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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풍요로운 음악들 속에
단 하나의'느림',그런데...

풍요로운 창작의 시대와 예술, 예술작품 그리고 예술가

풍요로운 창작의 시대와 예술, 예술작품 그리고 예술가 –

전대미문의 풍요로운 음악들 속에 빛나는 단 하나의 느림. 그런데...


빌렘 멩겔베르크 그리고 느림


브람스 교향곡 명연주가 무엇인지를 검색하다가 처음 보는 이름이 눈에 띄었다. ‘빌렘 멩겔베르크’. 이름도 낯설었지만, 왠지 그를 언급한 분의 짧은 댓글에는 ‘진한 애착’이 배어있어 찾아보게 되었다. 이런 이런, 알 것 같은 얼굴. 이름은 몰랐고, 네덜란드의 어떤 악단이라고만 알고 있었던,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을 연주한 그 악단의 지휘자였다.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10년도 훨씬 전, 지금처럼 음악을 USB에 담아서 듣는 것이 아닌, 소위  CD로 음악을 듣거나 라디오로 음악을 들어야 했던 시절, 대학가 소르본 근처를 지나게 되면 들르게 되는 곳이 음반가게였다. 그날 매장에 흘렀던 음악은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이었다. 그런데 어딘가가 달랐다. 무언지 모르겠는데, 어딘지 모르게 달랐다. 단순히 그냥 ‘느렸다’.


평소에 듣던 연주들보다 한참 무척 한참 더 느렸다. 그래서 매장 직원분께 지금 나오는 음반이 무엇인지 문의하게 되었고 손에 쥐어진 것이 바로 멩겔베르크 가 지휘한 드보르작 신세계 교향곡이었던 것이다.


이름이 너무 어려워서 읽지도 못하고 모른 체 그저 음악만 듣고 지내다 비로소 오늘 아침 브람스의 명연주를 찾다가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빌렘 멩겔베르크. 내친김에 브람스의 네 개의 교향곡을 모두 그의 것으로 찾기로 하고 그의 생애를 살펴봤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의 사이트인 고 클래식에 어떤 분이 남긴들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1888년에 창단된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 악단(A.C.O)은 네덜란드의 '국보급' 연주단체이죠.  초대 상임지휘자 빌헬름 케스(WILLEM KES)에 이어 약관 25세에 이 악단 2대 상임지휘자에 오른 빌헬름 멩겔베르크(WILLEM MENGELBERG/1871-1951)는 무려 50년간 이 악단을 이끌면서 음악사에 혁혁한 업적을 남겨놓은 지휘자입니다. 특히 매년 부활절 아침에 연주되는 바흐의 <마태수난곡> 전곡 연주로 전통을 세워놓았으며 혹독한 연습과 리허설로 유수의 악단으로 다진 장본인이기 때문이죠.”( http://www.goclassic.co.kr/club/board/viewbody.html?code=symphony&page=13&group=3350&number=13163&keyfield=&key=&)


난 그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인 줄 몰랐다. 그저 드보르작의 교향곡이 무척 느렸는데 아주 좋았다. 는 것이 그의 음반이 귀에 꽂힌 이유였다. 단순해 보이는 그 '느림'을 만들기 위해, 어쩌면 그는 위에 전문가가 언급한 것처럼 무려 50여 년을 공을 들인 것인가.. 란 생각이 들었다.


거의 모든 음악을 유튜브로 찾을 수 있고 또 다운로드하여 들을 수 있는 좋은 세상이 되었다. 풍요로운 세상이니 만큼, '무엇이 없을까?'가 걱정이 아니라 '무엇을 고를까?'가 걱정인 세상. 이렇게 우연히 값진, 단순할지 모르나 ‘다른’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멩겔베르크에게 경배를...


-며칠 후-


문제가 생겼다. 

멩겔베르크를 계속 들으며, 이것 저것 읽어보다 그의 말년에 대한 글을 읽게 되었다. 이런, 이런...

그의 말년은 그리 순탄하지 못했다. 나치에 부역한 경력 때문에 오케스트라에서 추방되었고, 스위스에서 소위 귀양을 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죽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의 음악은 좋은데, 그의 행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한 친구가 술을 마시다가 말했다. 죽어 심판을 받더라도 예술가의 방은 분명 따로 있을 것이다. 도덕만 지키고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작품을 생산하기 위해 그들이 저질렀던 소위 '부도덕'을 면제해 주는 특별법이 있을 것이다..라고"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은 한 작가의 글 중에서)


일반적인, 도덕적인 관점에서 벗어난 작가들은 수도 없이 존재해왔다. 프랑스의 시인 프랑수아 비용은 살인자였다. 감옥을 수시도 들락거렸던 화가 카라바조도 빼놓을 수 없다. 카라바조는 살인까지 저지르고 감옥에 갇히고 사형선고까지 내려졌으나 탈옥하여 도망자가 된다.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남기는 예술가들의 비도덕적인(사회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행동이나 삶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알 수 없다. 모르겠다. 심지어 카라바조가 도망을 다니며, 그린 그림이 바로 '다비드'이다. 그의 '유작'이 되고 만 그 작품은 도피 중이라는 불안한 상황과 작가 자신의 후회와 공포가 고스란히 묻어있다고 이야기된다. 그 근거는 그림 속 등장인물인 다비드의 칼에 새겨진 문구 때문이다. 

