 

실력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월이 흘러 시대가 변했다.

모든 것이 아름다워하는 

'미적인 욕구가 폭발한 이 시대에

요즘은 화려하거나 아름답지 않은 연주자를 찾기 힘들다.


그중에서도 단연 화려한 것이 바로 유자 왕이다.

그녀의 화려함은 '논란'이 될 정도다

누가 보아도 아슬아슬한 의상으로 

늘 언론을 장식하기도 한다.

젊은 시절에 마음껏 입고 싶은데로 입겠다는 

그녀의 당찬 입장은 화려한 그녀의 연주와 꼭 닮아있다.

높은 고난도의 기교를 요구하는 곡들을 

멋지게 쳐내려 간다.


나는 그러한 그녀의 연주 영상을 볼 때마다

한편으론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늘 많은 피아니스트들을 볼 때마다

저렇게 치기까지 

얼마나 애를 썼으려나.. 란 생각이 들었던 것과 같았지만

유자 왕의 연주를 보거나 들을 때면

왠지 마치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하는 

확고한 집념이 더 느껴져서

그것이 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저렇게 화려한 의상을 입고서 연주가 엉망이라면,

행여 하나라도 실수를 한다면

아니 저렇게 굽이 높은 하이힐을 신고서

페달을 밟다가 '삐끗'하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하고 불안한 생각이 드는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실수를 하는 모습은 좀처럼 볼 수 없었다.

저렇게 치려고, 자신의 에고를 치키려고 얼마나 애를 썼을까..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운 마음 역시 늘 지워지지 않았다.


사실, 프로코피에프, 차이콥스키, 

이름도 어려운 작곡가들의

이름 발음보다 백만 배는 

더 어려울 곡들을 유려하게 연주해내는 

유자 왕의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반면 느리고 깊게 연주하는 

라벨의 2악장 연주에 대해

그저 느릴 뿐이라고 

나도 모르게 깎아내려는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라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언젠가 미니스커트를 입을 수 없는 나이가 온다면

또 어떤 모습의 연주가 나올까 무척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녀의 연주가 보여주는 외침이 그 어느 때보다도 피아노 고음처럼 청명하다.


"이 구역의 미친년은 나야!"



파리의 우버 운전사



에필로그 1

이 대사는 미국 드라마 드라마:가십걸에서 처음 나온 대사로, 블레어가 G를 엿 먹이면서 경고의 의미로 날린 대사이다. 원 대사는 'Haven't You Heard? I'm The Crazy Bitch Around Here'로, 직역하면 '못 들어봤어? 이 구역이 미친년은 나야'라는 의미이다. (설명 출처 :https://openwiki.kr/%EC%9D%B4_%EA%B5%AC%EC%97%AD%EC%9D%98_%EB%AF%B8%EC%B9%9C%EB%85%84%EC%9D%80_%EB%82%98%EC%95%BC )


에필로그 2

어제 서울, 부산 시장 보궐선거가 있었다.

석연치 않은 선거였다.

누가 이겨도 석연치 않은...

그럼에도 각종 비리와 거짓말로 얼룩진 후보들의 당선을 보며

오랜만에 씁쓸했다.

코로나 사태를 잘 대처한 정부가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호되게 회초리를 맞는 상황이 안타깝다.

그럼에도 자포자기할 순 없으니

유자 왕의 '당찬 연주'처럼

모두 털고 일어나서

다시 시작.

어떤 쪽이던 또 어느 길이던,

모두에게 이로운 길로...





*유자 왕이 연주하는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협주곡 2번

https://www.youtube.com/watch?v=PyqJW6lVaWY


*유자 왕이 연주하는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협주곡 3번

https://www.youtube.com/watch?v=sKhED4IiPb4


*중후한 아름다움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https://www.youtube.com/watch?v=BszBccYHu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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