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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사는 예술

풍요로운 창작의 시대와 예술, 예술작품 그리고 예술가.

풍요로운 창작의 시대와 예술, 예술작품 그리고 예술가.

- 과거를 사는 예술, 현재를 사는 예술 그리고 미래를 사는 예술  




대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학과장님의 첫 수업. 실기실에 둥글게 둘러앉은 학생들에게, 선생님께서 질문을 던지셨다.


 “자, 이제 한 사람씩 예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말해보자.” 


선생님이 앉으신 자리 왼쪽에서부터 한 사람씩 각자가 생각하는 ‘예술’에 대해 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답했다. 


“잘 모르겠는데요.” 


싱글벙글 웃으며 내놓은 대답에, 선생님께선 짐짓 엄숙한 얼굴을 하시며, 


“장난치지 말고 똑바로 말해야지!”


하고 꾸짖으시며 다시 물으셨다. 나는 웃음기를 걷고 진지하게 답했다.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들 모두 맞는 것 같습니다. ‘감동’ , ‘숭고한 것’, ‘아름다운 것’등등

(솔직히 당시 동기들의 답변이 무엇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모두 정말 맞는 것 같았던 심정은 지금도 생생할 만큼 진심이었다. 나 역시도 간절히 질문했던 문제였기에, 동기들의 답변이 허무맹랑하게 들리지 않았었다.) 

모두 맞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중에서 딱하나, 정확히 ‘예술이 뭐다!’라고 답해야 할지, 그것을 잘 모르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고는 넘어가 주셨다. 나름 진지한 답변이었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실제로 그러했다. ‘예술’이 뭐냐?라는 질문에 어떻게 답이 쉽게 나온다는 말인가? 1992년 철학자 김용옥 선생께서 백남준 선생께, "도대체 예술이란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했을 때 백남준 선생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도올 김용옥 : “정말 예술이란 게 무엇입니까?”


백남준 : “자동차가 무엇이냐? 이런 질문에도 나는 대답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하물며 예술은 무엇이냐? 이렇게 거대한 질문에 나는 답할 수가 없다. 나는 스페시알 리스트일 뿐이다. 당신 같은 철학자야말로 그런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냐?” 



‘너 자신을 알라’라고 했던 소크라테스는 당시 아테네를 다니며, 각 주제마다 그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학자를 찾아가 질문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모두들 자신보다 몰랐다고 한다. 그래서 ‘아! 그들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모르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학문이란 바닷가 모래사장의 모래알을 세는 것과 같다고 한 뉴튼의 말처럼, 학문이란, 무엇을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모르는지를 확인해 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김용옥 선생께서 탄복해 마지않을 정도로 ‘해박했던’ 백남준 선생은 ‘예술’에 대한 정의에 대해 ‘모른다’고 답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글에 인용한 강익중의 발언을 보면, 백남준 선생께서 ‘예술’에 대해 “미래의 시점에서 현재의 역사를 쓰는 게 예술이란 말씀이시죠”라고 언급한다. 그러나 이것은 백남준 선생이 직접 내리신 ‘정의’라기보다. ‘예술은 사기’라는 백남준 선생의 생각에 대한 강익중 선생의 ‘해석’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듯하다. 또다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해석’은 우리가 ‘예술’에 다가가는데 한 가지 흥미로운 시사점을 제공해 주는 것이 사실이다. 또 다른, ‘예술’을 이야기하며 ‘현재’와 ‘미래’를 언급한 또 하나의 인용구를 들어보자.



“그래서 작곡가 쇤베르크와 그의 제자 알반 베르크와 안톤 베베른에 특히 영향을 주었던 것이 다름 아니라 브람스적인 작곡이었고, 바그너 악극의 복잡한 음향 세계가 아이 었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중략) 이 시기의 쇤베르그의 모든 표현물들은 유토피아적 의미에 있어서 미래로 향해진다. 그에게 있어서 현재는 다만 미래에 대한 등가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예술적 천재, 즉 작곡가는 이러한 미래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천재는 그의 예술을 통해 미래를 현재 속으로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 (예술의 종언, 예술의 미래 중, 엘마 붓데, 앞을 향한 회상, 58- 59페이지) 




