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베. 귀스타프 쿠르베 (Gustave Courbet, 1819 - 1877)의 말이라고 한다.
"천사를 그리지 말고 네 아버지를 그려라." 제자들에겐 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렇게 쿠르베는 '사실'을. '있는 사실'만을 그렸던, 사실주의의 거장이었다.
그가 그린 많은 작품들이 논란이 되었지만. 이만큼 저돌적이고 파격적인 작품이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작품이 바로 '세상의 원류(L'Origine du monde)'라는 작품이다.
사실이 아니던가?
우리는 모두 '여성'인 어머니의 자궁에서 자라서 어머니의 성기를 통해 세상으로 나오니, 우리 각자에게 '인식'되는 세상의 원류는 바로 이곳이다.
강박적으로 성(聖)스럽게 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성(性)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여성의 몸이, 우리를 세상으로 이끌어준다는 사실 만으로, 성(聖)스런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김상욱 물리학 박사의 말처럼, 우리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포르노에 노출되어있는 세상이다. 그리고 성(性)은 배격이나 파괴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건강하고 건전하게 마음껏 즐겨야 할 축복이다. 그런데 이것이 방향이 잘못되면 고통의 경험과 파괴의 역사를 낳게 된다.
언젠가 구성애 선생이 이야기했듯이 북유럽의 아이들에게 출산의 장면을 보게 하는 것은, 여성의 몸이 단순히 성(性)적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시켜 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성(性)스러운 것이기도 하지만 성(聖)스러운 '몸'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그때는 그것을 잊지 않고 성(性)을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성(性)의 문제를 어떻게든 풀어야 하는 시대에 와있다. 이 문제는 앞으로 더 심각해질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시대는 그 어느 시대보다 다시 한번 쿠르베의 '세상의 원류'를 직시해 보아야 하는 시대가 아닐까...
헬무트 뉴튼도 이러한 과정에 한몫을 하지 않았을까?라고 말한다면, 너무 후한 평가인지 모르나, 그의 작품이 외설이건 예술이건 성(性)스러우면서도 성(聖)스러운 사진을 찍었다는 것은 '의미'있는 시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