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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튜링과
역사를 바꾼 네 번째 사과...

게이 열전(列傳) 01 - 엘런 튜링

신의 한 수였다. 

애플이 액상프로방스에 매장을 오픈한 것은 정말 절묘했다.

그것은 엑상 프로방스를 대표하는 화가가 바로 세잔이고,

세잔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사과',

'애플(apple)'이기 때문이다.


액상 프로방스는 프로방스의 주도다.

남 프랑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자연의 프로방스, 

그 프로방스의 중심이 바로 '액스(Aix)'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엑상프로방스인데,

애플 매장이 들어선 곳은 엑상 프로방스의 중심가인 로통드 분수 앞이다.

파리에 개선문과 샹젤리제가 있다면, 프로방스엔 바로 이곳, 로통드 분수와 미라보 거리가 있다.  


엑상 프로방스는 화가 폴 세잔의 고향이다. 

정물화를 많이 그렸던 세잔의 작품에서 중요한 소재가 바로 '사과'였다.

세잔은 "나는 이 사과하나로 파리를 정복할 걸세!"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방 화단인 프로방스 출신으로 중앙화단을 정복하겠다고 선언한 화가의 무기가 '사과'였던 셈이다.

이렇게 '사과'와 인연이 깊은 도시의 중심에 애플 매장이 들어선 것이다.


우리는 종종 인류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3개의 사과를 이야기한다. 

그 첫 번째는 성서에 그려진 아담과 이브의 사과, 

그리고 두 번째는 만유인력의 일화를 담은 뉴튼의 사과, 

그리고 세 번째가 바로 세잔의 사과다.


근대미술을 지나 현대에 이르는 19세기 이후의 미술을 이야기할 때,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들은 피카소, 고흐, 고갱, 르누아르 같은 화가들이지만,

그들이 그렇게 화려하게 근대의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세잔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잔을 두고 '현대 회화의 아버지'라고 말했던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피카소'였다.


"평범한 사과는 먹고 싶지만,

세잔의 사과는 우리에게 말을 건다."

세잔의 회화를 경외한 모리스 드니의 글이다.

대상을 그저 재현하던 재현의 미술에서, 

사물의 본질을 묻는 '철학적인 차원'으로 이동하는 '모던미술'의 역사에서,

그 출발점이 바로 세잔과 그의 작품과 그 속에 사과인 것이다.


세잔은 가난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은행가였고, 많은 재산을 상속받았다.

그래서일까, 그는 자신만의 세계 안에서 칩거하다시피 존재했다.

많은 화가들의 존경과 컬랙터들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어쩌면, 세잔이 품었던 질문이 너무 큰 질문이거나 세상을 앞서간 질문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살아생전에 그렇게 살뜰하게 세잔을 보살폈을 것 같지 않는 엑상프로방스라는 도시가,

지금은 마치 도시의 상징처럼 세잔을 모시고 있다.

그래서 액상프로방스를 볼 때마다 씁쓸했다. 

살아있을 때 잘해주지도 않았으면서 죽고 난 뒤에 신처럼 떠받들고,

열 평 남짓한 세잔의 아틀리에는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다.

그렇게 인류시의 세 개의 사과와 세잔의 사과를 생각하는데,

액상 프로방스에서 애플의 매장을 보았다.



애플의 사과. 

한입 베어 물어 한 귀퉁이가 예쁘게 도려져 있는 사과.

대기업들의 수완은 참 탁월하다. 

세잔의 고향 엑상프로방스에 세잔의 상징인 사과가 로고인 애플의 매장이라...

너무 멋진 시나리오였다.

인류역사의 네 번째 사과는 바로 애플의 사과였다.


죽고 난 뒤 대접받는 세잔을 생각하며 애플 매장을 보고 있자니, 

한 사람이 떠올랐다.

바로 앨런 튜링.


애플은 공식적으로 자신의 로고가 튜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하지만, 

사과를 한입 베어 물고 생을 마감한 그를 생각하면,

애플의 사과에서 그의 그림자를 지우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애플의 스마트폰이 만들어낸 변화와 그 뿌리일 튜링을 생각해 보면,

다시 한번, 인류역사의 네 번째 사과인 애플의 사과에서 튜링의 그림자를 역시 지울 수가 없다.


세잔의 사과도,

튜링의 사과도, 

우수에 찬 사과가 되고 마는 것은,

세상을 새로운 세게로 안내한 주인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외면한 세상 때문이다.

그리고 튜링이 더 마음아픈 것은 그에게 가해진 가혹한 역사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고 말았던, 한 사람의 성소수자에게 그 사회가 가했던 폭력...

그 시대의 야만은, 튜닝의 업적이 빛을 발하면 발할수록 더 생각날 듯하다.

역사는 이제 번번이 그에게 용서를 구하지만, 하늘나라에서 그가 그 용서를 받아들였을까?

여전히  성소수자들을 '사회적 통념'이라는 이유로 고통을 주는 사회가 존재하는 이 지구이기에,

여전히 튜링도 용서하지 않았을 것 같다.


탄압받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민주주의 탄압한 자들의 후예들이 누리고 살듯이, 

사회적으로 배척되었던 존재였던 튜링의 유산으로,

그 사회가, 이 시대가 풍요를 누리고 있다.

슬픈 게이열전의 첫 번째 주인공,

앨런 튜링.

그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지난 1월 캐임브리지 킹스 컬리지에 앨런 튜링에게 헌정된 조각상이 세워졌다. 현대 조각가 안토니 곰리의 작업이었다. 튜링이 만족했을까? 관심 없었을 것 같다. 그러나 앞으론 더 많은 사람들이 튜링을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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