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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게이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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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와 포용성 그리고,
관용의 혜택

게이 열전(列傳)을 시작하며

며칠 전 앨런 튜링(Alan Turing)을 그렸다. 그의 얼굴을 그리며, 또 그의 삶을 생각해 보며, 예전에 재미있게 보았던 방송, '알쓸신잡'의 한 장면, 유시민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게이지수(Gay Index) 그리고 포용성과 관용의 혜택. 스마트폰을 모두 쓰고 있는 우리는, 어쩌면 앨런 튜링에게 모두 빚을 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학기술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차이콥스키도 동성애자였고, 그리고 앨런 튜링처럼 쓸쓸히 죽어갔으며, 그의 진실도 함께 묻혀갔다.


우리는 성 수수자 위인들로부터 혜택을 입었으나 그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조차, 아니 입에 올리는 것조차 망설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수도 서울의 시장 선거 후보로 출마하던 한 유력 정치인의 입에서 "퀴어 축제는 도심 밖에서"라고 말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위에 언급한 알쓸신잡에서도 앨런 튜링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최근 알릴레오에서 양자역학을 이야기하며, 앨런 튜링은 언급된다. 복권의 시작일까?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있다. 왜 , 어째서 게이 위인전은 없을까? 또 그래서 시작해 볼까 한다.


'게이 열전(列傳)'



https://www.youtube.com/watch?v=b6TrxdbUcm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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