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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브람스 좋아하세요...'였나
생각해 보니...

파리의 우버 운전사

2021년 4월 24일 17시 40분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들으며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불현듯 알 것 같았다.

아..

왜 브람스였는지..

알.겠.다.


며칠째,

일하면서 유자 왕의 피아노 연주만 들었다.

얼마 전 유자 왕에 대해 글을 쓰기도 해서,

이참에 다시 좀 더 그녀의 연주를 더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슈만, 프로코피에프, 쇼스타코비치, 차이콥스키,

보이는 데로 듣기 시작하는데

우연히 올라와있는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가

브람스의 협주곡 1번과 2번이었다.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느꼈다

아.. 좋다.

이렇게 좋았었나?

이 선율이 브람스 협주곡이었구나..

어렴풋이 몇 번 들었던 귀에 익숙한 선율들이 1번에도 2번에도 있었다.


음..

다시 예전에 브람스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 생각났다.

'실패했을 때 들으면 위안이 되는 음악'

브람스의 음악은 내겐 그랬다.

무언가 일이 잘 안 풀리고 

나도 모르게 슬럼프에 빠져 

질척데고, 그래서 우울하면,

브람스를 들었다.

그러면 왠지 위안이 되는 것 같았다.


그때는 브람스의 교향곡이었다.

베토벤 10번 교향곡이라고 불렸다는

브람스의 1번 교향곡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그 곡밖에 몰랐었다.

그러면서도,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나도 모르게 

'슬플 때 들으면 위안이 되는 음악'이라고 브람스를 정의했었다.


그런데, 들으면 들을수록, 

또 브람스를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그 느낌은 더 강해졌다.


브람스는 내겐, 인간 작곡가였다.

모차르트는 거의 자연의 일부 수준이었고

베토벤은 타고난 거인이었다면,

브람스는 인간의 노력으로 정점에 이른 작곡가 같았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처음에 다가가기가 ,

친해지기가 어려웠다.


만드는 사람이 어렵게 만들면,

듣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도 자연 편치 않게 마련이다.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무려 40대가 넘어서 작곡되었고

다른 많은 곡들 모두 우여곡절 안 겪은 곡이 없었다.

그러나 보니 늘 무뚝뚝한 그의 곡들과는

초면이 대면대면할 수밖에 없고

첫 만남이 일사천리가 아니니,

기다리며 보고 또 봐야 했다.

그렇게 듣고 또 듣다 보면,

어느 순간 그의 음악이 귀를 넘어 목덜미 정도에 서성인다.

그리고 더 듣다 보면 소름과 함께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

그리고 그 등줄기를 지나는 감동과 함께,

의자에 기대어 그의 음악 빠져드는 것이다.


그날도 그랬다.

2021년 4월 24일 17시 40분

자동차의 운전석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

손님의 목적지로 가던,

도착 3분 정도를 남겼던 그 시점,

그 소름과 감동을 처음 느껴본 것이다.


왜 프랑수아즈 사강이

다른 어떤 작곡가,

베토벤도 아니고

모차르트도 아니고

쇼팽도 아니고 리스트도 아닌

브람스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는지..

그때 알 것 같았다.


당신도 나처럼,

서먹서먹 대면대면하다가

브람스를 좋아하게 되었나요?

당신도 나처럼,

이렇게 쉽지 않은 인생을 살며,

그렇게 고되지만 포기하지 않고,

작품을 만들어낸 

브람스와 만났나요?

그 뜻이었던 것이다.


하여,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작품의 제목엔

마침표로 끝나지 않고

점 세 개... 그러니까 말줄임표로 끝난다.

역자들은 말한다.

질문이 아니라 브람스를 좋아하시라는 '권고의 의미'가 있기에

점이 세 개, 말줄임표라고 말이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냥,

브람스 들어보세요..라는 뜻으로

좋아해 보세요..라는 뜻으로 한 말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람스를 좋아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브람스의 '입장'을 생각하면, 좀 더 다가가기가 쉬워진다.

베토벤 이후, 제2의 베토벤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모았던 브람스,

그러니 얼마나 어깨가 무거웠을까?

그런 부담 속에 작곡된 곡이 1번 교향곡이었다.

웅장하고 장엄하다,

대곡의 풍모를 갖추기 위해 고군분투한 길이 느껴진다.


어제,

일을 하며 들은 곡은 교향곡 2번이었다.

조금 가벼워 저 있었다

1번을 완성하고 부담을 덜은 것일까?

만약 브람스가 베토벤이라는 '십자가'가 없었다면,

좀 더 자유로운 작곡가가 되지 않았을까?

알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브람스는 최선을 다했을, 그런 '위대한 인간 작곡가'였을 것 같다.

최선을 다해 '삶'을 '일상'을 이겨내는 '우리들'처럼 말이다.

그래서, 

다른 누구도 아닌 브람스였던 것 아닐까?

브람스 좋아하세요...라고...




파리의 우버 운전사


*브람스 교향곡 1번.

카라얀 지휘.

카라얀은 카라얀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45mWi4qY5v0


*브람스 교향곡 2번

번스타인 지휘.

2번은 번스타인처럼 자유롭게..

https://www.youtube.com/watch?v=6nKd-ia7_Lc


*브람스 교향곡 4번

카를로스 클라이버 지휘

또 다른 거장

https://www.youtube.com/watch?v=keXPClVJGrc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

연주 유자 왕

화려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Yxn8E6v8akQ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다시 유자 왕!

https://www.youtube.com/watch?v=BszBccYHu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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