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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Happy Letter Sep 21. 2023

글쓰기 원동력 - 인정 욕구와 과시 욕구 사이

브런치 글쓰기(13)- 글 잘 쓰는, 지속가능한 글쓰기의 동력?


브런치스토리에 글쓰기 시작한 이래 필자는 요즘 '창작 시(詩)' 쓰기에 엄청 필 받아 지금까지 써 온 11편의 창작 시를 퇴고하고 발행까지 했다. 필자의 졸필에 분에 넘치는 격려와 응원을 받고 있어 다시 한번 이 자리를 빌려 필자의 글을 매번 읽어주시는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위에 제목은 거창하게 잡았지만 오늘은 그냥 브런치 글쓰기 관련 소소한 단상을 독자 여러분들께 전하면서 짧게나마 글로써 남기고자 할 따름이다.




사실 이 글 제목에 적은 것은 필자의 최근 글쓰기 관련 심경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다.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인간의 기본적이자 원초적인 욕구들 중에서도 엄청나게 강력한 힘을 가진 그 무엇인 것 같다. 자신이 하는 말(쓰는 글), 하는 행동(만들어 내놓은 작품)에 대해 늘 누군가로부터 관심을 받고 우호적이고도 긍정적인 평을 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러나 그 '인정을 받고자 하는 심리적 욕구'가 지나치게 많거나 너무 앞서기만 하는 바람에 일부 사람들은 흔히 "과시 욕구"에 먼저 빠져 버리게 되고 마는 것은 아닌지도 모른다.


필자부터 먼저 경계해야 할 부분이지만, 왜냐하면 이렇게 누구에게나 오픈된 공개 글쓰기 플랫폼에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내 존재와 내 목소리, 내 작품 글을 알리고자 하는 욕구, "나 여기 있어! 내 말(글) 좀 들어줘(읽어줘) 봐!"라고 크게 외치고 싶은 욕구는 (조용히 차분하게 글로만 적는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로) 참으로 자제하기 어렵지 않나 생각해 본다.


이러한 욕구 또한, 마치 내가 어떤 곤란한 상황이나 곤경에 빠져 있을 때, 또 어떤 위험에 처해 있을 때 같은 종족이라는 이웃 사람들에게 나를 적극적으로 알려야 하는 생존 본능처럼, 우리의 무의식 속 깊게 내재된 감출 수 없는 원초적 본능과 욕망에 속하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인정 욕구와 과시 욕구가 때로는 혼재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전혀 다르게 짐짓 비틀려 표출되는 경우, 어떤 글은 읽다 보면 저마다 살아가는 삶 속에 "나 여기 있어! 나 이 정도야, 나 좀 안 봐줄래?"를 넘어서서 마치 "나 지금 아파! 나 위험에 처해 있어, 빨리 도와줘!"라고 애원(哀願)하며 외치는 것처럼 들릴 때도 있다.




어쨌든 필자의 글에는, 그리고 글을 쓰는 동기에는 위에 언급한 그 '인정 욕구'와 '과시 욕구' 두 가지 다 공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냥 둘 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어떤 작가분이 필자의 글 쓰는 동력을 물었는데 딱히 뭐라고 내세울 것은 없어 지금껏 머뭇거리고만 있었다. 구태여 말한다면, 단지 배고프고 목마른 자의 "몸부림" 정도라고 답하고 싶은데 그러면 너무 실례일까?


한 일주일 밥 굶은 이에게 당신이 그렇게 허겁지겁 밥을 잘 먹는 이유(동력)가 뭐냐고 물으면 그 사람은 어떻게 답할까? 사나흘 동안 물 한 모금도 못 마시며 참고 버텨온 이에게 어떻게 그렇게 물을 벌컥벌컥 잘 마시느냐고 물어도 아마 마찬가지 답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필자는 쓰고 싶은 글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쓰지 못하다가 브런치스토리에 와서 첫 글을 발행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마치 봇물 터지듯 글을 쓰게 된 것일 뿐이다. (실은 필자 스스로도 놀랍다. 다만 일부 아이디어나 글감 같은 모티프(motif)/모티브(motive)들은 예전에 구상해 둔 것도 좀 있었지만.) 여전히 추상적인 답이 될지 모르겠지만 좀 거칠게 표현하면, 그동안 글이 고팠고 글에 목말랐다고만 답할 수밖에 없음을 용서해 주시길 바란다.


그리고 다른 한편 어떻게 보면, 지금 안 쓰면 언제 쓸 수 있겠냐는 필자 나름의 간절함과 절박함도 한몫했다고 볼 수 있겠다. 나중에 쓰지 뭐, 나중에 시간 되면.. 등등을 반복하다가 지금까지 왔는데 이렇게 계속 "나중에"만을 또 반복하다가는 정말 나중에는 죽기 직전 "다음 생에는 꼭 글을 쓸 거야"하며 죽는 일 밖에 남지 않을까 봐 두려워 지금이라도(또는 이제야?) 쓴다.


혹은 어떤 분들은 글감 부족이나 글을 쓸 마땅한 아이디어나 구상이 잘 안 떠오르면 그냥 좀 쉬는 것도 (떠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라고 한다. 애써 일부러 뭔가를 꼭 쓰려고 하기보다는 좀 쉬다 보면 저절로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며 타이핑하고 있는 자신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생업을 이어가야 하는 전업 작가분들은 입장이 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든 억지로 글을 쓰면 안 된다는 사실인 것 같다.)