위의 문장은 ‘예술의 종언 예술의 미래’라는 주제 열렸던 학회의 참석자 중 한 사람이었던, 독일의 음악학자 엘마 붓데의 말이다. ‘앞을 향한 회상’이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글에서, 엘마 붓데는 바그너와 브람스 그리고 쇤베르크를 이야기하며, ‘무조음악’으로 현대 음악의 지평을 열었던 쇤베르크가 당시엔 훨씬 더 진보적이었던 ‘바그너’가 아닌 고리타분하다고 보이는 ‘브람스'로부터 잉태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왜 바그너가 아니고 브람스인가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이야기하기로 하고, 여기에선 ‘미래를 현실에 끌어들이는 것’이 예술이라는 이 공통된 논점에 대해서 좀 더 곱씹어 보도록 하자.


***


나는 예술작품에 대한 정의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특히나 파리. 남프랑스 그리고 프랑스 각지의 미술관을 가이드할 때) 앞서 언급한 강익중 선생의 설명, ‘미래의 시점에서 현재의 역사를 쓰는 게 예술’을 거의 매번 인용한다. 실제로 예술이란 그렇게 시대를 뛰어넘어 미래의 시각을 현재에 제시해주는 점(성격)이 분명 존재한다. 그것은 과학이 새로운 기술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과 같은 맥락이기도 하다. 


과학이 예술에 영감을 주기도 하며 또 예술이 과학에 영감을 주기도 한다. 예전에 미학을 전공하신 한 선생님은 ‘과학과 예술을 하나로 본 사람이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흥미로운 지적이었다. 나는 그 말을 받아서 “과학과 예술을 하나로 본 또 다른 사람이 있는 게 그것은 바로 스티브 잡스”라고 말하고 싶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설계하는 자리에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를 동석시켰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다시 우리의 주제로 돌아가서, ‘미래의 시각으로 현재를 본다.’ 조금은 어려워 보이는 이러한 정의에 대한 가장 쉬운 예는 ‘에펠탑’이다.  나는 에펠탑을 볼 때마다, 에펠탑이야말로 ‘미래의 시각으로 현재를 바라본’ , ‘미래의 시각을 현재에 끌어들인’ 가장 ‘정확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에펠탑이 지어진 것은 1889년, 익히 알려져 있는 데로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파리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를 위한 조형물로 건립되었다. 당시에 많은 반대가 있었으나, 그러한 반대를 무릅쓰고, 만국박람회의 상징이 필요하니 건립 후 20년 뒤에 철거를 전제로 지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라디오 기술이 들어서며 송수신탑으로서의 기능을 하게 되고, 무엇보다 당시 유력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의 집단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지금까지 철거되지 않고 140여 년이 넘도록 굳건히 서있는 것이 바로 에펠탑이다. 


지금의 파리는 에펠탑이 없으면 상상할 수 없듯이, 당시엔, 1889년엔 받아들여지지 않는 디자인과 시각이었으나 지금 20세기엔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다시 말해 당시 이 에펠탑의 원안자였던, 구스타프 에펠이 아닌 모리스 쾨클랭의 시각은 19세기의 것이 아닌 20세기의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정치적 수완이 높았던 구스타프 에펠 덕분에 건립되고 살아남아 결국 에펠의 이름으로 에펠탑으로 남게 되었지만, 에펠 뒤에 가려져있던 엔지니어 모리스 쾨클랭의 시각이야말로 ‘미래를 현재에 재현'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예술의 하나의 단면일 뿐 그 전체는 아니며, 굳이 미래를 현재에 끌어들이지 않고도 ‘예술'로 남아있는 무수히 많은 '가능성'들이 존재한다. 만약 우리가 지금까지 논의한 데로 미래와 현재라는 일직선의 시간적인 구분으로 예술을 재단하고자 한다면 세 가지 구분이 가능할지 모른다. 그것은 ‘과거를 사는 예술'과 ‘현재를 사는 예술' 그리고 '미래를 사는에술'이다.


'과거를 사는 예술'은 말 그대로 과거의 '사상'이나 과거의 '사조'에 머물러 있는 예술이다. 이것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가치 없는 것'으로 폄하되기도 한다. 소위 과거를 답습하는 것처럼 비추어지기 때문에다. 그러나 개인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과거를 사는 예술이야말로 '향수'와 '추억'의 예술이며, 현실을 잊고 아득하고 그리운 과거로 잠시 여행을 시켜주는 예술이기도 하다. 잊지 못할 음악이나 순간, 장소 또는 경험... 무수히 많은 아름다운 추억들, 이것 모두 '과거를 사는 예술'의 한 단면이 아닐까?


