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일상 2021년 10월 24일
과격시위로 발생한 화재현장에서,
셀카를 찍는 한 사람을 보고 있자니,
정말 우리 시대의 '존재론'은 '셀카'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한 데카르트가 있었고,
나는 욕망한다, 고로 존재한다. 는 라캉을 거쳐,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까지는 회자되었는데,
이제는 "나는 셀카를 찍는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남기는 것'은 '이해가 가는 행위'라고 나는 생각한다.
반면, '절대' 이해가 가지 않고, '절대' 말리고 싶은 행동은,
'셀카'를 찍고, '포샵'을 거쳐 더 나은 이미지로 '생산'해 내는 행동이다.
그것은, '습관적'으로 '현실'에 실제로 존재하는 나 자신의 얼굴을
끊임없이 '추함'이라고 인식되는 저 '밑바닥'으로 끌어내리는 '바보 같은 행동'이다.
왜 스스로 그렇게 '가혹하게' 자신의 '실재 얼굴'을 '포샵'으로 지우며,
현재에 존재하는 나를 '비호감'으로 만들어 가나?
'무의식'적인 그런 행위들은 스스로 '자존감'을 '희석시키는'. '바보 같은 행동이란 걸 모르는 건가?
주름진 자신의 얼굴을 부정하는 것은,
주름과 시름이 있었으나,
이겨내고 살아낸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짓이다.
셀카로라도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남기는 것까지는 '순수한 욕망'이지만,
'포샵'으로 자신을 미화하는 것은 '진정한 자신'을 버리는 삐뚤어진 욕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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