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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Happy Letter Nov 22. 2023

"사다리"에 관하여


글을 써다 보면 혹여 다른 분들이 비슷비슷한 주제나 같은 소재의 글을 이미 발행했을 것이라는 생각에(또 실제로도 그런 경우도 많이 있고) 좀 머뭇거릴 때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서 누구나 관심 갖고 있는 똑같은 이슈가 비슷한 내용을 낳기 때문이다. 필자가 최근 쓰고 있는 에세이 중 일부 시사 콘텐츠(contents)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체험담 수기(手記), 생활 수필이나 독창적인 창작품은 다르겠지만, 어떤 시사적인 말이나 글을 앞선 작가나 다른 사람들이 이미 앞서 많이 언급했다고 해서 다시 못쓸 이유는 없다. 비록 똑같은 주제와 소재라도 또 다른 자신만의 방식으로, 각자 자신만의 관점과 해석으로 새로이 풀어쓸 수 있기 때문이다.(무거운 주제이다 보니 스포티하거나 경쾌(輕快)하게 쓰지 못하는 면도 있는데 어쨌든 이는 필자의 부족함 때문이리라.)


이번엔 독자분들도 익히 들어서 잘 아시는 그 "사다리" 이야기를 여기에 짧게나마 기록해 두고자 한다.




'사다리'는 우리가 위쪽으로 올라가기 위한 '이동수단'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계층이동'이나 '신분상승' 등을 말할 때 자주 인용되는 메타포(metaphor)로도 잘 알고 있다. 별도의 대단한 "백"(background)도 돈도 없는 서민들인 우리에게 유일한 '사다리'는 무엇일까? 현재 제도권 내에서 우리가 도전해 볼 수 있는 상위층(부유층)으로의 계층이동을 위한 유일한 방안은 교육(학력)을 통한 방법밖엔 없어 보인다.(그래서 학교 교육 경쟁과 입시 관련 논쟁의 여지가 있는 불공정한 특혜는 온 국민들의 "역린"(逆鱗)을 건드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백마 탄 왕자님이 나타나서 날 데려가기만 바라는 신데렐라 콤플렉스(Cinderella Complex)에 빠진 사람이나 평강공주와 온달장군 중 "온달장군"이 되길 꿈꾸는 사람은 요즘은 없으리라 본다. 예전처럼 결혼, 혼인을 통한 신분(계급) 상승이나 경제적 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무슨 드라마 클리셰(cliché)처럼 하루아침에 재벌 며느리가 될 일도 거의 없을 것이고.


물론 좋은 아이디어로 큰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 직장인들의 "근로를 통한 임금(월급여) 소득"은 집과 건물, 땅 등의 부동산 소유와 각종 금융 자산으로부터 얻는 "자본소득"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말이 맞다 하더라도 지금 당장 아무런 금융자산[자본소득]이 없는 사람들은 이런 사회구조 속에 그나마 좀 더 괜찮은 "임금(근로) 소득"을 추구할 수밖에 없고 이를 위해 기댈 수 있는 것이라곤 괜찮은 '대학졸업장' 하나밖에 없어 보인다.


한국의 처참한 교육 환경과 극심한 사교육 경쟁을 지켜보자면 지금의 대학서열화가 낳은 입시 전쟁 속에서 빈곤층 자녀들은 비싼 사교육(학원)비 마련은커녕 아예 그 경쟁 속에 낄 자리조차도 없어 보인다. 물론 지금 우리 사회는 (외관상으로는) 신분사회가 아니다. 그러나, 비록 신분상 계급사회는 아니지만 우리는 각종 언론에서도 매일 접하듯 상위층 몇%, 부유층, 빈곤층이 어쩌니 저쩌니 라는 말로 공공연히 경제적 계층과 "경제적 신분"을 알게 모르게 구분하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최근 특정분야 대학입학생 모집인원을 추가 증원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자 관련 협회에서 거센 반대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물론 예상 필요인원 규모(수요조사)에 대해 아직 논의 중이라고 하니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필자 개인적으로는 특수한 집단의 이해관계가 갖는 역학 구조상 '집단 이기주의'의 발로(發露) 내지는 어떤 기득권 계층의 저항(?)으로 볼 수도 있다.


이미 많이 가진 그 기득권자들로부터 선의에 의한, 또한 '공공의 선'을 위한 헌신은 기대하기가 어려운 것일까? 그저 '연목구어'(緣木求魚) 일 뿐일까? 어떻게든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간 사람이 그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것과 같은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콩 한쪽은 나눠 먹어도 콩 한 말은 나눠 먹지 않는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사람들의 욕심은 이렇게 끝이 없는 것인가? 단지 "그들만의 리그"일 뿐인데도 그 뉴스를 바라보는 내내 어떤 씁쓸함은 지울 수가 없었다.











다음 [어학사전],

발로(發露) : 바탕에 깔려 있는 생각이나 심리, 사상 따위가 겉으로 드러남.

연목구어(緣木求魚) :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한다는 뜻으로, 불가능한 일을 무리해서 굳이 하려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그들만의 리그(league) : 아는 사람끼리만 이해할 수 있는 연대를 이르는 말. 대체로 다른 사람들을 배제하고 불평등을 심화하며 사회 구조를 경직시킨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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