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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Happy Letter Oct 22. 2023

고상하지만 난해한 철학책 바로 덮게 만든 글 한 줄


종교가 없고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주말에 과연 무엇을 할까? 어떤 이들은 교회나 성당 또는 절/사찰(寺刹), 아니면 사원(寺院) 등 교당(敎堂)에 나가기도 하는데, 이력서나 자기소개서에 '무교'(무종교 irreligious/atheistic)라고 기입하는 (절반이 넘는다는) 무종교인들은 주말을 어떻게 보내고 또 마음수양이나 명상(혹은 기도)을 주로 어떻게 할까? (무엇을 하든, 어떻게 하든 다 지극히 개인적 영역이고 다들 각자의 자유라고 생각함을 서두에 밝혀 둔다.)




 


먼저 이 글은 종교서적과 경전, 철학서적 독서 등을 비교하며 신앙생활을 치켜세우는 것도 아니고, 역으로 종교가 아예 없는 (혹은 종교와 무관한) 사람들이 오히려 철학책을 더 많이 읽는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함도 아니다. "종교 vs. 과학"이라는 대비에 과학의 합리적 우위를 말하거나 "종교 vs. 철학" 비교구조에 누가 누구의 "시녀"(侍女)인지를 말하고자 함도 아니다. 중세 시대 유럽에서 철학이 (어떤 의미와 범주로) "신학(神學)의 시녀"라고 불리었냐 와 두 분야의 상호 역학관계에 대해선 다양한 해석과 견해가 분분하지만 어떤 경우든 최소한 종교의 영역에도 '철학적 소양'(素養)이 필요함은 자명한 것 같다.


이 글의 제목을 좀 자극적으로 뽑았지만 물론 독자 여러분들이 인생사를 고민하고 삶의 지혜나 교훈, 진리를 찾고 깨쳐나가는 과정에 '철학책'을 덮고 더 이상 읽지 말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오히려 유신론/무신론, 도덕, 죽음, 내세, 우주, 자연의 섭리 등등을 많이 고뇌하는 분들은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분이라면) 그 외에 다른 선택지가 많이 없어 보이는데 그 이상에 대한 고견이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란다.


물론 직업적으로 철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시거나 공부하고 있는 분들은 전문 분야이자 '생계수단'이므로 그 입장과 처지가 완전히 다른 차원이라 보고 여기선 논외로 한다.




각설하고, 제목 그대로다. 어느 주말, 사는 게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등을 고뇌하면서 여러 철학책을 뒤적이며 읽다가 한 순간 다른 철학책들을 덮게 만든 한 구절의 글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다른 철학책들을 읽지 않아 혹시 가지게 될지도 모르는 어떤 "마음의 짐" 같은 부담감으로부터도 홀가분해질 수 있게 만드는 인상 깊은 구절이었다. 그때 적어둔 *'쪽지 메모'를 다시 보고 아래에 그대로 옮겨 적어 기록해 두고자 한다.  



"지금까지 그 어떤 유명한 철학자들이 남긴 말과 글들, 또 그 어떤 철학 이론과 사상보다도 한 사람(당신)의 실제 살아온 인생이 몇 백 배나 더 소중하고 중요하다!"






