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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훈, 쿠렌치스, 장한나
그리고 비창

파리의 우버 운전사

처음 차이콥스키의 비창을 운전하며 들었을 때

'아이고 이거 안 되겠다. 사고 나겠다'

라는 생각이 덜컥 들어 한번 듣고 다시는 듣지 않았다.


하이든의 놀램 교향곡보다 더 심장 떨어지게 하는 순간이 있고,

무슨 정신 병자, 조울증 환자가 작곡한 듯이 

밝았다가 우울했다가

종잡을 수가 없었으며,

아.. 그 마지막 4악장의 우울함이란..

운전을 하다가 어딜 들이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하는 '우울함'이었다.


악곡 형식에 장례식을 위한 미사곡인 '레퀴엠'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차이콥스키의 비창은, '장례식' 그 자체였다.

한 인간의 죽음을 기리는 의식을 넘어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었다.


마지막에 삶을 돌아보며 회상하기 직전,

마지막 에너지를 쏟아내듯이 활기찬 불길을 내뿜듯 빠르게 전개되는 3악장

그리고 그 불길이 잦아들고 마치 관속에 누워있는 나를 내려다보며

지나온 삶을 반추하듯 천천히 뒤돌아보는 마지막 4악장.


차이콥스키의 비창은 

그 어느 곡보다 어둡고도 무거운 곡이었다.

이곡이 초연되고 아흐레 뒤 차이콥스키는 죽음을 선택했다.

자신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쓰였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지난주엔 내내 비창을 들으며 일을 했다.

조금 신경이 많이 쓰이긴 했다

갑자기 '쿵쾅!' 하고 음악이 터져 나오는 1악장의 앞부분에선

미리 소리를 줄여 놓아야 했다.


정명훈 선생의 원 오케스트라의 연주,

테오도르 쿠렌치스의 아테르나

그리고 장한나의 트론헤임 오케스트라와의 내한공연

이 세버전을 주로 들었다.


흥미로왔다.

정명훈 선생의 연주는 묘한 침울함이 전채에 드리워져 있어서 흥미로왔다.

4악장은 유독 더 어두웠는데

3악장과 4악장 사이에 터 저나 온 박수 소리 때문에 

더 우울해졌을까? 란 묘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3악장 끝나고서는 박수가 자주 터져 나온다

워낙 피날레처럼 웅장하기 끝나기 때문에 

그냥 들으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환호성과 함께 박수가 나오는 것이다.


쿠렌치스의 연주는 정말 각이 단단히 잡혀있다

마치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 해병 의장대의 사열을 보는 것 같다

철저히 훈련된 최고의 팀워크

마에스트로의 목표에 정확히 일치하는 단원들이 

한치의 빈틈도 없이, 전투를 하듯이 연주한다.


그리고 장한나의 오케스트라..

아.. 이토록 애쓰는 마애스트로가 또 있을까...

동영상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아니 들 수 없었다.

단원들은 너무나 편안해 보이는데

지휘지 만큼은 시작부터 땀을 흘리며 혼신을 다하고 있었다.


마음이 더 짠했던 것은,

눈빛만으로도 즉각적으로 오케스트라가 반응하는

쿠렌치스의 단원들(아르테나)이 생각나서였다.

장한나의 오케스트라 트론헤임의 단원들은

나이도 지긋해 보이셨고

북유럽 특우의 감정 없는 모습으로,

마치 어린 여성 지휘자를 보며

'아이고 우리 손녀뻘인 마에스트로가 저렇게 애쓰는데 

연주한 번 해볼까?' 하는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롭게도,

세 가지 버전의 비창을 들으며,

가장 여러 번, 4악장에서 눈물이 핑 돌았던 것은

장한나의 연주였다.

왜일까?

그냥 그 공연의 모습이 떠올라서일까?

모르겠다.


쿠렌치스만큼 '일사불란'하지 않았고

또 정명훈만큼 '멋있지'않았지만.

(이 부분은 뭐라 표현해야 할지 솔직히 모르겠다.

정명훈 선생의 원 오케스트라는 연주가 무척 멋있었다.

파트별로 모두 멋있었다.

그래서 비창의 슬픔과 멀어 보였다..)


장한나가 지휘한 서울 공연의 마지막 악장은

뭔가 깊은 슬픔이 느껴졌는데,

그냥 드는 생각은

지휘자의 진심에

단원들의 단단했던 마음이

녹아내린 것이 아닐까? 란 생각이 들었다.

하여,

장한나의 공연의 공은 오로지 지휘자의 것처럼 느껴졌다.


장한나를 응원한다.

최고의 여성 지휘자가 아니라

최고의 지휘자가 되기를 기원한다.

남성 여성을 넘어선 오로지 위대한 마에스트로가 되기를..



파리의 우버 운전사


*정명훈과 원 코리아의 연주 실황

https://www.youtube.com/watch?v=65nvqmVhZ3g


*장한나의 트론헤임 오케스트라의 비창 , 서울 2019년 11월

https://www.youtube.com/watch?v=TUF6puOuvSc



*테오도르 쿠렌치스의 무지카 아테르나 , 비창

https://www.youtube.com/watch?v=BH0P6JS16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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