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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상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0번 3악장

풍요로운 창작의 시대와 예술, 예술작품 그리고 예술가

“사실 끔찍했다. 그리고 스타오는 나에게 있어선 몹시도 지루한 존재였다. 너무도 난해하고 난삽한 문장으로 끝까지 날 집요하게 괴롭혔다.”

(김용옥, 석도화론 중, 202페이지, 스타오의 석도화론을 번역하던 작업에 대한 김용옥의 회고)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를 듣는 내내 이 말이, 이 글귀가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처음 듣는 32개의 피아노 소나타는 처음엔 지루하고 어려웠다.

종종 한 번은 들어본 선율이라도 나와주면 그나마 수월했지만,

32개의 짧지 않은 소나타 전곡을 모두 듣는 데는 몇 주가 필요했다.


하루에 배달을 위해 운전하는 시간은 길게 잡아도 4시간, 배달 내내 음악을 들었다.

늘 수월히 들리는 것은 아니었다. 언짢은 일이 있거나, 컨디션이 저조한 날,

음악은 더 무겁게 느껴졌고 귀에 들리지 않은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런 경우는 처음부터 다시 들었다.

집중력이 흐려진 후반부. 28번 이후의 곡들은 여러 번 다시 들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들으며 받은 첫 번째 느낌은,

피아니스트를 위한 곡인가? 였다.

마치 '참선'하는 베토벤의 모습이 그려졌다. 어떤 ‘고행’ 같은 느낌도 들었다.

구도자의 수행을 지켜보는 느낌,

산책을 좋아했다는 베토벤의 옆에서 걷는듯한...


때때로, 클래식 음악은 '깊은' 소외감을 준다.

왠지 음악을 하는 사람만이 이해할 것 같은,

왠지 많이 알아야만 들을 수 있는 것 같은.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이야기한 사회적, 문화적 환경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앴다.


그렇게 ‘구경하듯’ 시작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듣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어렵게 오른 산행에서, 갑자기 덜 가파른 둔덕을 지나,

아름답고 평호로운 평원을 만나는 기분이 드는 곡을 만났다.

바로 30번의 3악장.


아... 세상을 느리게 만드는 듯한,

숨을 멈추게 되는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마치 깊은 어둠을 헤매다가 아름다운 햇살이 온몸에 쏟아지는 기분이었다.

30번 3악장이 그랬다.


이런 아름다움을 만들어준 베토벤에게,

또 이렇게 아름다운 곡을 연주하기 위해

골방에서, 연습실에서,

무서운 고독과 맞서가며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을 모든 연주자들에게 깊이 감사했다.


그리고 오늘만큼은, 이 음악이 주는 평안함처럼,

새로운 세상이 우리를 위로해 주기를...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폭정과 폭력과 비상식과 야만에 할퀴어진,

우리 가슴을 어루만져줄, 좋은 결과와 함께,

상식이 살아나고,

고통에 공감하며,

무너진 나라를 세우고,

잘못을 반성하고, 미움이 아닌 화해, 증오가 아닌 사랑과 함께,

그리고 다 함께 행복한 세상이 찾아와 주기를.. 우린 너무 오래 고생했으니까...


모두를 격려하고 위로하고 축하하며,

위로받듯 편안한 마음으로 음악을 듣고 싶다.

새로운 세상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d62U39p1GMc



https://www.youtube.com/watch?v=-TEGIkz85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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