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본 세상
아르헨티나의 독재시대...
사람들이 바다에 버려졌다.
피아졸라의 음악이 듣고 싶을 때가 있다.
10시간의 운전길,
망각될, 사라질 아름다운 기억들처럼,
그렇게 사라질 베르비에의 잔향을 더듬듯이, 예프게니 오게닌을 두 번 들었다.
세 번까지는 무리 같아 곡을 바꿀 때
차이콥스키의 슬픈 음악에 몇 시간 잠겨있던 터라,
무작정 밝은 음악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때 생각난 것이 피아졸라였다.
피아졸라,
그의 음악은 왜 슬플까
그 슬픔의 기원이 늘 궁금했다.
탱고여서 그런가
아르헨티나의 슬픈 역사 때문일까?
그런데 피아졸라는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 출신이다..
그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려 해도
내가 알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아픈 역사와의 연관성은 찾을 수 없었다.
운전하며 돌아오는 길,
몇 번인지 모르게, 피아졸라의 망각과 탱고 음악을 반복해서 들었다.
피아졸라는 아르헨티나 독재 시절의 그 아픔을 알고 있었을까..
남미의 광주라고 하는 그 학살의 사건을 '인지'하고 음악을 했을까.
물론 정치적 발언과 '참여'가 예술의 목적은 아닐 것이다.
무엇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 자체가, '예술'의 '생명력'을, 그 '운동성'을 멈추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고야 이후의 많은 화가들이 '정치적 발언'을 하지만,
'좋은 마음'은 '아카데믹'한 해설을 필요로 하고, 그렇게 작품의 생명력을 앗아간다고 경고했었다.
그러나 그의 맞은편의 카뮈는,
"나는 예술 없이 살 수 없지만,
한 번도 삶 위에 예술을 두어 본 적 없다."라고 말했다.
종종 카뮈와 사르트르 사이에 서는 나는,
사르트를 바라보면서 카뮈 쪽으로 걸었다.
예술 없이 살 순 없지만, 삶이 없으면, 예술도 없었다.
피아졸라가 아르헨티나 독재의 어두운 역사를 알고 음악을 작곡했던, 그렇지 않던,
양쪽 모두 슬픈 역사임엔 틀림이 없었다.
알고서 작곡했다면, 그 역사의 상처가 그의 음표로 적힌 것이고,
모르고서 작곡했다면, 그의 존재 너머에 역사가 상처받고 흘러가고 있었던 것일 테니...
마치 독재시절 광주에선 사람이 죽어가는데,
다른 곳에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살아갔던 것처럼,
그리고 오랜 세월, 오해와 모함 속에 고통받아 왔고,
지금도, 내란세력을, 살인자들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그 정당이 있는 것처럼...
노상원 수첩이라는 것이 있다.
무서운 내용이 잔뜩 적혀있는 수첩
언론은 그 수첩의 내용을 특종과 단독을 이어갔다.
아마도 그 수첩의 내용이 실행되었더라면,
아르헨티나의 참사처럼
우리 현대사에서도 바다에 사람을 버리는 역사가 진행되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들 때는, 두렵고 또 슬프다.
자유가 당연한 것이라고 배우며 자랐지만,
사람들은 모두 평등하고,
정의는 실현되며,
범죄는 처벌된다고 듣고 자랐지만,
늙고 보니,
세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불평등하고,
정의는 법관들에 의해서 수시로 농락당하며,
범죄자는 더 큰 범죄를 저지를수록 돈을 더 많이 벌어서 비싼 변호사를 고용해서 용서받고 있었다.
돈 싫어하는 판사가 어디 있냐고 말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
피아졸라의 음악은,
아르헨티나의 현대사를 담았을까?
그의 음악에 이유 없이 흐르는 슬픔은 탱고이기 때문인가?
이유를 알 수 없는 채로 그의 음악은 슬프기만 했다...
많은 사람들이 알던 모르던,
어디선가 끊임없이 학살과 만행이 자행되고 있는 것처럼...
그의 음악, '망각'처럼,
망각이 축복이 되어버린 슬픈 시대를 살고 있다.
지금도 가자에선 '죄 없는' 아이들이 죽고 있다.
17 07 2025 Gaza City, Gaza 15 The body of a Palestinian child who was among those killed by an Israeli airstrike targeting the Nassar family home at the Shati refugee camp, north-western Gaza, is brought to al-Shifa hospital
https://www.khan.co.kr/article/201705191010001
ps 01 피아졸라, 망각...
https://www.youtube.com/watch?v=dF-IMQzd_Jo
ps 02
나쁜 연주의 전형처럼 느껴지는 동영상이다.
바이올린의 선율은 불안정하고,
음악으로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 수 없다.
어린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들은 바부제는 말한다.
"너의 연주가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다."
어린 연주자들은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감정만 싣고 있었다.
입으로 박자를 소리 내어 연주하게 했다.
그것만으로 연주가 달라졌다.
곡에 이미 감성이 있었으니,
박자만 지켜서 연주해도,
그 곡이 말하는 바가 전해졌다.
연주자의 의도는 그다음이었다.
위의 영상은 모두 프로들인데
박자조차 안 맞는다.
일본 특유의 색채도 느껴진다.
가르쳐진 감성이거나,
미야자키의 단짝 히사이시 조의 아류 같은...
(너무 심하게 혹평한 것 같아서-내가 무얼안 다고 ㅠㅠ-
다시 한번 들었다. 악단의 이름도 확인했다.
쿠아트로시엔토스
일본 최고의 탱고 밴드라고 소개되어 있다.
다시 듣는다고, 틀린 바이올린의 연주가 고쳐지지 않고,
늘어지는 템포가 바뀌지도 않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Hj7B3jhbAHA
ps03
오페라만 간절한 줄 알았는데,
탱고도 그랬다.
Mario Stefano Pietrodarchi
https://www.youtube.com/watch?v=TIuCYo2LPfQ
Oblivion (Piazzolla) - Best 15 versions, vocal and instrumentals
https://www.youtube.com/watch?v=8BabkG7RxD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