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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Happy Letter Jul 12. 2024

산책 6

THL 창작 시(詩) #145 by The Happy Letter


산책 6



장대 같은 여름비 그친 뒤

모처럼 동네 산책 나섭니다

산책길 따라 길가에 늘어선 과수(果樹)에도

어느새 눈에 띄게 빼곡히 열매가 맺혔네요

그 길 지나가는 사람들이 혀를 찹니다

그냥 내버려 두니

과실(果實)이 제대로 커지도 못한다고

튼튼하고 실한 것만 남기고 나머진 솎아 내어야 하는데라고

덕지덕지 쌓인 내 글들도

솎아 내고 나면 남은 글들이 더 빛날까요

내 글 몇 편 지우고 나면

남은 글들이 더 운치(韻致) 있어질까요

아니면 내 글도 주인 모를 그 길가 과수처럼

이미 *전정(剪定)의 시기를 놓치고 만 것인가요

어쩌면 알알이 맺힌 어떤 열매도

솎아지고 버려지기 위해 지난 계절 인고(忍苦)하지 않았듯

내 글들도 그냥 철 지나면 땅에 떨어져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들 발길에 밟혀

짓뭉개지고 썩어 버리고 말더라도

이 여름 땡볕 아래

오롯이 그 ‘열매’ 맺음만을 만끽(滿喫)하고 싶었을지도 모르지요



by The Happy Letter








*전정3(剪定) : [농업] 나무의 겉모양을 고르게 하고 과실의 생산을 늘리기 위해 나뭇가지의 일부를 잘라 주는 일.

인고(忍苦) : 괴로움을 참고 견딤.

만끽(滿喫) : 충분히 만족할 만큼 느끼고 즐김.(Daum [어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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