물론 '매일 글 쓸 결심'을 하고 실제로 매일 글을 쓰는 분들은 정말이지 아주 대단한 분들이 아닐 수 없다. 그분들의 노하우나 동력도 무척 궁금해진다.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필자와 그 질문자를 위해서, 또한 다른 독자분들을 위해서 저마다 가지고 있는 개인적 경험에 기반된 글쓰기 동력을 짧게라도 알려주시면 좋겠다.


하지만 필자도 얼마나 오랫동안 이 글을 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여건이 되면 계속 쓰고 당장이라도 어떤 예기치 못한 사정이 생기면 본의 아니게 글쓰기를 좀 쉬게 될 수도 있다. 그냥 그때그때 상황에 맡길 수밖에 없다. 현재로선 예측하기 힘든 미래를 미리 앞서 걱정하거나 예단(豫斷)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적어도 필자 개인적 형편으로는 그러하다는 말이다.)


필자의 '인정 욕구'와 '과시 욕구'와는 결이 다르지만 궁극적으로 자유로운 예술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각자 가진 자부심과 자존감으로 말 그대로 인고(忍苦)의 세월을 거치며 (필력을 쌓아가는 긴 시간 동안) 나약해지려는 자신과의 타협 없는 부단한 싸움이 필요하리라 본다. 그러한 반복된 수련(修鍊)을 통해서만 보다 성숙된 자신의 모습이 갖춰지고 또 뜻깊은 작품도 함께 나타나리라 믿는다.




여담이지만, 브런치스토리 글을 읽다 보면 어떤 작가님들의 글에는 댓글이 많이 달려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독자들의 짧은 소감과 작가님의 감사의 인사, 또 서로 격려와 응원을 주고받는 훈훈한 모습도 있고, 간혹 보면 살짝 뒤틀린 댓글에 대댓글이 연이어 달리고 티키타카(tiqui-taca)하며 이견(異見)을 주고받는 경우도 있다. 어떤 작가님들의 글은 (구독자 수나 라이킷 수와 상관없이) 댓글이나 대댓글이 거의 없는 글들도 많다. 댓글은 달려도 글 쓴 작가가 대댓글을 달지 않는 경우도 많고.(각자 개인적인 소통방식 취향이며 자유다.)


필자는 굳이 말하자면 현재로선 후자의 경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독자분들 중에서 몇몇 분이 정성스럽게 댓글을 달아주시는 데 필자가 감사의 대댓글을 못 달고 있는 형편(形便)이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필자의 졸고에 독자분들이 달아주신 따뜻한 댓글들은 모두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소중하게 잘 읽고 있으니 혹시라도 오해하지는 마시고 부디 넓은 아량(雅量)으로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다.(작가분들이 남겨주신 댓글도 멋진 작품 글인데 필자가 괜히 "덧칠"하게 될까 봐 '대댓글'을 주저하는 그런 느낌도 살짝 있음.)






이 글을 마무리하며, 이미 많은 분들이 익히 잘 아시는 에피소드일 텐데 혹시나 아직 안 들어보신 분들도 있을까 봐 그 독자분들을 위해서라도 여기 간략히 요약해 적으면서 오늘 글은 이만 줄이고자 한다.




어느 선술집에서 중년 여성이 혼자 술을 마시다가 다른 편 옆에 있는 남자 손님이 담뱃갑 종이 같은 데 뭔가를 그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좀 있다가 그 남자 손님은 바로 그 종이를 구기더니 술집 바닥에 있는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려고 했다. 그때 그 중년 여성이, "아니, 그 그림을 버릴 거면 그냥 나 주면 안 돼요?"라고 물었고, 그러자 그 남자 손님은 "나한테 2만 불(한화 2천6백만 원) 주면 주겠소."라고 답하는 것이 아닌가?


그 중년 여성은 어이가 없다는 듯 비웃으며, "이것 보세요, 당신이 그 담뱃갑 종이 위에 1 ~ 2분 그 짧은 시간에 대충 꾹꾹 눌러 그린 그림이 어떻게 그렇게 비싸요? 말도 안 돼!"라며 기분 나쁘다는 듯이 말했다. 그때 남자 손님은 그림을 그린 그 담뱃갑 종이를 그냥 자기 주머니에 다시 집어넣으며 "2분 동안 그린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나는 지난 20년 이상 동안 그림 그리는 연습을 해왔소."라는 말을 남기고 그 선술집을 떠났다고 한다.










그 남자 손님의 이름은 바로 세계적인 화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였다고 한다.










다음 [어학사전],

티키타카(tiqui-taca) : 두 사람이 서로 잘 통하여 탁구공이 오가듯 빠르게 주고받는 대화.

봇물 터지다 : (일이나 감정의) 상태가 급격히 활성화되다.

형편(形便) : 한 개인이나 집단의 활동성을 규정하는 환경 요인들의 총체.

예단(豫斷) : 어떤 일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미리 판단함. 또는 그 판단.

아량(雅量) : 깊고 너그러운 마음씨.


다음 [백과사전],

파블로 피카소 Pablo (Ruiz y) Picasso(1881-1973):

20세기를 대표하는 스페인 입체파 화가. 91년간의 전생애 중 80여 년을 미술에 바친 피카소는 회화·조각·소묘·도자기·시 등의 무수한 작품으로 20세기 현대미술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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