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선택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야말로 뉴튼의 사진이 '관음증'과 '우리의 욕망'을 아주 '적나라하게' 잘 찍어 주었기 때문이고,
또 그렇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연금술'이라는 다소 '학문적으로 보이고' 또 '신비롭게'보이는 단어를 '첨부 함으로써, 무언가 '면죄부'를 얻으려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관음'과 '욕망'은 늘 '예술'의 영역에선 '해금'된다.
다시 말해서, 뉴튼 류의 사진이 만약 '가라오케'나 '성인나이트'의 광고에 쓰였다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될 테지만, 소위 '유명 갤러리'를 통해 '작품'으로 등장하면 '외설'이 아닌 '예술'로 판명되며 '면죄부'가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 합의는 사실, 얼마 전까지 '문제없는'분위기였다. 그러나, 시대가 너무 '야해졌고', 그동안 감추어졌던 '성폭력'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며, '미투의 시대'가 도래했다. 과연 지금의 시대에도, 또 이후로도, 뉴튼의 작품이 '외설'이 아닌 '에술'로 무리 없이 남아있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