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L 창작 시(詩) #175 by The Happy Letter
긴 여름방학 다 끝나가니
아이들은 서둘러 한꺼번에 일기(日記) 쓰며
밀린 숙제에 바쁘고
누구는 처서(處暑) 마저 지났다며
춘추복 하나 둘 꺼내
햇살에 말리느라 분주한데
숲 속 산책길 초입 자작나무 한 그루는
힘없이 휘어져버린 채 묻는다
한평생 꼿꼿이 버티며 살아도
한 뼘도 안 되는 나의 목숨
언젠가 힘없이 잘려나가
한 줌 재로 불타 없어질 운명(運命)이지만
그 인고(忍苦)의 세월
그렇게 나이테 하나 또 더 늘어가는 만큼
그 뜨겁고 화려했던 햇볕만큼
그리하여 나의 ‘여름’은 쓸모 있었는지
산책길 따라 길 잃은 바람 한 줄기
그늘진 숲 속 사이로 불어오니
어느새
여름 지나가는 소리 보인다
by The Happy Le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