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세대가 바라보는 기성세대, 기성세대가 바라보는 미래 세대
일부 독자분들에겐 관점에 따라서는 불편한 글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 글이 동시대 담론(discourse)의 일부로 현재 진행형인 세대 논쟁(debate)이 되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세대 갈등이나 세대 차이 왜곡 등의 의도는 절대 없음을 밝혀둔다.
오히려 이런 테마나 토픽을 언급하는 글의 배경은 세대 갈등과 차이를 넘어서서 보다 바람직한 공생과 상생의 길을 모색하는 데 조금이라도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람에 다름 아니다. (필자가 발행한 졸고, ['풍요로운' 사회공동체에 관한 주관적 단상]에 "세대 간 갈등" 관련 부분도 있으니 관심 있는 분은 참조하시기 바람.)
어느새 이미 '공개 기록장'이 되어가고 있는 글쓰기지만 소수의 독자만 읽는 글이 되더라도 짧게 몇 줄이나마 남겨서 개인적으로 훗날에도 기억하고자 한다.
많은 사회적 이슈들 중에서 필자가 오늘 글로 써보고자 하는 것은 '세대 차이'와 그와 관련된 현상에 관한 것이다.
대개 이런 성격의 글은 글 쓰는 이가 좀 사회적 명성이 있고 유명하거나 아니면 특정 분야의 전문가, 교수 또는 사회적 지도자, 정치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의 일이며 우리 모두 말하고 글로 쓸 수 있는 토픽이다.
우리는 연륜(年輪)이 깊은 정치학 교수나, 관록(貫祿) 있는 정치인들으로부터 정치적, 사회적 사안에 관한 고견을 경청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어떠한 정치적 사안이나 사회 문제에 의사 결정을 위한 정치적 행위, 즉 투표에 있어서만큼은 투표권을 2개를 주지는 않는다. 사안에 따라서 영향을 미칠 수는 있겠지만 최종적인 판단과 의사결정, 투표를 통해 의사(意思)를 표출하는 것은 엄격히 개개인의 의무이자 권리이고 그것은 누구에게나 공히 주어지는 투표권 1개만으로 규정지어진다.
필자 또한 1개의 투표권을 가진 평범한 시민의 한 사람일 뿐이다. 사회정치적 사안은 제도적 시스템과 사회과학적 현상과 다양한 입장을 가진 구성원들, 단체, 집단 간의 이해관계에 의해 복잡 미묘하게 움직인다고 하는데 나 같은 일개의 시민 한 명이 투표권 1개 행사 안 한다고 뭐가 달라지고 뭐가 바뀌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은 그런 사소하고 하찮다고 생각하는 투표 행위의 결과인 한 표, 한 표들이 다 모여 세상을 바꾸기도 하고 사람을 바꾸기도 하고 우리가 사는 이 사회의 "공기"를 바꾸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의무이자 권리인 투표권을 포기하거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우선 미래(청년) 세대와 기성세대 구분이 어떻게 정의되고 있는지 정확히 알아보려 좀 찾아보니 "기성세대"(旣成世代)란 "현재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세대"라고 한다.(출처 : Daum [어학사전]). 그렇다면 다시, 막연히 "어느 정도 나이가 든"이라고만 설명되어 있는 데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나이가 들어야 기성세대라고 불릴 수 있는지 몰라, 그 나이대를 찾아보니 대개 기성세대는 지금 현재 기준으로 흔히 "40세에서 60대 후반까지의 나이대"를 뜻한다고 한다.
우리가 제도화되지 않은 사회적 통념이나 현상을 논할 때 공통된 '정서적 공감대'를 갖고 수용할 수 있는 범위라는 게 있다면 앞서 언급한 개념 정의 사항들이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고 필자의 글을 좀 더 이어가자면, 이러한 기준하에서 볼 때 40세 미만인 39세까지의 세대를 편의상 '미래세대' 또는 '청년세대'라고 부를 수 있겠다.
필자가 정확히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에 본 언론 기사들 속 떠돌아다니는 "주장"중의 하나는 세대별로 연령 그룹별로 투표권 효력을 나누는 방안이다.
우리 모두 각자 1명당 1개의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데 이 투표권의 효력을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따라서 이 사회에 앞으로 영향력을 끼치거나 영향을 받을 날들이 아주 적게 남은" (일정 연령 이상으로 늙은) 노인들은 0.5를 주고 "상대적으로 살 날이 훨씬 많이 남은, 따라서 이 사회에 앞으로 영향을 끼치거나 영향을 받을 날이 아주 많이 남은" (일정 연령 이하로 젊은) 청년층은 1.5를 주자는 식, 또는 이와 비슷한 주장이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60대 이상은 1표당 0.5표로 줄여 계산하고, 20대는 1표당 1.5표로 계산하자는 식이다.)
