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그래야만 하는가?
그래야만 한다.

베르비에 페스티벌 후기 (01)

꼭 가야만 하나?

마지막까지 고민이 됐다. 장거리 운전을 하려면 좀 쉬어줘야 하는데, 3일 연속, 종일 운전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은행 잔고가 충분치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단 하루를 위해 8시간에서 10시간 운전을 해서 간다? 어느 모로 보나 정신이 나간 짓처럼 보였다.

연이어 삼일을 나가다 보니 세탁도 못해서 마땅히 챙겨갈 옷도 없었다. 가지 말아야 할 것 같은 이유가 수도 없이 생각났지만, 단 한 생각이 그 반대의 이유들을 막아서고 있었다. 그것은, '안 해보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수시로 내비게이션을 찍었다.

통행료를 피하면 10시간,

첫 예약은 14시 30분,

톨비를 아끼기 위해 국도를 살펴보니 9시간 30분이 찍혔다.

휴게소에 한 번만 쉰다고 해도 10시간을 잡아야 하고,

현지 주차 사정을 모르니, 운 좋게 14시까지 도착한다고 해도 14시 30분에 늦을 수도 있었다.

톨비를 내고 고속도로로 가면 6시간 30분.

톨비를 써야 하나 아침에 일어나서 생각하기로 했다.


4시는 애당초 무리였고,

장거리 운전을 한다는 생각에 더 자는 쪽을 택했다

갈 때만 통행료를 낸다면 최소한 6시 30분.

휴게소에 한 번만 쉰다고 하면 7시간.

6시 30분에 출발한다면 13시 30분에 도착이 가능했다.

현지의 주차사정은 운에 맡기기로 했다.


그렇게 6시 30분에 출발.

집에 남은 음식을 모조리 아이스박스에 담고, 스틱커피와 빈병에 물들까지 챙겨서

7시간을 달렸다.


평소라면, 지루함을 날리기 위해 팟캐스트나 볼 빨간 사춘기 같은 가요를 들었을 테지만,

이번엔 왠지 무리한 길을 가는데, 모든 시간을 집중해서 쓰고 싶었다.

베토벤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현악 사중주를 들으며 달렸다.

'꼭 그래야만 했나?'라는 수수께끼 같은 문장으로 더 유명한 곡.


어렵게 내린 결심

그래야만 하나?

그래야만 한다.


무엇을 어렵게 결정 내렸단 뜻일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베토벤이 산책했다는 곳에 가보고 싶었다.

산책을 유난히 좋아했다는 베토벤, 누가 길을 막아서도 자신의 길에서 비켜서지 않았다는 베토벤...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를 들으며 스위스에 들어서고 레만호수를 지나, 예의 그 아름다운 풍경을 곁눈질하고, 산악지대로 접어들며 꼬불꼬불한 길을 올라 베르비에에 도착했다.

파리가 흐린 날이 이어졌는데,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해발이 1500을 넘어가니 비가 오는 기후엔 하늘이 없고 흰구름과 안개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이 되고 말았다. 운 좋게 행사장 앞은 주차공간이 많았다. 작은 도시, 이렇게 작은 도시에 그렇게나 많은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공연을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미 그런 유명연주자들의 공연은 표를 구할 수 없었다. 관심이 가는 공연은 대부분 매진이었고, 표가 남아있다고 해도 내가 살 수 있는 가격이 아니었다. 애당초 공연은 포기한 채로 그저 베르비에 사이트의 어젠다와 프로그램을 둘러본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런 담장너머로 훔쳐보는 것 정도였다면, 이곳, 베르비에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비좁은 방 덕분에 박스들 사이로 소리가 좋아졌던 야모 스피커의 경험 때처럼, 이번엔 돈이 없어서 공연 티켓을 구할 수 없었던 덕분에, 더 소중한 순간을 만날 수 있었다. 언젠가 누군가 나처럼 돈은 없는데 베르비에 페스티벌, 그리고 다른 최정상급의 뮤직 페스티벌을 간절히 경험해 보고픈 분이 있다면, 이 방법을 추천한다. 스위스가 아니더라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이런 기회는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마치, 미샤 마이스키에게 무료로 사사한 장한나와 같은 경험이 될 수도 있다. "너도 너처럼 배움을 갈구하는 이를 만나면 주거라"라고 말했던 대가의 답변을 직접 듣는 경험이 될 수도 있다. 공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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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eekly.hankooki.com/news/articleView.html?idxno=3927487



https://www.youtube.com/watch?v=BOdsRnP4tfc



https://www.youtube.com/watch?v=38DA-F1V0t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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