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라벨(4),
사랑에 빠지는 순간, 피아노 협주곡

파리의 우버 운전사

심금을 울리는 선율을 만났을 때, 우리는 그 음악과 사랑에 빠진다.

이해하기 어렵고 때론 지루한 시간들 사이로 어느샌가 불현듯 가슴을 건드리는 부분을 만나고,

그 아름다움에 빠져서 작곡한 이의 생애도 살펴보게 되고, 사연도 찾아보게 되고,

그 음악을 들었던 풍경을 떠올리기도 하고, 함께 들었던 사람을 떠올리며,

좋았던 부분을 다시 듣기도 한다.

유독 이런 선율이 여지없이 출몰(?)하는 곳이 바로 피아노 협주곡의 2악장이다.

빠르게 강하게 시작하는 1악장과 또 힘차게 마무리되는 3악장의 사이,

2 악장에선 늘 그 곡의 정수가, 그 작곡가의 가장 빼어난 선율이 흐른다.

눈물을 쏙 빼놓는 드라마나, 온몸에 전율을 느끼게 하는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피아노 협주곡에선 거의 예외 없이 2악장이다.


20대의 아픈 첫사랑을 담은 듯한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과 2번의 2악장에도,

러시아의 눈 덮인 대륙, 광활함 속에 따스한 연인의 체온 같은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과

주인공인 피아노의 고독을 보여주는, 작곡가 자신의 초상화 같은 2번의 2악장.

고독한 거인의 산책길 풍경이, 고백 못한 사랑이 그려지는 베토벤의 다섯 피아노 협주곡의 2악장,

엘비라 마디간의 아픈 사랑을 이미 예견한 듯 곡을 써놓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의 2악장,

그리고 나머지 26개의 주옥같은 협주곡들의 2악장,

훅하고 들어오는 서늘한 공허를 상기시켜 주는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의 2악장과,

천재의 삶을 옳겨놓은 듯한, 소리를 참 잘 알았던 것 같은 생상의 피아노 협주곡 1번과 5번의 2악장

고국을 떠나, 향수에 적셔진 자신의 삶을 적어 놓은 듯한 라흐마니노프의 네 개의 피아노 협주곡,

예외 없이 피아노협주곡 2악장은, 어느 명화의 어느 드라마의 스토리보다 드라마틱하다.


그리고 올해의 주인공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또한,

그 아름다운 2악장을 빼놓을 수 없다.

스페인 바스크 지역 출신이었던 열정적인 어머니의 핏줄을 1악장에서 보여줬다면,

2악장에선, 조용하고 평화로운 스위스의 풍경 같은 조화를 보여준다.

그리고 라벨의 아버지는 프랑스계 스위스인이었다.


파도 없는 잔잔한 호수 위에 아침이면 밀려오는 안개처럼 평온하고 우아한 2악장.

스위스 시계장인처럼 깐깐했다는 라벨,

그래서 그의 음악도, 정확한 박자와 계산된 리듬이 도드라져 보였는데,

유독, 2악장만큼은 호수 위로 번지는 물안개처럼, 부드럽게 흩뿌려놓았다.

그렇게 흩뿌려진 풍경을 주인공인 피아노가 만들고,

오케스트라의 플루트가 마치 호수 위의 백조처럼 아름답게 흘러간다.


스위스 레만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의 병원에서 라벨은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평화로운 풍경이 그의 곡에 남아있었던 것일까? 알 수 없다.

다만 그 평화로운 분위기만큼은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2번과,

라벨이 묶었던 몽펠르랭의 언덕에서 바라본 레만 호수의 모습과 꼭 같았다.

스위스가 그리울 때는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2악장, 그의 음악 중 유독 스위스를 풍경과 닮았다.

올해는 라벨...



ps

1967년에 만들어진 영화 엘비라 마디간,

그 음악은 182년 전인 1785년에 모차르트가 작곡해 놓았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작품번호 K 467번. 이곡이 없는 이영화가 가능할까?


https://www.youtube.com/watch?v=1vgTh_pAqGQ



피아노의 구도자, 백건우 선생.

차이콥스키의 고독과 닿아있는 곳이 있다.

세월호아이들을 추모하던 피아니스트의 모습은, 귀하디 귀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wzfzek4cWU




고독한 작곡가의 초상화 같은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2악장.

2악장이 시작하고 등뒤의 바이올린과 첼로의 선율을 들으며 피아노는 무려 2분을 홀로 있는다.

그토록 밝고 화려한 유자왕까지도 쓸쓸해 보이는,

어쩌면, 차이콥스키는, 작곡가 혼자서 처절하게 혼자였던 그 순간을,

그렇게 새겨놓은 것은 아닌지...

아무리 고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이런 순간들은 외면하고 싶을 것 같다...

그러나, 어둠이 짙을수록, 빛이 밝은 것처럼,

2분여를 넘기는 그 바이올린과 첼로의 슬픈 이중주는,

피아노를 만나 눈부시게 아름다운 화음을 선사한다.

2분을 기다린 보람마저 잊게 만드는, 가장 아픔 시작과 극적인 치유를 주는 2악장, 21분 07초

https://www.youtube.com/watch?v=vlDY9F6FXU4



조성진,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https://www.youtube.com/watch?v=ylN50R4nmlU



임윤찬,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

https://www.youtube.com/watch?v=mMGFukNHycQ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2악장

https://www.youtube.com/watch?v=W1hyEjZros8




https://www.youtube.com/watch?v=vZn4cxvaFCo



https://www.youtube.com/watch?v=Zn5PfciT53g&list=RDZn5PfciT53g&start_radio=1



ps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아름다운 피아노 협주곡이 존재한다.

슈만과 브람스는 이야기하지도 못했다.

그들은 예외다.

1악장부터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