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가지 이유의 유형, 이런 사람은 '지인'으로 두지 마라?
왜 우리는 지금도 행복하다는 데에 확신이 없을 까?
흔히 말하기를 행복은 "경제적 부"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이미 많은 지성인, 철학자, 종교 지도자, 행복 전도사(강연자)들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우리 역시 행복의 조건에 "돈이 전부"가 아님을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강연을 듣고, 방송을 보고, 또 그런 책을 읽곤 하지만 정작 집으로 돌아오면, 방송을 끄고 나면, 또 그런 책을 덮고 나면 또다시 '내가 과연 행복한 걸까?'라는 자기 물음에 빠지고 다시 급우울해지기 시작하며 이런 불확실성의 감정은 심지어 '마음의 병'이 되기도 한다.
이에 대한 '처방전'으로 많은 선각자들이 이미 수없이 여러 번 강조해서 말했듯이 그 '처방' 중 하나는, '현재 주어진 것에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행복의 첫걸음이자 동시에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이며 궁극적으로는 '행복 문의 열쇠'라고들 한다.
하지만 예전부터 그 많은 훌륭한 사람들이 그 많은 책에 쓰고 또 다음 후세들이 옮겨 적어 또 다른 책에 쓰고 또 그다음 후세들이 그 책을 읽고 또 읽어도 우리는 '현재 주어진 것에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라!'라는 말에는 공감은 하면서도 여전히 쉽게 실행하지는 못한다. 도대체 왜일까?
왜 우리는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데에 확신이 없을 까?
이러한 물음에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인간관계'의 문제이며, 우리가 부대끼며 같이 살아가는(혹은 살아가야 하는) 내 주위의 '사람'과 '갈등', '관계 형성'에 대한 왜곡과 타성의 문제이다.(다음 [어학사전] '타성' :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굳어진 습성')
필자의 일천한 생각으로는 우리가 이 세상을 '혼자'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 사회와 단절된 외딴곳에서 혼자서 산다면 오늘 지금 나한테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되는대로 그냥 그렇게 살아도 될 것 같은데, 문제는 나의 주위에는 - 어떤 형태나 방식으로든지 - 다른 사람들이 있고, 또 그 다른 사람들과 '좋든 싫든' 우리들 대부분은 이 사회 속에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하고 또 어떤 식으로든 그들과 상호 간 '관계'를 - 불편한 관계까지도 "어쩔 수 없이" 감내하며 - 형성하며 살아가야 한다. 필자는 바로 여기에 우리의 불행하고 우울한 심리적 병인(병의 원인)이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로 인해 우리는 늘 우리의 '행복'에 회의적이고, 또 '이런 상태'로도 행복해해도 되는지 자꾸 되묻게 되고 마는 것 같다.
본의 아니게 나와는 잘 맞지 않는 성향의 사람들과도 어울려 만나야 하는 사회생활이고 인간관계이다 보니 이리저리 치이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만나며 살면 얼마나 좋을까(행복할까)? 이것이야말로 - 소제목에 언급한 바와 같이 - 우리가 행복하려면(동시에, 불행해지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사람 만나는' 것에 매우 신중해야 하는 이유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문제의식하에 여기서 이 문제를 좀 더 직관적으로 바로 느낄 수 있도록 - 개인적 소견이지만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예로서 - 짧고 간명하게 '피해야 할 사람'의 유형을 나열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사람. 자신의 주변 화제만 주로 - 좋은 일이든 안 좋은 일이든 - 얘기하고 나에겐 질문을 거의 1도 안 하는 사람, 만나지 마라고 말하고 싶다. 그 자리에 같이 앉아 대화해서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넌(혹은 다른 호칭으로) 요즘 좀 어떻니? 힘든 일은 없니?" 조차도 묻지 않는 사람은 나한테 무관심한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항상 '돈 이야기'만 하는 사람. 좀 더 정확하게는 늘 돈이 궁하다고만 하는 지인은 피해야 한다. 매번 "돈 없다, 돈 없어서 힘들다..."로 시작해서 "돈 있었으면 좋겠다..."로 모든 이야기를 끝내는 사람, 개인적으로 별로 만나고 싶지 않다. 당연히 돈도 중요하지만 세상에는 돈 주제 말고도 얘기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종국에는 어느 순간 돈 빌려 달라고 할 가능성도 높다. 어렵사리 모은 돈을 빌려주고 나면 되돌려 받을 때까지 내내 불안하고 걱정되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가까운 지인일수록 '돈 문제'로 잘못 엮이면 사람도 잃게 되고 여러모로 곤란해진다. 또한 그 돈 빌려준 동안은 우리 마음의 평정과 "행복"은 저 멀리 달아나 버릴 것이다.(진짜 돈이 궁하고 꼭 필요한 사람은 비싼 디저트 + I.A. 먹고 마시며 노는 그 시간에 뭐라도 하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 나서거나 '알바'하러 나간다.)
