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파리, 레판의 회고전, 그리고 한국의 단색화

위대한 일상 2021년 10월 3일

일리야 레핀,

(Ilya Yefimovich Repin, 1844년 8월 5일~1930년 10월 29일)

러시아 구상회화의 거장이다.

지난 10월 3일부터 파리의 프티 팔레에서 일리야 레핀의 대규모 회고잔이 열리고 있다.

코로나사태로 늦춰졌던 많은 전시들이 속속 관객을 찾는 가운데 열린 또하나의 값진 기롹이었다.


대학시절, 그에 관한 리포트를 쓴 적이 있다.

미학 과제물로, 당시 나란히 열렸던 '일리야 레핀'전시와 호암갤러리에서 마련한

'한국 추상회화의 정신'전을 비교하는 글이었다.

두 전시를 보고남 나의 결론운,

당시 한국 추상회화의 '허황된 논리'를 비판하고,

일리야 레핀이 이룩한 '구상회화'의 성과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 됬던 것으로 기억한다.


간단한 구도였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80년대 한국사의 격변기 동안의 미술계는,

'정치현실'을 외면한 서울대와 홍대를 중심의

소위 '모던, 포스트 모던' 계열의 사조와 작가들이 있었고,

반대쪽엔 '현실과 발언'등으로 대변되는 '민중 미술'진영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한국화단을 좌지우지하던 주류들이 말하는 이론이나 논리들은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고,

실제로 1995년 호암갤러리의 '한국 추상회화의 정신'전 기간 동안 개최된 세미나에서

패널로 참석한 한 철학과 교수는, 전시 도록에 인용된 문구들을 일일이 열거하며

'말이 되지 않는 소리들'이라고 '매몰차게 비판'했었다.


민중 미술 역시 마찬가지였다.

김영삼 정부라는 '문민정부'의 등장으로, 외면적이고, 표면적인 '제도적 민주화'가 일어나자,

민중미술은 사그라들었고, 10여 년도 되지 않아 국립 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다.

한 '사조'치고는 참으로 불같이 타올랐다가 금세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 '단말마'의 과정을 가장 '정확하게' 집어낸 것은 김용옥 선생이었다.




우리나라의 민중예술론자, 가장 진보적이고 가장 이상주의적이고 가장 정통적 휴머니스트라고 자임하고 있는 민중예술론자들은 너무도 단순한 사회주의 맥심에 사로잡혀 있다 : "모든 예술은 그 예술을 탄생시킨 계급의 이익을 대변할 뿐이다. 따라서 사회주의예술은 철저히 프로레타리아계급의 이익에만 복무服務해야한다."

사실 이 논리는 넌쎈스다! 모든 예술은 그 예술을 탄생시킨 계급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는 유물변증법적 예술가치의 통찰을 나는 백프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논리는 그 자체로서 엉터리임이 자명하게 판명될 것이다 : "예술은 계급의 이익을 대변할뿐이다. 그래서 예술은 한 계급의 이익만을 대변해야 한다." 사실 민중예술론의 허구는 바로 이따위 엉터리 논리에 있다. 예술이 계급이익을 대변한다고 하는 통찰, 그 발설의 소이所以(어떤 일을 하게 된 이유)는 바로 그 계급이익을 대변하는 편협성의 정체, 즉 미적 가치로 위장된 역사적 현실을 폭로하고 파괴하자는데 있다. 그런데 그러한 보편주의로 예술을 지양시키는 계기로서 민중예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러한 지적 통찰의 근본소이를 말살시키는 방향에서 편협한 계급성과 양식성으로 다시 함몰되어 갔다는데 민중예술의 비극이 있는 것이다. 민중예술이 정말 위대하다면 왜 보편적인 공감을 얻을 수가 없을 것인가? 왜 대학가의 판에 박힌 걸개그림으로서만 남아있어야 할 것인가? 모든 예술은 위대한 것으로 끝이다. 더 이상의 이데올로기적 설명이나 군더더기가 필요 없는 것이다.


-김용옥, 석도화론 중에서 227-228페이지, 1992년, 통나무출판사-



실제로 한국 화단을 양분했던 민중미술은 그렇게 사라졌지만, 졸은 작가들은 사조의 운명괴는 별개로 여전히 좋은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작가가 임옥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청와대에 입주하신 후에 대여했다는 그의 작업을 보면 작품이 어떤 '미술 사조' 나 '주의' 를 넘어서 있다.


임옥상, 광장에, 서 , 출처:임옥상미술연구소, http://www.oksanglim.com/?ckattempt=1


난 이 작품을 보았을 때, 김용옥 선생이 말씀하신,

예술은 '위대'한 것으로 끝이다.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108 번뇌하듯, 108개의 캔버스로 연결된 저 광활한 작품은,

날의 함성들의 그 역사정 장면들을 올 곳이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름답지만 현실을 외면한 사치스러운 아름다움이 아니었고,

현실을 이야기한 것이지만, 유치한 '구호'처럼 읽히지 않았다.

단세포적인 '주장'으로 보이지 않는,

'작품' 스스로의 '격조'가 있었다.


작품 스스로 '빛'을 발하면, 거기엔 '사조'도 '주의'도 '작가'도 사라지게 마련이다.

아주 오래전 오쇼 라즈니쉬가 홍신자의 춤을 보고 말했듯이,

'춤추는 자는 사라지고, 그 춤만 남은' 인것이다.


김용옥 선생의 말씀처럼, 민중예술가들은 너무나 '순진한 좋은 의도'에 매몰되어 있었고,

반 민중예술 계열의 서울대 홍대의 주류들은 '시대의 부정'을 외면한 원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우환 선생은 세미나에서 후학들에게

'철저히 인식론적인 작가가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하셨었다.

추상회화가 술 먹고 붓을 휘두르면 그림이 되는 것으로 인식되던 시절,

말도 안 되는 철학 문구들을 조합해서 부풀리던 시대를 살았던 '한恨'맺힌 말씀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얼마 전부터 세계 미술시장의 블루칩이 한국의 단색화라고 한다.

'철학적 빈곤'을 고스란히 안고 있었던, 한국의 모던 회화들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시류'의 혜택일 수도 있고, '작품의 논리'를 넘어선 '시간'의 힘인지도 모르겠으나,

무언가 '찜찜함'이 남아있던 즈음, 그 '찜찜함'을 다시 풀어준 것은,

이우환 선생의 너무 '솔직한' 말씀이었다.





“요즘 한국 미술계의 단색화(모노크롬)란 것들은 어처구니없는 행위들이 되풀이되어 나온 결과물이랄까요. 19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까지 내가 살펴본 한국 화단 작가들은 어쩔 줄 몰라하는 상태였어요. 크게 유행하던 앵포르멜 같은 추상이 한풀 꺾이고 팝아트 옵아트 같은 서구 미술 흐름이 막 밀고 들어오는데, 뭘 해야 할지 막막해했지요. 처절하고 각박한 상황인데 뭔가 해야겠다. 그래서 긁고 뚫고 긋고를 되풀이하는 어처구니없는 ‘짓’들을 했고, 몇몇 작가들이 40년 이상 계속 벌여온 겁니다. 그게 대단한 거죠.”


이 말은 참 아픈 말이기도 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긴 것이 아니라

인생은 참 짧은데 예슬은 많이 멀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music/902241.html


#thegreatdays2021 le 03 oct


#일리야레핀 을 그리다 #illyarepin #drawing


#discover #painter #ilya_repin Anew #petitpalais


@petitpalais_musee @PetitPalais_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