'현재를 사는에술'은 '현재의 생동과 역동성'을 그대로 담은 예술이다.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를 지배했던 하나의 키워드는 ‘중국'이었다. 그 이후 현대미술계에서 중국과 중국 작가들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하나의 축으로 군림했다. 당시 비엔날레의 동유럽 국가관의 출품작들을 보면, 노쇠한 추상화 계열의 모더니즘 회화작품들이 걸려있었다. 서유럽과 영미권은 늘 그렇듯 촌스럽지 않은, 소위 감각 있는 '신상품'을 내놓고 있었다면, 현대미술의 후발국이었던 동유럽의 국가들은 '모더니즘의 막차'인지 '포스트모더니즘의 첫차'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묘한 작업들을 내놨었다. 


반면, 중국은 그야말로 역동적이었으며 신선했다. 국보급인 판다가 후천성 면역결핍증에 걸려 우울증에 빠진 모습을 담은 사진 작업이나. 다른 여러 작업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소위 ‘구대륙’의 노쇠한 기운과는 확연히 다른 무엇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다시 곰곰이 되씹어보니, 그것은 중국 작가들의 뛰어남이라기보다는 중국 사회의 역동성이 그 힘의 원천이었다. '사회'와 '현실'이 쏟아내고 있는 열기와 기운에 그대로 작품과 작가들을 통해 발산된 것이다. 당시의 중국은 파리 규모의 도시들이 한 달에 하나씩 건설되던 시기였다. '풍요로운 창작의 시대와 예술'이라는 제목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며, 코로나 시대에서 '이동제한령'으로 인해 무수히 많은 창작물들이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는데, 이러한 '창작행위'들 역시 '현재를 사는 예술'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래를 사는 예술'이 있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에펠탑과 같이 '미래의 시각을 현재로 끌어들여', 현재에선 몰이해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그러한 현실의 벽을 잘 넘으면, 미래에 살아남아 현재의 기억을 역사로 오롯이 기록하는 예술이다. 만약 지금 우리가 분류하고 있는 세 개의 항목 중 상대적으로 더 가치 있어 보이는 것은 '미래를 사는 예술'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쩌면 ‘안정적인 과거'를 사는 예술과 '즉흥적인 현재'를 사는 예술과는 달리 '미래를 사는 예술'은 현실의 무관심과 과거의 향수를 통한 만족감이라는 보상을 거부한 채, 미래에 대한 어떠한 담보도 없이 도전한 정신에 대한 역사적인 보상 인지도 모른다.


여기서 글을 맺기 전, "도대체 예술이 뭐냐?" 물으셨던 김용옥 선생의 질문에 앞서 전제되었던, 중요한 논거를 인용하고자 한다. 이 논거는 왜 바그너가 아니고 브람스인가? 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해 주며, 풍요로운 창작의 시대에 왜 어떤 에 술은 평가받고 또 다른 예술을 평가받지 못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근거를 제시해줄 가능성이 있다. 



“이상하게도 백남준 씨에 관한 우리의 통념은 아방가르드라든가 예술은 사기다 라는 말을 한 사람으로만 부각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자리에서 하나의 위대한 예술가의 탄생을 가능체 하는 각고의 훈련의 과정, 그리고 자유를 가능케하는 온갖 구속의 체험, 이런 것들이 보다 강렬하게 여기 오신 젊은 학도들에게 인식되기를 원합니다. 그가 예술을 사기라고 한 것은 예술이 사기라는 말이 아니요, 예술이야말로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 왜 예술이 인간을 괴롭게 만들고 인간을 더 구속된 존재로 만들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백 선생님에게 있어서 예술은 해방입니다 그리고 백 선생님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매우 평범한 상식적 삶 속에서 기나긴 무명의 삶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노력 없는 예술은 있을 수 없다는 것, 전시된 작품을 보고 나도 흉내 내면 되겠지 하고 쉽게 이해해버리고 마는 오류를 젊은 학도들이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럼 이러한 관점 위에서 백 선생님께 다시 묻겠습니다. 정말 예술이란 게 무엇입니까?”

(김용옥, 석도화론 250-251페이지, 통나무 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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