한 손엔 골리앗의 목을, 다른 한 손에 쥐어진 다비드의 칼에 새겨진 문구는 '겸손은 오만을 이긴다'이다. 더구나, 악의 상징인 골리앗의 얼굴은 화가 자신의 얼굴로 그려져 있다. 일종의 자화상인 셈이다. 도망 중에 이 그림을 그리고 1610년 교황의 사면을 받고 로마로 가던 중 자객의 습격을 받아 객사하고 만다. 이 그림이 유작이 된 것이다.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카라바조의 그 방탕한 삶과 무절제가 빚어낸 '살인'이라는 '무거운 실수'가 아니었다면, 이 작품은 나오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어린 시절, 안익태에 대한 전기 형식의 드라마가 있었다. 이순재 선생이 안익태의 역을 맡았고, 3.1 운동으로 짐작되는 시위에 나가지 않고 계속 첼로 연습을 하던 장면이 기억난다. 드라마의 마지막엔 노년이 된 안익태가 자신의 환상교향곡을 지휘하고 비장하게 쓰러지며 끝이 난다. '독립운동도 하지 못하고 음악만을 위해 평생을 바친 애국가의 지휘자 안익태'라는 주제가 선명한 드라마였다. 어린 시절에도, 저 행위를 봐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안익태의 경우 문제가 단순치 않았다.


"안익태는 애국가의 작곡자로서 알려져 있지만, 그 인간 자체는 애국가를 작곡할 자격이 없는 범용한 인물이며 특히 민족의식이 결여된 작가일 뿐이다. 그는 외국에서 단지 이키아이 안이라는 일본 이름으로만 행세하였고, 일본 음악을 베껴 한국음악처럼 팔아먹기도 하고,...... 지금 스페인에 남아있는 안익태 거리도 안익태 거리가 아니라 "이키타이 안"거리로 외어 있을 뿐이다. 좀 수치스러운 일이다. 애국가는 언젠가 국미적 합의에 의하여 다시 작곡되고 가사도 새롭게 지어져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며, 많은 사계의 입못여는 이들의 생각인 줄로 알고 있다."  - 김용옥, 석도화론, 217페이지, 통나무출판사


실상, 애국가의 작곡가인 안익태의 문제는 앞서 서두에 언급한 멩겔베르크의 나치 부역 논란과 같은 맥락의 문제이다. 그리고 이 둘뿐만이 아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역시도 나치당원이었던 전력 때문에 지휘 자격을 박탈당하기도 하였고, 미국을 방문 시 시위가 있기도 했다. 카라얀의 선대 지휘자였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역시도 나치와의 문제에 있어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우울해진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음악만 듣고 싶은데, 왜 이 양반 들은 이런 잘못을 해가지고, 듣는 이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시나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는 유명한 지휘자들은(갑자기 나치 문제와 관련된 지휘자들이 대거 인용된 마당이니) 다 이러나 하는 푸념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꼭 그렇지 만은 않다.


나치에 부역한 것이 논란이 되는 지휘자들은 많지만, 반대로 목숨을 걸고 파시즘에 항거하며 무솔리니와 대적했던 아르투르 토스카니니 같은 인물도 있다. 물론 토스카니니도 아내는 일부종사를 강요하며 자신은 '애인'을 두었던, 그럼에도 '이혼'한 친구와 절교를 선언한 조금 복잡하고 이율배반적인 '인간관계상의 오점'이 있으나, 그 문제는 일단 차치하고 정치적 행보만을 두고 보자면 친나치적이었던 일군의 지휘자들과는 달랐다.


2014년 7월 14일 위대한 일상으로 13일에 타계한 로린 마젤을 그렸었다. 첼리스트에서 지금은 지휘자가 된 장한나의 스승, 그리고 최초로 뉴욕필을 이끌고 평양을 방문했던 지휘자. 그가 남북평화를 위해 애써주는 모습에 참 감사했다. 그의 말년의 말러 교향곡 5번에 대한 '찬사'에 마음껏 함께 박수를 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모두 이렇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행복한 상상을 하며...


위대한 일상 2014 '역사란 무엇인가?' 7월 14일, 지휘자 로린 마젤 타계



-나는 파리의 우버 운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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