유권자의 지역별, 나이대별 인구수 구성과 분포 등은 정치적 이념, 보수와 진보 진영 사이의 정치적 대결 구도에 있어서도 득표 득실의 이해관계가 아주 첨예한 사안이라지만, 필자는 일단 1인당 1표를 0.5표 내지는 1.5표로 조정 산정하는 발상에 대해선 (어느 진영인지 여부를 떠나) 헛웃음만 먼저 나온다. 오히려 이런 발상이 나오게 된 배경과 그 주장의 저의(底意)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정치 진영에 유리한 표계산을 이런 식으로 밖에 못하는지 작금의 정세와 정치적 현상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우리는 만 18세 이상이면 누구나 1인 1표 선거(투표)권을 가지는 평등선거를 원칙으로 하는 국가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노인층의 진보 진영에 대한 지지율이 좀 낮아 보인다고 이런 식의 접근이나 선동을 하는 것은 "주체 측" 스스로가 자멸하는 길을 앞당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노인층의 지지율이 떨어지면 그들을 상대로 유의미한 정책과 비전으로 설득하고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함이 마땅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에 언급한 연령별 비례성을 산정한 투표권에 관한 계산 방식은 현재 자기 나이로부터 평균 여명(살아남아 있을 수명)까지 비례적으로 투표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항간에 떠도는 주장을 보면, 노인들은 자신들을 위한 정책(노인복지, 노령 연금 증가 및 노인층을 위한 제도적 지원 정책 등)에만 관심 있고 젊은 청년층들의 관점과 사안, 미래(청년) 세대를 위한 정책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기적 투표"를 할 것이라는 추측이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들은, 우리 모두도 (언젠가는) 생각보다 빨리 그리고 곧 "노인"이 된다는 것을 생각해보기는 한 걸까?
그 연령별 비례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왜 독일의 예나 정치적 환경은 참고하거나 언급하지 않았을까? 독일의 경우, 현행 만 18세 이상 나이의 투표권을 만 16세로까지 낮추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한다.(지방 주정부 투표에 한해 6개 주는 이미 만 16세부터도 투표 가능)
만 16세로 투표 연령을 낮추자는 논쟁 속에서 옹호하는 측 주장의 취지는 미래세대의 관점을 정책에 미리 더 많이 포함시키자는 것이며, 실제 만 18세와 16 ~ 17세의 정치적 관심이나 참여도를 볼 때 그 정도의 차이가 거의 없다는 입장이다. 한편 반대하는 측에서는 만 16세는 아직 정치적 견해나 의사결정에 관한 성숙도를 감안할 때 독립적인 투표보다는 오히려 부모 견해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우려가 더 많다고 보며 부정적 입장을 표하고 있다.
만약에 이처럼 우리나라에도 지금보다 한 두 살 더 어린 투표나이를 새로 도입하게 되면 나이가 어리고 젊으면 무조건 '미래(청년) 세대'라고 규정짓는 쪽에서 환영할지, 아니면 부모의 영향을 받는 어린 청소년이라서 오히려 '기성세대'에 속하는 부모의 정치적 성향이나 견해가 투표로 반영된다고 생각하는 쪽에서 더 반기게 될지 무척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기성세대는 기성세대의 노력으로 이룬 번영을 청년세대(미래세대)가 다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미래(청년) 세대는 좀 다른 관점과 입장을 가지고 있다.
청년세대는 지금 기성세대가 갖고 있는 권력과 기득권으로 (미래에 "젊은 세대"가 써야 할 자원과 에너지처럼) 미래세대가 필요한 정책 예산을 기성세대가 다 쓴다고 생각한다.
환경단체에서 슬로건으로 자주 내세우는 말 중에, "현재 우리는 지금의 자연과 자원을 쓰다가 미래 세대에게 남겨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미래세대의 자연과 자원을 미리 앞당겨 빌려 쓰는 것이다"라고 하는 말이 있는 것처럼.
