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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Happy Letter Oct 06. 2023

교수님께 드리는 서한(書翰)


교수님,


교수님의 철학 담론(談論)에 관한 책을 감명 깊게 읽으면서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꼭 한 번 여쭈어 보고 싶은 게 있어서 이렇게 공개적으로 편지 글을 씁니다.


교수님의 책 머리글에서 뒤늦은 고백처럼 언급한 "마르틴의 00 책을 읽고 나서 이 책을 집필했다"는 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철학교수로서 권위와 명성을 가진 분이 공개적으로 그것도 직접 집필하신 책 서두에 그렇게 언급을 하시니 후학(後學)의 길을 걷는 많은 이들의 입장에서는 그 책을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수님의 글은, 교수님이 쓰신 책들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아주 지대(至大) 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교수님의 철학적 관점, 사상과 사유가 그 00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로 나누어진다고 말했는데 그보다 더 크게 그 책을 찾아 읽게 만드는 동기 부여가 또 있을까요?


교수님께서 그렇게 높이 평가하시고 20세기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천재' 철학자 중 한 명이라는 마르틴에 관하여 좀 더 알아보니 실제로 많은 유럽 철학자들이 영향을 받았다고 하며 그 범위가 독일 철학과 신학, 예술 분야뿐만 아니라, 특히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에까지 광범위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일부 철학자들에겐 대개 기존 철학자들의 사상과 이론에 대한 비평(critique)과 논평(commentary)이 주된 연구 작품이었다면 마르틴은 지금까지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실존의 근거로 죽음[Tod]과 현존재[Dasein], 그리고 그 현존재와 연관된 시간[Zeit]과의 관계를 심오하게 파헤쳐 새로운 철학적 논증을 정립해 냈다고 하며, 이는 사실 철학사에 있어 엄청나게 놀라운 혁명적 성과라고 학계에서는 지금까지도 모두 한 목소리로 칭송(稱頌)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저에게는 아직 난해한 개념들이지만, 현존재[Dasein] 개념과 의미, 죽음[Tod], 신[Gott], 염려[Sorge], 삶의 불안[Angst] 등의 테마 관련 독자적이고도 독창적인 철학적 사유를 새로이 이끌어냈다는 그 업적 앞에 경탄(驚歎)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세태(世態)를 잘 반영하듯 오늘날 이 시대에 좀 지식인 입네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마르틴 책을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 두 부류로 나누어질 정도라고 하네요. 또한 세상은 마르틴이 태어나기 전과 그 후로 나누어진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교수님,


마르틴이 여기를 떠난 지 한참 많은 시간이 지났어도 아직도 다른 관점의 사람들은 그의 공과(功過)에 대해서 갑론을박(甲論乙駁)을 벌이고 또 여전히 많은 비판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교수님, 마르틴이 이루어낸 그런 철학사적 훌륭한 업적은 얘기하시면서 왜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그가 남긴 과오(過誤)에 대해선 교수님의 책에 쓰지 않았나요? 독일인들의 프라이드(pride)나 자존감(self-esteem)을 깎아내리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마르틴이 교수시절에 사귀었던 여제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와의 정분(情分)을 말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마르틴은 자신이 1933년부터 독일 나치(Nazi)의 당원으로 국가사회주의에 부역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 엄연한 사실에 대해 침묵했나요? 그는 전쟁에 패배한 1945년까지 나치 정부에 부역하고서도 (프랑스 철학자들의 도움으로 선처?(善處)를 받았다 하더라도) 왜 스스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고, "본인의 의도는 달랐다"라는 식의 변명으로만 일관했나요? 사후에 공개해 달라고 한 그 인터뷰에서 조차도 왜 아무것도 인정하지도 않고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나요?


교수님이 그렇게 위대한 작품으로 강조하신 그 책 초판(1927)에 마르틴은 자신의 스승인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 교수에게 헌정한다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마르틴이 반유대인 정책을 표방한 나치 정부에 부역하고 있는 동안 자신의 스승, 후설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대학교에서 강의를 박탈당하고 마르틴은 1941년에 자신의 헌정 문구를 그 유명한 00 책에서 지웠다고 하는 데 맞는 이야기인가요?


독일 나치가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의 철학을 이용했다고 하듯, 마르틴도 그저 나치에의해 이용당한 것인가요? 마르틴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의 부인인 엘프리데 Elfride는 그를 용서했나요? 그의 부인이 용서했다고 다 용서가 되는 것인가요?


두서없는 글을 이만 마무리하며 저는 교수님께 여쭙습니다. 이제까지 저는 저 나름대로 아주 어렵게 이 책을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날만을 기다려 왔습니다. 이제 저는 교수님이 그렇게 칭송하신 마르틴의 그 책, [Sein und Zeit](Being and Time, 존재와 시간)를 읽어야 할까요? 아니면 읽지 말아야 할까요? 마르틴을 향한, 아니 마르틴이 남긴 글에 대한 경외감(敬畏感)을 아직도 가져야 하나요? 교수님께 정중히 그 답을 요청합니다.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


T.H.L. 올림





Heidegger, Martin. SEIN UND ZEIT. (19. Auflage) Max Niemeyer Verlag. 2006. Tuebingen.











P.S. 어느 날 수많은 관광객들 사이로 언뜻 보이는 낡은 고서적 판매대에서 우연히 만난 그 마르틴은 무명 저자의 책 밑에 수줍다는 듯 숨어 다른 책들 사이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반가움은 그저 잠시였을 뿐, 그 책 제목을 보는 순간 너무 가슴 아파 이 *편지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Heidegger et le nazisme” (author : N.A.)


*글쓴이의 주(註) : invented임을 밝혀 둠.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 : 독일 철학자


Photo: Martin Heidegger 1964.

Source / Quelle : rm 50665 Martin Heidegger Monographie. by Manfred Geier. Rowohlt Verlag. 2005. Hamb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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