우리가 사는 것이 때때로 힘든 것은 무엇 때문일까? (돈 버는 경제 활동과 그 어려움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공동체가 평화롭고 정의롭게 다 같이 더불어 잘 살아갈 수 있나, 그리고 이렇게 살아야 하나, 저렇게 살아야 하나를 고민할 때마다 우리가 크게 간과(看過)하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각자가 가진 인생의 '고유성'(固有性)이다. 다양한 경험과 사건들을 겪으며 성장해 가는 자신의 인생사 속 인간관계, 그리고 자신만이 가진 고유의 삶의 의미와 가치를 실현해 가는 과정 등이 모두 다 한 권의 심오한 철학책 그 이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오랫동안 전해오는 이야기, "한 마을의 노인이 죽으면, 그 마을의 도서관이 사라진 것과 같다."는 말도 (조금 다른 결이라 하더라도) 이런 관점에 접목해 볼 수도 있으리라 본다. 물론 우리 각자가 노인이 되도록 오래 살았다 해도 모두가 다 실제로 "도서관"처럼 될 수 있을지 여부는 또 다른 차원의 개개인의 문제이겠지만.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어쩔 수 없이 정해진 틀에 따라, 정해진 규범과 규칙에 따라 획일적으로 행하며 (주로 시험공부만 하며) 살아야 했고 천편일률(千篇一律)적으로 같은 교복만을 입고 (거의) 같은 생각과 (거의 모두 다 옳다고 생각하는) 같은 행동만을 하고 살아야 했지만, 지금은 각자가 원하는, 더 좋아하는 우리 고유의 의지대로 (물론 사회적 규범인 법과 제도 내에서지만) 소신껏 마음대로 꿈꾸며 살아갈 수 있다고 본다.


우리가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며 남들처럼 그저 따라 하기만 반복하기 때문에 (거름 지고 장에 따라간다는 속담처럼) 자신의 처지에 어울리지 않게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실제 살아가고 싶은 삶과 사회생활 중 외부로부터 강요된 기대(?) 속의 삶 사이에 괴리가 발생할 수가 있고, 또 결과적으로 그  때문에 우리가 사는 인생이 더 힘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단조롭고 평범해 보이는 자신만의 고유의 일상이 사실은 제일 중요하다. 매일 아침에 눈뜨고 밥 먹고 일하러 가고 등등 우리 일상 하나하나가 (가만히 잘 생각해 보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예를 들어, 우리는 매일 아침에 잠에서 깨어 눈뜨는 것을 아주 쉽게 생각하지만 간단히 말해 어느 날 "아침에 눈 못 뜨면", 죽은 사람이 되고 만다. 별다른 생각 없이 매일 잘 먹던 밥을 속이 안 좋아 한동안 더 이상 못 먹게 돼도 금방 큰 문제이고, 무슨 일이 있어 불안감이나 과민반응으로 잠을 못 자게 되어도 우리 일상이 아주 힘들게 된다. 어떤 심도 깊은 독서나 공부를 한다 하더라도 그 "평범한" 일상에 문제가 생기거나 해를 끼칠 정도가 되면 안 되는 것과 같다.


짧은 글을 이만 마치며, 그 철학책도 마찬가지다고 생각한다. 어떤 면에서는 많이 읽으면 좋겠지만 고상한 철학자들의 이론과 그들의 사상이 너무 난해하게 다가올 때면 한동안 그 책을 좀 내려놓고 독자분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그리고 지금까지 잘 영위해 오고 있는, "자기 철학"으로 살아온 고유의 (평범하지만 소중한) 삶에 집중하고 몰두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P.S. 근데, 위에 인용한 '쪽지 메모'가 누구의 책, 어느 책에서 본 글을 옮겨 적어둔 것인지 통 기억해 낼 수가 없다. (또 그 글 앞뒤엔 어떤 글들이 더 있었는지 몹시 궁금해졌다.) 책상이며 온 책장에 있는 철학책들을 한 권씩 하나하나 다 꺼내 들여다보며 한참 동안 읽어봐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던 것처럼, 마치 숨겨진 "보물찾기"라도 다시 시작하듯...












다음 [어학사전],

고상하다(高尙--) : 품위가 있고 수준이 높다.

간과(看過) : 어떤 문제나 현상 따위를 대수롭지 않게 대강 보아 넘김.

고유성(固有性) : 어떠한 사물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성질이나 사물 특유의 속성.

소양(素養) : 평소에 닦고 쌓아 바탕이 된 교양.

천편일률(千篇一律) : 여러 사물이 개성이 없이 모두 비슷비슷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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