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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풍경, 빈센트, 영혼의 문 앞에서... 5

파리에서 본 세상

왕의 목을 벤 나라.

프랑스의 혁명 기념일인 7월 14일은,

프랑스에서 가장 성대한 공휴일이다.

샹젤리제에서 프랑스 최고의 엘리트 생도들을 필두로 군사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14일 밤 에펠탑을 비롯한 프랑스 전역에선 불꽃놀이로 밤하늘을 수놓는다.

그 축제날,

반 고흐는 자신이 묵었던 라보 여인숙 2층에서,

혁명기념일 행사 인파가 휩쓸고 간 마을 시청 앞 광장을 그림에 담는다


황량한 모습이었다.

혁명 기념일이 아닌 패전국의 모습 같은..

쓸쓸하고, 허전한, 광장에 만국기마저 애처롭게 휘날리는,

고흐의 풍경은 어쩌면, 늘 저렇게 버려지고, 소외된,

축제가 지나간 텅 빈 광장의 모습과 같았다.




"그런데 왜 당신은 그런 사람들만 좋아하는 거지요?"

하고 나오코가 말했다.

"우리 모두 어딘가 휘어지고, 비뚤어지고, 헤어나지 못하고, 자꾸만 물속에 빠

져 들어가기만 하는 인간들이에요. 나도 기즈키도 레이코 언니도, 모두 그래요.

어째서 좀 더 정상적인 사람을 좋아하지 못하는 거죠?"

"그건, 내겐 그렇게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야."

나는 잠시 생각하고 나서 그렇게 대답했다..

"나오코나 기즈키, 레이코 여사가 어딘지 비뚤어져 있다곤 도저히 생각되지 안

거든. 어딘가 비뚤어졌다고 내가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 힘차게 바깥세상을 활

보하고 있어."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중에서.





왜 당신은 우리같이 아픈 사람들만 좋아하나요...

나오코의 질문이었다.

와타나베는 답한다.

오히려 밖에 있는 사람들이 더 아픈 사람들 같다고,

그들은 오히려 씩씩하게 세상을 살아간다고...

레이코 여사는 말한다.

'맞아요,

우리가 그들과 다른 점은,

우리는 우리가 아프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는 점이에요.'


어쩌면,

우리 모두 아픈데, 그것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이,

그들이 우리를 위로하는 것은 아닐까?

나도 아파,

나도 아팠었어,

그러니 조금이나마 위안받아 그리고 일어나.

그렇게 말해 주는 것은 아닐까.


언젠가 한 소설가는 자신의 글 서문에서 자신의 글에 대해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밖에 없는 내면적 풍경"에 대한 이야기라고 적었다.

그 문장을 읽고,

습관처럼, 우리 내면의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그려보곤 했다.

고흐를 바라보면서도, 고흐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밖에 없었을 내면적 풍경이란 무얼까?라고 물었다.

그러면 늘 저 그림, 혁명기념에 축제가 지나간 텅 빈 시청 앞 광장이 떠올랐다.



버려진 사람들, 버려진 풍경에 더 애착이 가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 울 수밖에 없는 내면적 풍경이 그렇게 그려져 버린 것은 아닌지.

아이는 장남이었지만,

1년 전에 사산한 형이 있었고,

부모는 죽은 형의 이름을 아이에게 붙여주었다.

빈센트.

부모의 시선에서 아이는 무엇을 느꼈을까?

죽은 형을 찾는 어미와 아비의 시선을 느끼지 않았을까...

아이는 아비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애를 썼을 것이고,

어미는 아이에게 그림을 좋아하는 유전인자를 물려주었지만,

아이를 지킬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 못했다.

주여 빈센트가 너무 힘들지 않게, 빨리 데려가소서라고 기도했다고 하니,

아이가, 어머니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었을까?

그의 그림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노부부와 성당을 가는 여인은 고흐가 바랐던 어머니는 아니었을까


"화가가 그의 화폭에 얹는 것은,

그의 삶의 나날들이며, 지났거나 지나지 않은 시간들이다.

사르트르가 고흐의 그림을 이야기하며 적은 이 대목은

늘 내 마음을 허전하게 만들었다.

사르트르가 말한 그의 삶은 나날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의 시간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나는 뿌리로부터 공격받고 있다."

고흐의 말이었다.

그의 뿌리는 가족을 말하는 것일 텐데, 가족이 왜 자신을 공격한다고 했을까,

사르트르가 이야기한 고흐의 삶의 나날들에 앞서, 그가 만들고 만난 시간에 앞서,

고흐의 내면의 풍경은 무엇이었을까.

그 풍경은 어떻게 고흐의 운명을 결정지은 것일까...

고갱과의 일화를 만나기에 앞서 되돌아가야 했다.


https://youtu.be/dF-IMQzd_Jo?si=yiugmCnG7WStDNW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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