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우버운전사
파리의 우버 운전사 - 음악과 상상력, 파트리시아 코파친스카야의 미친 상상력 그리고 불닭 볶음면
오늘 세 번 길을 잘못 들었다. 역시 음악 때문이었다.
너무 졸리고, 일할 의욕도 나지 않아서, 고승이 졸고 있는 제자의 등짝에 '죽도'를 내리치듯
한방 얻어맞고 졸음을 쫓을 요량으로 베토벤을 골랐는데, 다른 어떤 연주도 아닌 파트리시아 코파친스카야의 연주를 고른 것이 화근이었다.
이름도 어려운 파트리시아 코파친스카야.
언젠가 한번 들었는데, 도저히 내 취향이 아니라 한번 흘려듣고 말았다. 그러나 그날만큼은 정말 귀에 쏙쏙 들어오는, 중앙일보 음악기자 김호정 씨가 표현하듯, “음표를 딱딱 찍는 것 같은 연주”가 귀에 딱딱 꼽히는 그런 날이었다
졸음은 날아갔고
대신 길을 몇 번 잃었다. 손님들에게 미안했다 눈치를 못 채었기에 천만다행이었다. 랑랑과 같은 감정과잉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무언가 조금 다른 역동적인 맛이 있었다.
음.. 그러니까 미친 사람 같은 미친 연주?
손님을 내려주고 돌아오며 크게 틀어놓고 다시 들었다.
(손님이 타고 있을 땐, 강한 부분에서 소리가 너무 커서 볼륨을 계속 줄였다가
높였다가 해야 해서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그러니 길을 잃을 수밖에..)
그러게 크게 해 놓고 들으며, 나도 모르게 경박스럽게 내뱉은 말은
"연주는 미친년처럼 하는데, 틀린음이 없네.."였다.
정말 그랬다. 소위 삑사리조차 없어 보였다. 신기가 있는 무당의 춤 같았다. 영상을 보면 더 그렇다.
바흐의 골드 베르그 변주곡을 들으며 상상력을 처음으로 흥미롭게 바라보게 되었는데(사실 세상이, 사회가, 현실이, 나의 상상력보다, 때론 우리의 상상력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손바닥에 '왕'자를 쓴 대선후보나, 전용기에 소주를 챙기고 정상회담에서 원샷을 하는 건, 삼류 작가도 상상 못 하는 일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어 만드는 미국의 모습도, 인간의 상상력을 가볍게 초월하지 않는가..)
그러나, 파트리시아의 연주 앞에선, 미친 상상력의 끝을 보는 듯했다. 난 아직 그녀의 베토벤 협주곡만 들었다. 차이콥스키는 듣지 않았다, 너무 확 다 들어버리면
소화가 안 될 것 같아서 아껴두고 있다.
불닭 볶음면이란 게 있다.
먹을 때는 너무 매워서 후회하면서 울면서 먹었다가도, 조금 시간이 지나면 다시 생각나는... 파트리시아의 연주가 그랬다. 들을 때는 너무 센 거 아닌가 싶다가도 듣고 나면 또 생각나는...
그리고 무엇보다, 불닭 볶음면에 한번 맛을 들이면, 다른 면 종류가 싱거워진다. 파트리시아의 베토벤을 듣고 난 이후엔. 그전까지 주로 들었던, 쥴리아 피셔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너무 싱거워져 버렸다. 한편 아쉽기도 했다. 미모로 보나 연주로 보나 내겐 스탠더드 한 바이올린 협주곡의 전형 같았는데,
(김호정 기자의 음을 콕콕 집는다는 표현은 압도적 카리스마의 또 다른 마수 같은 지휘자인
쿠렌치스를 두고 한 말인데 파트리시아의 연주에서도 똑같이 느껴졌다.
흥미롭게 둘은 잘 어울리고 친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다음은 문제의 연주...
https://www.youtube.com/watch?v=xr9KmgDFwM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