만약에 미래(청년) 세대가 정말 진지하게 기성세대에 반(反)하는 삶을 영위하고 싶다면, 기성세대가 이루어 놓은 것을 부정하려 한다면 단적인 예로 지금 젊은 세대는 부동산을 사지 않으면 된다고 한다. 그러면 (기성세대의 가장 비중이 큰 자산으로 아주 어렵게 돈 벌어 저축하여 마련한) 부동산을 갖고 있는 기성세대들은 그야말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기성세대의 입장에선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의 수요공급 논리에 따라 사겠다는 수요가 많아져야 부동산(자산) 가치와 가격이 더 올라갈 것인데 젊은 세대가 땅이며, 집이며 부동산을 새로 매입하지 않고 직접 소유하지 않는다면 기성세대가 가진 부동산 가치는 날로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학교교육 환경이나 시스템, 학벌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의 교육 제도로 공부를 하고 명문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한 기성세대를 당혹스럽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라고 한다. 기성세대가 마련해 놓은 학교를, 대학을 가지 않으면 된다는 말이다.(취업난, 구직난이 어려운 오늘의 사회 현실을 볼 때 이게 실제로 가능한 일인지는 우선 차치(且置)하더라도.)
초등학교 졸업 후 집에서 부모님이 직접 가르치는 홈스쿨링을 시키는 부모들도 있다. 또는 대안학교를 보내기도 한다. 그리고 심지어 기존 대학을 진학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어느 특정 대학이든, 명문 대학이든 대학졸업장이 필요 없다고 한다.(하지만 기성세대의 경우, 이와는 전혀 다른 연유이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성세대 중에는 집안에서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학업을 중단하거나 진학을 포기하고 아주 어린 나이에 일찍 취업해서 경제적으로 가족을 도와야만 했던 사례들이 아주 많았다.)
그 기성세대 구성원들이 어렵게 입학하고 어렵게 공부하고 졸업한 그 명문 대학을 안 가겠다고 하면 그 대학을 졸업한 기성세대의 어깨가 좀 내려가고 그 힘도 좀 빠지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하면 지금까지의 사회 시스템과 제도로 나름대로 '생존경쟁'을 치러 온(혹은 현재도 치르고 있는) "자리 잡은" 기성세대들에겐 또다시 혼란스러운 일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래 세대(청년세대)가 과연 이런 과감한, 급진적이면서도 "이기적"(?)인 사고와 판단을 할 수 있을까?
앞서 언급한 "연령별 비례성을 산정한 투표권"은 세대 간 갈등을 더 키울 뿐이라고 본다. 우리는 나이와 직업, 빈부, 배우고 못배우고를 떠나 똑같은 인권을 갖고 있듯이 투표권 또한 '신성불가침'(神聖不可侵) 영역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1948년 제헌헌법에서부터 평등선거를 채택했으며, <헌법> 제11조 1항에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제24조에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라고 밝혀서 평등선거의 근거를 명문화하고 있다.(출처 : Daum [백과사전], 평등선거)
실제 이런 비례성이 반영된 투표권이 새로 도입된다 하더라도 명심해야 할 문제는 지금의 청년(미래) 세대도 생각보다 빨리 그리고 곧 똑같은 "기성세대"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기성세대가 된다고 해서 반드시 모두 다 자리 잡고 부유층이나 사회적 지배 계층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기성세대가 이루어놓은 모든 것을 부정할 수도 없지만, 부정한다고 치더라도 청년세대가 무조건 기득권 세력이나 사회적 지배계층이 되는 것은 아니다.)
불행하게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성세대는 지금의 미래(청년) 세대가 하는 말을 똑같이 했었고, 동시에 그때의 기성세대로부터도 또 마찬가지로 똑같은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필자도 "사전상 뜻"으로는 어느새 '기성세대'에 속하지만 항상 미래(청년) 세대의 관점을 잃지 않으려 노력해야겠다고 되뇌며 이만 글을 마친다.
다음 [백과사전],
평등선거(平等選擧) : 선거인의 투표가치를 평등하게 취급하여, 모든 유권자에게 동등하게 1인 1표의 투표권을 인정하는 것으로, 근대 민주주의 선거의 기본원칙 중 하나. 개인마다 능력이나 정치의식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 개인의 정치의사를 1표로 환원시켜야 한다는 원리이며, 대한민국 헌법에도 보통, 직접, 비밀선거와 함께 선거의 기본원칙으로 규정되어 있다.
다음 [어학사전],
연륜(年輪) : 여러 해 동안의 노력이나 경험으로 이룩된 숙련의 정도.
관록(貫祿) : 어떤 일을 오래 겪으면서 쌓여 갖추어진 권위나 위엄.
의사(意思) : 무엇을 하고자 하는 생각.
저의(底意) :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 품은 생각.
차치하다(且置--) : 내버려 두고 문제를 삼지 않다.
신성불가침(神聖不可侵) : 매우 거룩하고 성스러워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