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우버 운전사
2024년, 나의 가장 큰 화두는 '과연 하이든 없는 모차르트가 가능했을까?'였다. 온종일 운전하며 라디오를 듣다 보면 하이든의 음악을 피할 길이 없는데, 그럴 때마다 모차르트의 분위기가 물씬물씬 풍겨 나오는 것이었다. 결국 모차르트도 하이든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단 말인가. 이 질문이 내심 불안했다.
천재는 3대를 거쳐야 탄생한다는 말도 있지만, 내게 모차르트는 타고난 존재였다. 그런데 만약 하이든의 존재가 결정적이었다면? 모차르트라는 존재가 불완전해지는 것은 아닐까? 내 안의 모차르트 신화가 깨지는 것이 나는 두려웠다.
시간이 흘렀다. 오랜만에 밤늦게 들은 라디오에서 처음으로 하이든의 '어두운 그림자'를 만났다. 하이든에게도 이런 우수가 있었다니. 역시 하이든이 없었다면 모차르트도 없었나?
그런데,
무언가 꺼림칙함을 지울 수 없았다. 베토벤을 비롯한 수많은 제자를 두었던 잘 나가는 하이든에게, 비록 아내에게 돈 문제로 제법 구박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그런 깊은 우수는 상상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라디오에서 들었던 그 슬픈 선율의 피아노 삼중주의 작곡배경을 확인하던 중, 당시 하이든의 곡이, 먼저 세상을 떠난 모차르트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모차르트(1756-1791)는 하이든(1732-1809)을 스승처럼 여기고 따랐다고 하는데, 스승에게 영감을 주고 떠난 셈이니, 대반전이었다. 모차르트는 내게 모차르트로 하이든은 그대로 하이든으로 남았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영화 <파반느>가 공개되었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들었다. '파반느' 하면 라벨의 피아노 곡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빼놓을 수 없다. 이 곡의 슬픈 분위기가 제목과 만나 라벨이 '외모가 아름답지 않아 불행했던 왕녀의 운명'을 슬퍼했다는 풍문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라벨은 그저 '파반느'와 '죽은 왕녀'라는 불어의 음성적 조화에 끌렸을 뿐, 곡이 전하는 슬픔은 세간의 스토리와는 상관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 슬픔은 어디서 온 것일까. 라벨의 어떤 내면이 그런 선율을 빚어냈을까. 설명되지 않는 모차르트의 그림자처럼, 이들에겐 대체 어떤 역사가 있었던 것일까...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밖에 없는 내면적 풍경"이라는 말이 있다. 그 풍경에 너무 귀를 기울이면, 그 풍경만 바라보다 운명대로 살다 가게 된다. 그것은 진리를 보여주는 길이지만, 처절하게 고통스럽다. 그렇게 고흐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도 죽음을 보았고, 라벨은 서늘한 선율을 남겼다.
운명을 결정짓는 내면의 풍경은 때론 세상을 보는 '창'이 된다.
오늘 아침. 결국, 끝내,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했다는 속보가 올라왔다.
파반이 어느 때보다 슬픈 아침이다.
슬프게 아름다운 하이든의 곡. 2악장.
https://www.youtube.com/watch?v=JOMofw1cdG4
https://www.youtube.com/watch?v=qLJsz7SQf40
https://www.youtube.com/watch?v=XRkqsOaxqw4
모리스 라벨 자신이 연주하는 파반을 들을 수 있다... 축복이다. 기술의 축복..
https://www.youtube.com/watch?v=eGybwV3U9W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