그리고 세 번째는, 유형이라기보다는 어떤 '부류'로 구분할 수 있는데, 자신의 주위에 "형식적"으로 만나는 친구나 지인을 최소화하고 그들 중 신중하게 엄선해서 만나야 한다. 때로는 딱히 친하지도 않은데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라는 이유만으로, 또는 '옛 동창', 혹은 꽤 잘 나가는 '힘 있는' 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어정쩡하게 만나는 그런 인간관계는 불필요하게 에너지만 낭비(그들과 일일이 '비교'하고 스스로 불운하다고 느끼게 되는 감정 소비 포함) 할 수도 있다. 만약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의례적"으로 만나야 하는 '친구'(?)가 있다면 일 년에 한두 번쯤은 불행을 느끼는 것은 참아낼 각오를 해야 한다. 다른 이들과 "비교"하는 그 순간, "행복 끝, 불행 시작!"이니까.
혹여 행복을 위한 이런 선택적 기피와 '손절'이 너무 '배타적 자기 방어'로만 비치는가?
'사람 조심'은 걸어 다니거나 차 운전하고 다닐 때만이 아니다. 내가 성심성의껏 온 정성을 다해 누군가를 만나고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마주 보고 대화할 때, 그때 '판단(!)'할 수 있다. 아니, 그때 자각하고 판단해야 한다. 이 사람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지 아니면 불행하게 하는지! 내가 끊임없이 그와 비교하며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독자들은 인간관계에 기피하고 싶은 유형, 최악의 유형이 있는지 궁금하다.)
다시 이 글의 화두, 그 제시된 물음, "왜 우리는 지금도 행복하다는 데에 확신이 없을 까?"로 돌아가보자.
그 물음 속에 내재된 또 다른 문제로, 그런 인간관계 형성이 어려운 것은 바로 "기피해야 할" 그 유형 속에 - 상대방(친구나 지인, 동료 등) 입장에서는 - 나 자신도 포함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자주 잊고 살지만.)
나 자신이 바로 그 "기피대상"에 속하면 안 되겠지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앞서 위에 언급된) 이 생각을 - 내 친구든 가까운 혹은 먼 지인이든 - 다들 "똑같이" 다 해봤거나, 지금도 하고 있다는 데 우리의 판단과 처신의 딜레마(dilemma)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또 행복한 인간관계를 새롭게 형성해 가기 위해 그리고, 자꾸만 어디선가에서 "어떤 새로운" 행복을 찾으려고 너무 애써지 말고, '우리는 최소한 불행해지지만 않으면, 지금 어쩌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 가?'라는 것을 먼저 배워나가는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다. 스스로 나 자신을 - 그리고 상대방인 내 친구와 지인을 - 불행하게 만들지만 않는다면.
결국 문제는 사람과의 '관계'다. 가족, 친구, 지인, 동료 모두 다. 행복하려면, 또 불행해지지 않으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