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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렌치스 외인구단

나는 말러 음악이 어렵다.

그리고 지루했다.

15년 전 정명훈 선생이 프랑스 라디오를 이끌고

전곡 연주에 나서셨을때

두 개의 공연을 들었는데

길고도 지루했던 기억밖에 없다.

하나도 이해되지 않았고 잘 와 닿지가 않았었다.

내가 너무 어렸었나?


그런데 얼마 전 유튜브에서 들은 쿠렌치스의 연주는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말러가 지루하지 않은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한음 한음을 정확하게 연주할 수 있을까?

언젠가 쿠렌치스의 연주를 두고

한 음악 전문기자는 "음을 한음 한음 꽂듯이 연주한다;'라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그 기사를 읽었을 땐

'아 음악 전문가들에겐 저렇게 들리시나 보구나'라고 동경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연주를 직접 들어보니

정말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한음 한음 정확히 집어내고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듯 빠르게 줄달음쳐 올라가는 부분에서도

쿠렌치스의 오케스트라는 정확히 계단을 밟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듯

그 음들이 분명했다.


쿠렌치스의 오케스트라

바로 무지카 아테르나다

https://musicaeterna.org/


이 양반이 보통 양반이 아니다.

괴기스러운 카리스마의

자신의 향수를 만들어 쓰는 캐릭터

단원들이 공연이나 리허설만 딱 하고 집으로 가는 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헐~(이 표 현보다 정확한 게 없어 보인다)


자신의 뚜렷한 지향점과 정확히 일치하는

동지들을 데리고 거친 항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이현세의 외인구단을 보는 듯했다.


심지어,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영상을 보면

바이올린 주자로 악장 옆에서 연주하는 사람이

바로, 파트리시아 코파친스카야 다.

몇 해 전부터 세계적으로 가장 '핫'한 바이올리니스트가

일개 단원으로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예술을 향한 정신을,

그 지향점을 똑똑히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단원으로 연주하는 파트리시아 코파친스카야(오른쪽)


그래서 쿠렌치스의 오케스트라의 한음 한음은 다르다

한음에 만음이 들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최선을 다해서 찍어낸다...


실황 공연을 보면 그에 대한 신뢰는 더 깊어지기 일쑤다.

그처럼 공연 중에 단원들과 많은 교감을 나누는 지휘자는 없는 것 같다.

다시 말해, 매번 공연마다,

그는 음을,

단원들과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테오도르 쿠렌치스의 작업은 그래서 흥미롭다.

그래서 많은 마니아들이 탄생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와 같은 스파르타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도 '예술'은 이루어지기도 한다.

바로 정반대의 경우인 장한나의 오케스트라다.

스파르타는 아니지만 지휘자의 혼신의 노력으로 소리를 빚어내는...

장한나의 오케스트라도 흥미로웠다.


히말라야 정상은 하나지만 오르는 길은 여러 가지라는,

진리는 하나인데 현자들은 다른 언어로 말한다는

그래서,

예술은 간단치 않은 것이다...



파리의 우버 운전사


어제는 또다시 일하며 쿠렌치스의 말러를 들었다

30여분밖에 안 되는 짧은 분량이어서 안지 루한 걸까?

얼른 전곡을 듣고 싶어 졌다.

그러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오케스트라에서 보면 쿠렌치스가 참 불편하겠다..

그냥 남들 하듯이 연주하면 그만인데,

저렇게 티가 나게 해 버리면

그냥 원래대로 하던 악단은 조금 위축되지 않을까?

그러디 개혁은 늘 불편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개혁은 계속될 것인가?




https://www.youtube.com/watch?v=sJ36pfKeuy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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